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中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中
강 일 송
오늘은 카이스트 김대식교수의 신간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과학과 철학, 인문학과의 소통을 가장 잘 하는 과학자인 그는
다양한 질문을 대중들에게 던집니다.
해답보다는 질문을 통해서 인간은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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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우연과 필연의 합작이다.
1894년 1월 도나우 강,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어느 날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강물에 빠진다. 강변에서 친구들과
‘카우보이와 인디언’ 놀이를 하다가 미끄러져 빠진 것이다.
아이의 운명은 여기까지였을까? 청년이 되어 보지도, 사랑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아이의 삶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옆집의 주인아들이 침착
하게 수영하여 혼수상태의 아이를 구한다.
아이는 자라 학교에 입학하고 화가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미대 입시에 실패한 아이는 군인이 되고, 전쟁에 패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노숙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는 결심
한다. 혼란과 분노에 빠진 고향을 구원하겠다고.
이 아이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만일 히틀러가 네 살 때 도나우 강물에서 인생을 마무리했다면
나치당은 사라지고 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지 않았을까?
600만 명의 유대인도, 5,000만 명의 민간인도 죽을 필요가
없었을까? 1894년 한 젊은 청년의 용기와 수영 실력이
세상의 역사를 바꿔 버린 것일까?
영원히 살 수 있기에 죽음이 의미 없는 신들과, 자신도 죽는
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동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
인간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에선 유일하게 죽음
이라는 모든 우연의 숙명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우리.
우리 모두는 항상 언제라도 끝났을 수 있는 우리 존재의
끝을 잠시 동안만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 인간의 조건
아무리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고
단 한 번도 동의하거나 허락해 준 적이 없다.
어느 날 그냥 눈을 떠 봤더니 지구, 대한민국, 우리 집에
태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동의 없이 태어난 세상에 살아야 한는 것도
서러운데, 이 세상, 국가, 가족의 모든 규칙과 조건은 먼저
태어난 사람들을 통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직 뇌가 발달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선택하지도 않은 단순한 우연의 결과인 전통과 규칙을 필연
이라 착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으로 열심히 살기 위해
바둥거릴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conditio humana', 즉 <인간의 조건> 이겠다.
말도 안 되는, 믿고 싶지도 않은 조건 속에서 삶을 시작하는
인간.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질문해 왔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종교, 철학, 예술, 과학, 모든 학문은 이 코미디 같은 인간의
조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일 뿐일지도 모른다.
★ 지옥이란 다름아닌 타인들이다.
한 남자가 지옥이라고 도착한 곳은 의외의 호텔 방이었다.
고문도, 괴물도 없는 그냥 펑범한 호텔 방, 아니, 아주 평범하지
는 않다. 창문도 없고, 방문을 다시 열지도 못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역시 이 곳 지옥에 떨어진
두 명의 여인들.
난생 처음 보는 세 명의 남녀가 한방에 갇혀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제 이 세 명은 앞으로 영원히, 탈출도, 구원도,
희망도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치유하고, 또다시
사랑하고 질투하고 배려해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장폴 샤르트르가 1944년에
발표한 희극 “닫힌 방”의 내용이다.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추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샤르트르의 지옥은 문이 닫혀 있고 항상 전등이 켜진 호텔 방
인데, 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세 사람이 영원히 같이 지내야
한다. 여기서 서로는 타자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갇혀 오직 그들의 비난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결국, 등장인물 중 하나는 이렇게 외친다. “열어! 열라고!
다 받아들이겠소, 족쇄며, 집게며, 납물이나 족집게, 주리를
틀어도 좋고, 태워도 좋고, 찢어도 좋고, 난 아예 진짜 고통을
원한다고. 차라리 백 번 뜯기고 채찍질에 황산 세례가 더
낫겠어. 이 머릿속 고통, 스쳐 지나고 쓰다듬으면서 결코
속 시원히 아프지도 않은 이 유령 같은 고통보다는 말이야.”
그러나 모두 소용없다.
지옥이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 “함께 혼자” 살기
지옥은 다름 아닌 타인들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타인과 외로움을 동시에 두려
워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 더 이상 자유로운 자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고 혼자가 되는 순간, 나의 자아는
외롭다.
함께는 괴롭지만 혼자는 외로운 게 인간의 조건이기에, 쇼펜하우어
는 “함께 혼자” 살기를 추천한다.
외롭지 않을 정도로 함께 가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결국 나 홀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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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대식교수와 함께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모순에 분노하고 절망하기도 하며 책의 세계로 깊이
들어 갑니다.
그런 그가 오늘 몇 가지 삶의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아돌프 히틀러"의 이야기입니다. 4살 때 도나우강에
빠져 죽을 뻔한 그를 주인집 청년이 구해줍니다.
역사는 "만일"이라는 가정을 하면 흥미가 배가 되지요. 만일, 그 때
히틀러가 그대로 하늘나라로 갔다면 이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
었을까 하고 김교수는 의문을 던집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이 순간, 질문이 답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인간의 조건'에 관한 언급인데,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태어난 시기, 태어난 나라, 태어난 지역,
부모, 가족 등등,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 세상은 나의 동의와 무관하게 규칙과 룰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나는 따라야만 합니다.
또한, 유한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자기의 역할을 연극의
한 무명배우처럼 연기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종교, 철학, 예술, 과학 등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학문과 분야는 결국
이 부조리하고 어설픈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정당성과 합리화를
해주는 "의미찾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에서는 진정한 지옥은 "타인"이라고 합니다.
샤르트르의 희곡에서 나온 설정인데, 한정된 공간에서 창도 없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인데, 전혀 모르는 타인들과 영원히 갇혀서
살아가야 합니다.
결국 이 엄청난 지옥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는, 차라리 진짜 고통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무리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
이지만, 또한, 철저하게 혼자이고 고독한 존재입니다.
이 두가지 양면성에 인간은 늘 혼란스러워하고 어려움을 겪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결국 인간은 "함께" 또한 "홀로"가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느 극단에 치우침이 없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중요한 덕이
"중용"이라고 한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 삶에 "중용"이라는 덕이
적극적으로 개입되어야만 "함께 홀로"의 이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까요?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