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뇌는 최강의 실험실”中
<전차의 딜레마와 공리주의> 신바 유타카
- “한 명을 살리느냐, 다섯 명을 살리느냐”
-- “두뇌는 최강의 실험실”中
강 일 송
오늘은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가치 기준“이 일관성
이 과연 있는가? 그리고 어떤 것이 ‘정의’에 가까운가 하는 문제
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신바 유타카로서 게이오기주쿠대학 공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공은 과학철학,
과학기초론, 과학기술사회론, 물리학, 통제정보과학이라 합니다.
오늘 책의 구성은 ‘사고실험’에 의한 여러 가지 사례를 놓고 주제별로
전개하고 있는데, ‘사고실험’이란 어떤 분야를 정해서 이론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말 그대로 머릿속 추론만으로 현실의 실험을
대신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 내용 중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붐을 일으켰던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나왔던 ‘전차의 딜레마’
를 통해 담론을 전개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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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의 딜레마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1953~)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왔던 유명한 사고실험을 보자. 샌델에 의해 알려졌지만 사실
이는 영국의 여성 윤리학자인 필립퍼풋(1920-2010)이 1967년에
제기한 이야기였다.
-- 당신은 철도 분기점을 전환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전차가 맹렬한
속도로 폭주해오고 있지만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철길
앞쪽을 보니 다섯 명의 작업원이 있지 않은가. 그대로 두면 다섯
명 모두 죽고 만다. 길목을 조종해서 다른 선로로 바꾸면 한 명의
작업원이 죽게 된다.
당신은 다섯 명의 목숨과 한 명의 목숨을 견주어서 다섯 명을 살리
기 위해 길목을 조종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둘 것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선로로 유도해서 한 명의 목숨을 희생시
키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인간의 행복이나 쾌락은 계량할 수 있으며 타인의 쾌락이나 행복과
비교, 환산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행복의 총계가 최대가
되도록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영국의 법철학자 제레미
벤담(1748-1832)에서 시작된 공리주의이다. 공리주의는 이른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향한다.
하지만 만일 선로를 바꾼다면 죽지 않았어야 할 사람을 죽게 하는
문제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선에 있던 다섯 명의 작업원
들은 원래 죽을 운명이었다. 당신은 그 운명을 바꿀 힘을 갖고
있지만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게 된다. 아무리 공리주의에 입각
해서 판단한다 하더라도 이를 실제로 행사하여 길목을 조종한다
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 전차의 딜레마의 변형
이제 실험의 설정을 조금 바꾸어 보자.
-- 전차가 폭주해 왔다. 앞쪽에는 다섯 명의 작업원이 있고, 이번에는
다른 선로가 없다. 그리고 당신은 선로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 있다.
당신 옆에는 덩지 큰 남자가 있다. 그 남자를 선로 위로 떨어뜨리면
전차는 정지한다. 자, 당신은 그 남자를 떨어뜨릴 것인가?
한 명을 떨어뜨려서라도 다섯 명을 살려야 할까?
이 설정에서 당신은 일부러 관여하지 않는 한 방관자이다.
덩지 큰 남자도 사고와 무관한 방관자이다. 공리주의에 의하면
행복 계산에서 목숨의 비율이 1:5인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자를
밀어 떨어뜨리는 일은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원래의 사고실험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왜 의견이 달라질까?
이는 죽임을 당하는 쪽의 행복여부에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선택하는 처지에 놓인 인간의 감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되는 것과 어떤 이유든
능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 관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처음에 설명한 '전차의 딜레마'에서도 본선 위에 있는 다섯 명을
죽게 하는 것은 소극적인 살인이지만 다른 선로에 있는 한 명을 죽게
만드는 것은 적극적인 살인이라 할 수 있다.
★ 무엇이 정의인가
18세기 대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4)에 따르면 '무엇 무엇을
위해서 이러이러한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가언명법, 무조건
'이러이러한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정언명법이라고 한다.
이번 실험에서 '죄 없는 사람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것은 정언명법
에 해당한다.
다리 위에서 남자를 떨어뜨리는 것도 그 사건과 무관한 사람을 끌여
들여 죽게 하면 안 된다고 보는 정언명법에 해당한다.
공리주의이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것이 최선의 결과를 얻지만
죄 없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죽음에 몰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정의라는 개념으로 성립한다.
★ 장기 제비뽑기 실험
만일 제비뽑기라는 '공평한' 절차를 밟으면 살인행위에 대한 거부감
이 다소 적어질까? 윤리학자 존 해리스가 내놓은 사고실험을 보자.
-- 어떤 사회에 특이한 제도가 있다. 그것은 건강한 육체를 지닌 모든
사람들 중 제비뽑기로 한 명을 골라 그의 장기를 불치병을 앓고 있는
다섯 명에게 각각 이식해서 다섯 명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다.
당신은 이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비뽑기로 결정했다면
희생양이 되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까?
제비뽑기에서 뽑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적극적 살인이지만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죽어가게 놔두는 것은 소극적 살인이다.
다만 이렇게 희생자를 선택하는 과정이 공평한 제비뽑기이거나
민주적인 방식에 의한 결과이라면 희생양을 뽑는 일에 대한 거부감
이 어느 정도 줄어들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 제도가 제정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할 것이다.
하지만 희생자를 선발하는 과정을 훨씬 교묘하게 꾸미거나 큰 효과
가 있다는 것을 잘 포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실험은 사회의 존재방식에 있어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정책에 의문을 제기한다.
★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가
'전차의 딜레마'를 변형한 사고실험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설정을
조금만 바꾸어도 정반대의 판단들이 나오곤 한다.
이는 '어떤 가치 기준에 따라 판단할까?' 혹은 '그 판단 기준은
일관성이 있는가' 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고실험은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행동경제학, 진화윤리학,
진화심리학 등의 분야에서도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여하튼 마이클 샌델의 강의는 대중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킨 공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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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정의"에 대한 공론과 관심을 불러 일으
켰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이야기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가 제시했던 "전차의 딜레마"는 사실 이전의 필립퍼풋이라는 윤리
학자가 설정한 사고실험이었다 합니다.
오늘 전차의 딜레마 실험과 이의 변형된 형태를 통해, 소극적 살인과
적극적 살인에 대한 개념을 보았고, 칸트의 정언명법까지 이어짐을
보았습니다.
설정을 조금만 바꾸어도 전혀 다른 가치판단이 나오는 것을 목격한
다면 인간의 판단이나 선택이 철저한 원칙이나 가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향하는 공리주의가 이러한 실험들
에 의해 상당히 부실한 논리체계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20여 년전 군의관을 할 때, 대량전상자 훈련을 부대에서 시범
공연으로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일반적인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군대에서의 치료는
우선 순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본래 가장 심하게 다친 환자가 1순위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군대에서는 우선 전장에 투입 가능한 환자를 분류해 내고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후송합니다.
가장 심하게 다쳐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환자는
순위가 뒤로 밀려버립니다.
전쟁 상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환자 치료의 우선 순위도 바꾸어
버리는 것이지요.
인간의 삶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공리주의"가 더욱 가치를 가지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그것이 인간의 보편 타당성에 위배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정의라는 것이 과연 확연한 하나의 고정된 존재인지, 아니면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것인지, 마이클 샌델 교수도 명확히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결국 대중들에게 "정의"에 대한 환기를 불러
일으키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나게 한 것으로도 그는 이 사회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한번 오늘 이러한 주제에 대해 저와 함께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