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타자의 추방> 한병철
--“획일화와 동일화의 세계성에 대한 비판”
강 일 송
오늘은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최근 책을 보려고
합니다.
한교수의 책은 제가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오늘은 “타자의 추방”이라는 2017년 2월에 초판이 나온
따끈한 책을 보겠습니다.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가서,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였고, 1994년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박위를 받고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한교수는 “피로사회”, “투명사회”등의 저작이 독일에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고 가장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합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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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것의 테러
타자가 존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비밀로서의 타자, 유혹으로서의 타자,
에로스로서의 타자, 욕망으로서의 타자, 지옥으로서의 타자, 고통으로서의
타자가 사라진다.
오늘날 “타자의 부정성”은 “같은 것의 긍정성”에 밀려나고 있다.
박탈이나 금지가 아니라 과잉소통과 과잉소비가, 배제와 부정이 아니라
허용과 긍정이 사회체를 병들게 한다.
타자의 폭력만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타자의 추방은 아주 다른 파괴
과정을, 즉 “자기파괴”를 작동시킨다.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는 시스템은 자기파괴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감염은 타자의 부정성에 의해 일어난다. 타자는 내부로 침투하여 항체
가 형성되도록 한다. 이에 반해 경색은 같은 것의 과잉, 시스템의
비만으로 인해 일어난다. 경색은 감염적이 아니라 과지방적이다.
지방에 대해서는 항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어떤 면역 반응도 같은
것의 창궐을 막아낼 수 없다.
오늘날 “같은 것”의 테러는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산된다.
정보와 데이터를 쌓으면서도 어떤 “지식”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친구와 팔로워를 쌓으면서도 어떤 타자도 만나지 못한다.
타자의 부정성과 변모가 엄밀한 의미에서 경험을 만들어낸다.
경험의 본질은 “고통”이다. 그러나 같은 것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
★ 세계적인 것의 폭력과 테러리즘
세계화는 모든 것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것,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따라서 “같은 것”으로 만드는 폭력적 힘이 있다.
전면적인 “같게-만들기”는 궁극적으로 의미의 소멸을 낳는다.
모든 것을 같은 것으로 획일화하고 같은 것의 지옥을 만들어내는
세계적인 것의 폭력은 그에 맞서는 파괴적인 힘을 산출한다.
장 보드리야르가 이미 세계화의 광기가 테러리스트라는 광인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테러리즘으로 이끄는 것은 종교적인 것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세계적인 것에 맞서는 단독적인 것의 저항이다. 따라서
특정 종교나 단체를 조준하는 테러방어조치는 가망 없는 대체
행동에 불과하다. 소리 높여 적을 규탄하는 행동도 시스템에 원인
이 있는 실제의 문제를 은폐한다.
오늘날 다시 깨어나고 있는 민족주의와 신우익, 혹은 정체성 운동도
세계적인 것의 지배에 대한 반사작용이다. 그러므로 신우익의
추종자들이 외국인들을 적대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도 비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뤼스토우(1885-1963)
는 이미 신자유주의적 시장법칙에만 맡겨지면 사회는 반인간적으로
변하고, 사회적인 배척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연대와 공동체의식을 산출하는 “생명정치”로 신자유주의
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명정치로 교정하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에 좌우되는
대중이 생겨날 것이며, 이들은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 세력들에게
쉽게 포섭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외국인에게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증오로도 표현된다.
두려움의 사회와 증오의 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다.
절망감과 전망의 부재가 결합된 사회적 불안은 테러리즘 세력을
키우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낸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는 실제로는 적이 아니라 형제다. 양자는 동일한 발생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는 세계적인 것의 폭력이 악성종양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암세포”처럼 “무한정한 창궐, 과잉성장, 전이를 통해”
확산된다.
세계적인 것은 오늘날 보편적인 가치들까지 잠식하고 있다.
그 결과 자유 자체가 착취당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실현한다는
망상에 빠져 스스로를 착취한다. 자유의 착취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비열한 기본 논리다.
세계적인 것의 폭력에 맞서 우리는 보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에
의해 잠식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칸트가 말한 “영구 평화”는 다름 아닌 화해의 상태를 말한다.
오늘날의 난민 위기는 유럽연합이 이기적 목적을 좇는 경제적
상업연합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다.
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헌법공동체만이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공동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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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병철교수의 신작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의 틀로 이방인으로서는 특이하게 철학의
본고장이라 하는 독일에서 주목받는 철학자로 우뚝 섰습니다.
현대의 사회적 병폐를 적절하게 파악하고 분석하여 대중에게 통렬하게
전달해주는 탁월한 능력을 그는 가지고 있다하겠습니다.
이번의 저서에서도 현대의 획일화된 세계화를 거침없이 그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제목인 “타자의 추방”은 바꿔 말해 나와 다름의 “추방”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자기와의 다름을 부정함은 곧 사회의 다양성을
부정함이고 이는 순종의 순혈주의만을 양산해 냅니다.
이미 알다시피 다양성을 잃은 순혈주의는 수많은 새로운 상황에 적절
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적응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세계적인 획일주의가 이에 대한 반발로 테러리즘을 키우는
온상이 된다고 저자는 일갈합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잠식하고 퇴색하게
하여 갈등이 증대되고 인간성의 상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연대와 공동체의식 등 공공선을 높일 “생명정치”
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필연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IS 근거지를 폭격하거나 지도자를 제거하더라도 근본
적인 테러방지 대책이 절대 될 수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이익만을 위한 연합이 되어버린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도 날카로운데,
인권과 난민들의 생명 존중 등의 보편적 가치를 저버리면 칸트가
언급한 화해에 기초한 “영구평화”는 상당히 요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만의
이익을 좇는 정책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과 생명존중과 사랑 등의
기본으로 돌아가고 나와의 다름, 즉 다양성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칠 때 비로소 전지구적인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