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 “그림과 글 이미경”
강 일 송
오늘은 그림과 글이 함께 하는 따뜻한 수필집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이미경(1970~)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고, 둘째 아이를 갖고 퇴촌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
다가 퇴촌의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긴 후 20여 년 동안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 작품을 그려 사람들
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과 말을 한번 함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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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자라나는 구멍가게
사랑방, 방앗간, 다방, 미용실, 이발소 등 이야기가 생겨나는
장소는 많지만 그중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구멍가게다.
신작로에 있는 구멍가게에는 남녀노소, 동네 사람, 외지인 할
것 없이 무수한 사람들이 오고 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생겨나 ‘그래서, 그랬대, 그러더라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가지처럼 자란다.
이야기는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풍성하게 하고 풍성한 기억은
삶을 다채롭고 의미 있게 만든다.
★ 남한산성 아래 개미마을
남한산성 밑에는 개미마을, 거여마을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부동산을 운영하시던 아빠는 1978년에 이곳으로 이사해 액세서리
공장을 차리셨다. 주변이 온통 논밭이라 봄이면 소가 밭을 갈고
여름이면 논두렁의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던 시골같은 분위기였다.
우리에게 구멍가게는 별천지였다. 달달한 불량식품 가득한 신세
계였다. 아빠가 동전이라도 주시면 쪼르르 달려가 달콤한 간식
하나 사 먹고 행복해했다.
아이들과는 다방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신발 감추기 등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유년 시절 가장 즐거운 기억이 구멍
가게에 숨어 있다.
★ 오토바이에 온 가족이 나들이
어릴 적에 오토바이 한 대에 온 가족이 타고 개울로 고기를
잡으러 갔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아빠 앞에 남동생이 앉고 난 아빠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마지
막으로 내 뒤에 엄마가 탔다.
게다가 오토바이에 솥단지도 하나 동여매고 마천동에서 팔당까지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얼굴을 차알싹 때리고 쏜살같이
비껴가는 바람 때문에 숨이 차올랐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그 바람이 분다.
열 살 꼬마는 어느새 사십 대 중반이 되었지만, 건장했던 서른
다섯 아버지의 따스한 등에서 들리던 기분 좋은 심장 소리를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슈퍼집 딸 은정이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건 사춘기 접어드는 어린 소녀에게는
비밀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난처한 일도 하나둘
늘어 간다는 뜻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사춘기 소녀에게는 부끄럽고 감추
고 싶은 일이었다. 자존심 센 내게는 더욱 그러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은정이는 그런 내가 곤란해
할까 봐 늘 배려해 주었다. 덕분에 학교생활이 외롭지 않았다.
은정이네는 삼각지에서 쌀집 겸 구멍가게를 했는데 집에 놀러
가면 비지땀을 흘리며 쌀을 배달하시는 은정이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선한 눈매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건강한 아빠의 이미지로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그 무렵 우리 아빠는 몇 번의 사업 실패로 힘들어 했기에 그
당시에는 부러움과 연민의 감정이 교차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시간을 힘겹게 살아내신 아빠를 좀 더
이해해 드렸으면 좋았으리라는 뒤늦은 상념에 젖는다.
오래 전 돌아가신 아빠가 문득문득 그립다.
★ 외할머니의 유산
어릴 적 ‘그리기’는 제일 좋은 벗이자 놀이였다.
누가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하고 물으면 대답은 늘 같았다.
“화가요.”
꿈이란 걸 갖게 된 무렵부터 나의 단골 대답이었다.
가족 중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지만 손재주가 좋은 분은
있다. 양장 기술이 남달랐던 어머니, 그리고 전설같은 솜씨
의 외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칠남매 중 외할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우리 엄마가 올해
고희를 맞으셨다. 엄마 얼굴에서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고
나는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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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미경 작가의 그림과 글을 보다보니, 참으로 작가는 따뜻하고
정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경 글과 그림은 그것을 지은 사람을 반영할 터입니다.
크고 화려한 것을 좇는 현대에 그는 작고 소박함의 극치인 시골의
구멍가게들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화폭에 담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동전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는 어린
시절 행복의 창구였지요.
지금 우리 주위에는 대형마트, 화려한 백화점이 차지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린시절 구멍가게가 살아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 젖습니다.
지금은 자가용으로 온 가족이 나들이를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오토
바이 한 대에 온 가족이 매달려 타고 물놀이를 나갑니다.
사업이 여러 번 실패해서 힘들어 하던 아버지가 지금은 돌아가시고
그때를 생각하면 늘 아릿하게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리고 오토바이에서 아빠등에 기대어 듣던
젊은 아빠의 기분좋은 심장소리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자의 화가적인 재능은 외할머니에서 엄마로 이어져 내려왔네요.
전설같은 솜씨의 외할머니, 뛰어난 양장기술의 엄마, 그리고 그 딸은
미술대학을 나온 화가가 됩니다.
엄마 얼굴에서는 할머니가 보이고, 이제 딸은 그 엄마를 닮아갑니다.
전화를 받다가 보면 문득문득 아들은 아빠의 목소리를, 딸은 엄마의
목소리를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피는 못속인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오늘 이 책에서 보이는 저자의 그림들을 보면, 바다수퍼에서는
알싸한 바닷내음이 밀려오고, 산골마을의 조그만 구멍가게에서는
신선한 나뭇내음이 흘러나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