-- “명강(名講)” 中
<다시 장인정신을 말한다> 유홍준
-- “명강(名講)” 中,
“명품은 장인이 만들지만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
강 일 송
오늘은 지난 번 한번 보았던 “명강” 책을 다시 보려고 합니다.
그때는 카이스트 정재승교수의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었지요.
오늘 볼 내용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교수의 글을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유홍준(1949~)교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하여 미술
평론가로 활동을 하였고 영남대 교수, 문화재청장,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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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은 디테일이 아름답다
작가 정신과 장인 정신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작가 정신이 작가
의 개성과 상상력과 창의력이 존중된 거라면 장인 장신에서 존중되는
것은 남다른 기술과 재능을 갖고 있는 장인들이 자신의 작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인 정신이 외형적으로 나타난 결과를 말하라고 하면
‘디테일’, 즉 세부장식이 아름답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명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예술과 기술이 분리되지 않은
시절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백제 금동대향로를 보면 용이 용틀임을 해서 연꽃 봉오리를 입으로
물고 그 위로 봉황이 날아가는 형상입니다. 우리는 그 형태미만 알고
디테일에 대해 주목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향로 뚜껑의 네 겹
산봉우리와 몸체인 네 겹 연잎의 잎사귀마다 조각이 들어가 있습니다.
기마 인물상에서부터 5인의 악사까지 100가지 도상이 이 작은 공간에
들어가 있습니다. 즉 ‘디테일’이 엄청나게 아름다운 것이지요.
백제에서 그렇게 멋있는 것을 만들 수 있었는데, 왜 이 시대에는 저런
것이 없어졌는가? 백제시대에는 장인을 어마어마하게 대접했습니다.
경학에 밝으면 경학박사라고 했듯이 기와를 잘 구워 내면 와(瓦)박사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예가 발전했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면서 백제본기 온조왕 15년조, 즉 BC4년조에
‘신작궁실’이라고 네 글자를 썼는데 새로 궁궐을 지었다는 말이지요.
그는 그것의 미감(美感)을 여덟 글자로 덧붙였어요.
‘검소하되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되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인이 가질 수 있는 미감의 압권이 아닐까 합니다.
★ 추사 김정희와 피카소
추사는 대단히 개성적인 글씨를 썼습니다. 추사체는 대체로 여러분이
쓰는 엉망진창의 글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추사는
이 자율적인 글씨를 쓰기 전 칠십 평생 벼루 10개를 밑창내고, 붓 1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드는 수련을 하였습니다.
피카소 박물관에 가보면 피카소가 처음에 얼마나 사실적인 그림을 잘
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14세 때 그린 그림들을 봐도 감탄이 나옵
니다. 그랬으니까 나중에 괴물 같은 여자를 그려도 다 멋있다고 한
것이지요.
추사나 피카소나 엄청난 장인적 수련과 연마를 통해 개성을 추구한
것입니다.
★ 무심의 경지에 이르러야 진정한 명작이 나온다.
불국사 석굴암은 신라의 전직 국무총리인 김대성이 25년간 만든 것
아닙니까. 그에게 전권과 모든 편의를 주고 만들라고 했으니 그런
명작이 나온 것입니다. 시스템이 장인 정신을 받쳐 주고 그 장인들
에게 그와 같은 대접을 해줄 때 비로소 명작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천우 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통일신라 사람들은 삼각 함수의
사인 15도의 값을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구사했다고 말했어요. 그것을
구할 줄 모르면 애당초 설계가 불가능하다 거에요.
더욱이 석굴암에서는 10미터를 쟀는데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었어요.
명작이 탄생할 때 장인들이 갖고 있던 공력이 그런 것이었어요.
1000분의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던 거에요.
장인이 꼼꼼한 기교뿐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무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노자에서 “대교약졸”이라 했어요. 큰 재주는 졸해 보인다는 뜻이
지요. 큰 재주는 드러나지 않고, 평범해 보이는 속에 재주가 들어
있어요.
그 무심한 경지, 추사의 글씨 세계가 그렇고, 우리 백자 달항아리가
그렇고, 일본인들이 미치게 좋아하는 고려 다완이 그 경지를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 일본 다도와 고려다완
일본의 다도는 15세기부터 일어났고 그 문화는 대단했습니다.
우리에게 선비 문화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사무라이 문화가 있었지요.
