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강 일 송
오늘은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문학자 최진석교수의
제대로 생각하고 생각의 주인이 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을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최진석(1959~)교수는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북경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명원,建明苑’
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합니다.
저서는 “생각하는 힘, 노자의 인문학”,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나는 누구인가” 등 많은
저서들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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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시작 - 전면적인 부정(否定)
철학의 시작은 곧 전면적인 부정이고, 이것은 새로운 세계의 생성
을 기약하는 일이다.
새로운 세계의 생성이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 주도적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스스로 자신의 나아갈 길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에는 부정, 즉 버리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 ‘대립의 공존’이 대립을 돌파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붙들고 있거나 몸담고 있는 한쪽 세계를
온전한 전체로 쉽게 착각하고 삽니다. 특정한 한쪽 세상을 빛나게
해주는 해나 또는 다른 한쪽만을 비추는 달을 유일한 빛으로
착각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너무도 오랜 시간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 입장에서 자신만의 해나 자신만의 달을 붙잡고 그것을
이념화하여 진실이라 강변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고 탓합니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일은 이 극단적인 이념 대립에 빠지는 지적 단순함에서 빠져
나와 각자 자신의 벽을 넘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상승한다는 것은 선진국 차원으로 상승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철학적, 지성적, 문화적, 예술적 차원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 동아시아 철학의 시작
일본은 1854년 개항을 한 후 큰 정치적 변화를 겪습니다.
1867년 막부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으로 복귀하더니 바로
메이지 유신을 감행합니다. 이를 통해 통일된 목표와 방향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힘을 가지고
1875년에 강화도를 개항시키기에 이릅니다.
중국은 1860년에 베이징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는
굴욕을 당한 이후에 1861년부터 과학기술문명, 그리고 제도,
철학으로 역사적 변화과정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사실상 철학적 시선의 필요성을 알게 된
것은 1917년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철학’이라는 용어는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고, 동아시아에는 그때까지 ‘철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학문 자체가 없었습니다.
1874년에 일본에서 니시 아마네가 “백인신인론”이라는 책을
쓰면서 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니시 아마네는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유학생이었습니다.
1870년대에 이미 일본인들은 네덜란드에서 사유의 가장 높은
단계를 배웠던 것이지요.
일본이 1874년에 철학이라는 관점을 가지기 시작했고, 중국은
1917년이 되어야 문화운동이나 정치적인 맥락에서 시도합니다.
우리나라는 1924년 일제하에서 경성제국대학이 생기는데,
1926년 여기에 최초로 철학과가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철학을 수용하는 발걸음을 막 떼기 시작할 때, 일본은
이미 철학의 생산 단계에 들어가버립니다.
철학의 생산은 곧 사유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한국 철학은 1920년 후반과 30년대 초반에 해외 유학파들의
귀국과 경성제대 졸업생들의 배출과 함께 형성이 되었으며
서양 철학을 원전을 통해 직접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후반이었던 것입니다.
★ 철학은 살아 있는 ‘활동’이고 ‘사유’다.
‘철학적 시선을 갖는다.’는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나는 오늘
나와 세상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높이의 시선이야 말로 나와 사회를 한 단계 더 상승
시키기 위해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철학의 선진국들, 즉,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등에 철학도들이 공부를 하러 유학을 많이 떠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철학을 수입하는 셈이 되는데, 철학을
수입한다는 말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뜻입니다.
생각을 수입한다는 것은 우리가 수입하는 그 생각의 노선을
따라서 산다는 의미이고요.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만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돼 삶
전체의 종속을 의미합니다. 어느 순간 스스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사유하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철학을 이론적인 내용의 습득보다는
사유의 활동 혹은 사유의 높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철학을 하는 목적은 철학적인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철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하기’가 아니라, ‘선도하기’로 바뀌고, 훈고의 습관이
창의의 기풍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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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문학자로 이름이 높은 최진석교수님의 글을 보았습
니다. 그는 이미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통해 인문학적 통찰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철학의 시작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들이 있었고, 철학의 시작은 "부정, 否定"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분열과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자기가 붙들고 몸담고 있는 이념만을 최고의 지선으로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데 대한 내용이
가슴에 들어옵니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이야말로 진정 편협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문화가 반드시 필요
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의 정신문화가 한 단계 더 상승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에서 들어온 철학만 공부할 것이 아니라 진정 스스로 철학할 줄
아는, 즉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 축이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서 철학의 도입이 늦었고, 일본이 이미 철학의
자체 생산에 나설 때 우리는 비로소 도입을 하는 단계에 머문
그 차이가 현대까지 이어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사고의 수준, 철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문화적 예술적 활동을 더욱 늘리고, 남을 따라하는 사유가 아닌
어설프고 부족하더라도 자신만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진정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창조물이
우리한테서 넘쳐 나오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