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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

by 해헌 서재

<고통을 이해하는 새로운 프레임, 소동파 蘇東坡>

--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中


강 일 송


오늘은 우리가 살면서 실수하고 후회하면서 사는 아픔의

삶을 위로해주는 저자의 탁월한 감상을 담은 글을

같이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강경희교수는 경주에서 태어나 경희라는 이름을 얻었

다고 하고 퇴계 선생 생가가 있는 안동의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를

하였고 중국으로 유학하여 남경대학교에서 중국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현재 이화여대, 동국대, 건국대 등에서 중국 고전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의 글 중 소동파에 대한 이야기를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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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동파와 만나기까지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간화선의 화두 같은 이 물음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품었던 적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였고, 오직 나 혼자만

불행하게 느껴졌다. 아픈 영혼은 늘 그렇게 방황한다.


간절히 품은 질문은 자석과 같다. 반드시 해답을 끌어당긴다.

그 자력의 세기는 간절함에 비례한다. 내가 그 질문을 안고

캄캄한 밤길을 헤매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내 인생의 멘토가

하나씩 내 앞에 나타났다. 책 속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중 고통의 굴레 속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소동파를 보려고

한다.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길을 수 없다. 삶은 결국 자기 초월을 통해 작은

주머니를 점점 더 크게 키우고, 짧은 두레박줄을 점점 더 길게

만드는 과정이다. 아마도 그 과정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


일찍이 인간의 삶은 ‘고해’임을 알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음

에도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변한 바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이니 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태어나는 고통에서 시작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고통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는 다양하다.


우리는 고통을 ‘극복한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는 고통을 극복

해야 할 대상으로 다루는 것이다.

고통을 다루는 또 다른 방식으로 노력의 차원이 아닌 “동의”의

차원이 있다. 그것은 폭풍에 온 몸을 맡기는 갈대와 같다.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의 글은 자기 앞에 닥친 고통에 ‘동의’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자포자기하거나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 상황을 호오와 미추의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동의’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왜곡된 관점이 지닌 오류를 기지 넘치는 유머로 꼬집었고

고통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삶의 신비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동파의 문장이 후세에까지 칭송받는 진짜 이유는 그의 탁월한

인품이었다. 그 옛날 사대부들에게 글(文)이란 그 사람의 인품

이 그려낸 무늬(文)였으므로.


★ 고통을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


우리에게 동파(東坡)라는 호로 더 알려진 소식(蘇軾, 1036-1101)

은 정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예술가로서 그는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이며 북송4대가의 하나로

꼽히는 서예가이자, 창조적인 화가였다.

유학자로서 백성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정치가였고, 도교와 불교

에도 깊은 조예를 지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품이

넓은 철학자였다.


그는 사천성 시골의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나이 스물

둘에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함으로써 실력을 인정받아

정계에 등단했다.

하지만 화려한 등단과는 달리 소동파의 벼슬길은 순탄하지

못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조정으로의 소환과 유배가 반복되었다.

그는 평생, 조정 재임, 지방 전출, 유배 라는 사이클 속에서

살아갔다.


★ 인생이란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


그에게 유배 기간은 크나큰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에 그의 문학은 가장 찬란하게 꽃피었고, 그의 정신적

경지는 가장 빛났다.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는 불후의 명작 <적벽부>, <후적벽부>,

<염노교-큰 강은 흘러가고>, <달밤 승천사를 거닐다> 등과

같은 작품이 모두 이러한 시기에 태어났다.


<소동파 평전>을 쓴 임어당은 “쓰디쓴 풍자와 날카롭던 필봉,

격정과 분노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찬란함과 따뜻함, 친밀함,

그리고 너그러운 해학 등이 스며들어 더욱 원만하고 성숙해

졌다.”라고 했다.


평생토록 입 때문에 바쁘더니

나이 들며 일이 더욱 황당해지며 우습다

장강이 성을 감도니 물고기가 맛나겠고

좋은 대나무가 산을 덮었으니 죽순이 향기롭겠네

쫓겨난 몸이니 원외랑이라도 무방하고

시인이 수부랑 지냈던 것 늘 있는 일이었지

다만 털끝만큼도 보탬이 못 되면서

관가의 봉급을 축내어 부끄럽네


- <황주에 막 도착해서>


정치의 풍랑 속에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풀려나와 귀양

오고 보니 자신의 신세가 참 우습다.

마흔 다섯, 인생의 절정기에 맞은 된서리로 인해 인생이 더욱

황당해져감에 문득 웃음이 나온다.

자기 앞에 닥친 불행에 이런 유머를 던지는 순간 그는 유배

당한 수인이 아닌 유람객으로 바뀐다.

한 줄기 빛이 되어 현실의 누추함을 몰아낸다.


★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산속에 있을 때는 그 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산의 모습은

자리를 바꿀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인식 능력이란 인식 조건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늘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결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전체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사태의 일부라는 것, 입장이나

관점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다른 면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시비판단이나, 독선, 아집

등으로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산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처럼, 고통으로

보이는 사태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큰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 더 단단해진 자신을 마주한 경험이

있지 아니한가? 그제서야 우리는 시인한다.

고난이 자신을 성숙하게 했음을.


고통의 이면에 다른 얼굴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최소한

고통에 함몰되지는 않을 수 있다.

내 삶에 찾아온 고통에 동의하고 그것을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


고통으로 보이는 사태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빗속에서 춤추는

기쁨을 경험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고해를 건너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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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문호 소동파의 인생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서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듯 했으나, 정치의 풍랑 속에서 일생 내내 그는

임용과 지방 전출, 유배 라는 사이클을 반복합니다.


소동파의 문학작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의 글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 속에 처했을 때의 글이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의

호오와 미추를 분별하지 않고 수용하고 '동의'하는 지혜로움을

보여줍니다.


오늘 글 중 저자의 뛰어남이 엿보이는 문장은

"인간의 인식능력이란 인식조건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늘 한계

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전체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나와의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고의 첫 출발이 될 것이고, 고통의 이면의 다른

면을 유추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지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저자의 방법을 다시 한번 옮기며 이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고통으로 보이는 사태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빗속에서 춤추는

기쁨을 경험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고해를 건너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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