사무라이들은 공부보다는 차 마시고 선(禪)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15세기만 하더라도 다완은 아주 고급스럽고 값비싼 것, 그러니까 송나
라의 천목이라고 해서 호화로운 것이 인기였지요. 그 호화의 극치로
간 것이 순금으로 만든 다실(茶室)이었습니다.
그때 센노리큐라는 스님이 도요토미의 차 선생이 되었는데, 그는 진정
한 차의 깊은 세계는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와비, 사비(투박하고 조용
한 상태)의 미학에 있는 것이고, 감추어지고 어수룩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높은 차원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조선의 달항아리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완벽한 원이 아니고 일그러진
것 같지만 너그럽고 손맛이 있고 여백이 있고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대교약졸에 있지요.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 조선의 막사발,
고려 다완이었습니다. 도공들이 잘 만들고 못 만들고의 개념 없이 그냥
만들어 낸 막사발이 금잔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겁니다.
고려 다완의 미학은 장인들이 잘 만들겠다는 욕심조차 없을 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장인 정신을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미학인데, 이런
미학이 서양에는 없습니다.
불완전성, 그것이 불완전해서 불완전한 것이고 미숙해서 미숙한 것이
아니라는 것. 완벽한 것에는 우리가 감정 이입을 할 여백이 없지만,
어딘가 관객도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여백까지 주는 높은 차원의 미학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 문화는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만든다.
장인 정신을 발휘하려면 그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프랑스 와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품질 인증제 때문입니다.
5만 원 짜리 와인은 분명히 5만 원 짜리라는 품질을 보증해 주고
100만 원을 보내면 정확하게 100만 원어치를 보내왔어요.
일본 사람들한테 배울만 한 것이 있습니다. 일본은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있으면 그것으로 존경받아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도공이 14대까지 이어지고, 우산 잘 만드는 집도 몇 대를 내려
가고, 단팥죽 잘 만드는 집도 4대째 전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장인들보고 일 똑바로 하라고 하지 말고 소비자가 장인을 대접해서
장인 정신이 들어간 비싼 것을 사줘야 합니다. 그래야 장인이 나옵
니다. 정말로 잘 만든 것을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소비자가 있을 때
그 문화가 나옵니다. 문화는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만듭니다.
진짜 제대로 한 작품에 더 비중을 두는 그런 문화 풍토가 있을 때
우리 시대의 장인 정신이 구현된다고 봅니다.
그것이 보장될 때 우리 문화 능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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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문화재청장을 지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불후의 인문
베스트셀러를 저술한 유홍준교수의 글을 보았습니다.
저자는 오늘 "장인 정신"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금동대향로의 세밀한 장식의 뛰어남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또한 신라의 석굴암의 설계의 우수성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장인에 대한 대우가 남다르고 그들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명작의 조건이 "무심의 경지"라는 말을 합니다. 그 무심의 경지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과 다작을 통한 실력 연마가 우선이라고
하였습니다. 추사의 글씨와 피카소의 그림은 완벽에 이른 경지 이후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라 하지요.
일본 다도의 다성(茶聖) 센노리큐 선사는 이전의 화려한 금잔, 천목다완,
금실 등의 차문화를 와비,사비의 선(禪) 문화로 바꾸었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고려다완의 가치를 지선으로 여깁니다.
조선의 막사발이라고도 하고 "이도다완"이라고도 불리는 고려다완은
경상도 진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도토를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습니다. 이름없는 도공들이 어떤 작품을 만드려는 의도
나 의식이 없이 무심의 경지에서 만들어낸 그 미(美)를 일본인들은
금으로 만든 잔이나 화려한 무늬의 송나라 천목다완보다 더 위대하게
여겼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 예술을 표현할 때, "자유분방함
의 미","무작위의 작위, 무기교의 기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김부식의 ‘검소하되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되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았다.’의 표현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도 비슷합니다. 완벽한 원도 아니고 반원 두 개를
이어붙인 표시도 나고, 재질도 매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
에서 여백의 미를 느끼고 마음이 쉴 여유를 얻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명품은 장인이 만들지만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
라는 말을 합니다. 제대로 된 작품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인정해 줄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 문화재나 문물에 대해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정부와 사회가 진정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문화적 수준의 국민이 될 때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대국으로 우뚝 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