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문 인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

매화, 꽃이 잎보다 먼저 찾아오는 이유

by 해헌 서재

<매화, 꽃이 잎보다 먼저 찾아오는 이유>

--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中


강 일 송


오늘은 꽃에 대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그 접근 방식이 독특한데, 각각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인

친구 두 명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시각에서

글을 쓰고 그것을 엮었습니다.


이명희저자는 현재 건국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수

로 있고 정영란저자는 덕성여대에서 제약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산림치유학과 박사과정 중이라 합니다.


오늘은 그중 매화에 관련된 글을 보겠습니다.


=============================================


★ 매화 - 기다림의 가치 (자연과학자가 배운)


매화는 잎을 내기 전에 꽃을 피운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전이

어서 곤충을 유혹하기에 경쟁률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매화나무를 비롯해서 산수유나무, 생강나무, 올괴불나무 등도

잎을 내기 전에 부지런히 꽃을 피운다.


대부분의 식물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핀다. 그러나 이른 봄꽃

들은 그럴 시간의 여유가 없이, 곤충들을 선점하여 가루받이에

성공하기 위해서 미리 꽃을 피운다.


자연을 이루는 모든 종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유행이나 대세를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환경과 생존에 가장 적합

한 순서를 안다.

꽃을 보자면, 모든 꽃이 일 년 내내 피어 있지 않다.

사람의 인생도 꽃의 개화처럼 절정의 시기가 다르고 피어있는

기간도 다르다. 우리의 인생은 꽃이 먼저일까, 잎이 먼저일까?


꽃은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건만, 심지어 꽃의 종류는

여름꽃이 가장 많음에도 사람들이 봄꽃에 더 열광하는 이유는

기다림이 더 길고 간절하기 때문이다. 찰나의 아름다움은 치명

적이고, 긴 기다림 끝의 만남은 더욱 귀하다.


기다림.... 아기가 태어나 걸음을 뗄 때까지 수백 번을 넘어져도

엄마아빠는 기꺼이 기다려주었다. 늦게 걸음마를 떼었다고 해서

달리기 선수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다르고 사랑도 다르고 기다림도 다르다.



★ 한 뜻을 지켜내는 마음 (인문학자가 본)


매화에 봄 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뺨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번 나와 보아라.

- 서정주, <매화> 중에서


남도 시인 서정주의 매화는 알큰한 멋과 맛을 지니고 있다.

봄 사람은 풋풋하니 덜 익은 사랑인데, 그 마음만은 매실처럼

새콤달콤 알큰하여 여운이 오래간다.

못 견디는 사랑, 그래서 매화 향기에선 가신 님의 내음새가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우리 선비들은 꽃 중에 가장 먼저 피는 매화를 사랑했다.

게다가 악조건에서 꽃을 피운다는 점에서 더 사랑받는 꽃이요, 나무였다.

그리고 매화의 향기나 매무새, 단아한 분위기까지.


매화는 충의, 절개, 지조를 상징한다. 오죽하면 매화 향기마저,

‘매일생한불매향’이라 하여, 매화는 일생을 두고 춥게 지낼망정

향기는 팔지 않는다고 절개의 미덕을 주야장천 말하였을까?

절개의 미덕이란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인가?


조선 선비 중 매화 사랑으로 잘 알려진 이가 퇴계 이황이다.

그는 식물과 나무를 매우 사랑했으며 나이가 들수록 매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였다.

매화에 관한 90여 수의 시조를 짓고 ‘매화시첩’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퇴계의 매화벽(梅花癖)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매화꽃에 물을 주라’는 것이 퇴계의 유언이었다.

‘멜론 향기를 맡으며 죽고 싶다’던 시인 이상의 유언이 겹쳐진다.

문인들은 죽음의 순간에도 이렇게 낭만적인가.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저 세상이 이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초연함이 퇴계와 매화의

이심전심 아니었을까?

만나지 못할 줄 알면서도 그 기다림을 지켜가는 마음, 그렇게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마음이야말로 매화 한 송이

벙그는 마음이려나. 마지막 순간을 이 세상에 걸쳐둘 내가 남길

말은 과연 무엇일까?


그러니까 이 매화 한 송이는

저 산 하나와 그 무게가 같고

그 향기는 저 강 깊이와 같은 것이어서

그냥 매화가 피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머, 산이 하나 피었네!

강 한 송이가 피었구나! 할 일이다.

-- 복효근, <매화찬> 중에서


매화를 보며 사연을 담아낸 사람들의 마음과 모습이 귀하다.

산 하나 강 한 송이를 피워낸 매화 한 송이와 같이 살 수만

있다면, ‘마지막 남길 말’은 사족일 수밖에.


=================================================


오늘은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가 각자 꽃에 대한 글을 써서

함께 모은 책을 보았습니다.


사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나 사람과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점에서 결국 그 방향은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두 저자가 꽃에 대해서 단상을 나누고 있는 것은 한 객체를

놓고 자기의 살아온 인생과 지식을 가지고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오늘은 그중 "매화"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석학 이어령교수의 말에 의하면, 한,중,일 동양 3국은

같은 듯 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매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측면에서는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자연과학자인 정영란저자의 글을 먼저 본다면, 그는 매화를 통해

'기다림'이라는 화두를 건져냅니다.

매화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데, 그의 용어들을 보면, 경쟁률, 효율,

생존 등 자연과학에서 많이 쓰는 말들이 보이지요.

매화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일찍 꽃을 피워 가루

받이를 성공시켜 자신의 종의 생존률을 높인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겨울을 기다린 후의 첫 꽃의 발화라 사람들은 매화의 개화를

기뻐 반기고 귀하게 여깁니다.

겨울을 이기고 아직 쌀쌀한 공기 속에서 피는 그 꽃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미학과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글은 인문학자인 이명희 교수의 글인데, 그는 미당의 시를

먼저 인용을 합니다.

매화의 핌과 함께 피어나는 봄사랑을 '알큰하게'라고 멋드러지게

표현해냅니다. '얼큰'이 아니고 '알큰'이라니요.

술은 얼큰하게 취하고, 사랑은 알큰하게 취하겠지요.

매화는 예부터 선비들이 좋아했지만, 기녀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중 관기로 한시와 거문고에 능했던 매창(梅窓)이 유명한데

이는 '매화나무 창가'라는 뜻으로 임을 향한 절개와 지조를 지키겠다

는 의지를 표현했다 합니다.


이처럼 매화는 향기로운 향과 단아한 매무새 등이 어우러져 절개와

미모를 함께 한 이미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 선생도 매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

니다. 올 봄에 안동의 도산서원을 갔더니, 아직도 서원 주위에

매화가 많이 피어있더군요. 세월을 넘어서 퇴계선생의 매화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효근 시인의 시를 옮겼는데, 매화 한 송이는 산 하나

와 무게가 같고, 그 향기는 강 깊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인들의 감수성은 너무나 풍부해서 실제로 그 정도의 무게와

깊이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매화의 향기처럼, 삶에서도, 평소의 언행에서도 향기가

배어서 흘러나오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첨부된 사진은 올 초에 도산서원에 방문하여 발견한 서원 안팎에 있던

매화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