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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5. 2016

<미술관에서 읽은 시(詩)>

신 현 림

<미술관에서 읽은 시(詩)> 신현림

                      강 일 송

오늘은 시(詩)가 있는 그림, 그림이 있는 시(詩) 에 대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신현림(1961~)은 시인이자, 사진작가입니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상상력,
독특하고 매혹적인 시와 사진으로 평이 자자한 작가라고 합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시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이
있으며, 사진작가로 연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전>으로 2012년 울산 국제
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 작가 4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다양한 재능과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감성을 한번 느껴보겠습니다.
그림 한 점과, 시 한 점을 묶어서 풀어내는 그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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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한 호흡

문 태 준 (1970~)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고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 내고
피어난 꽃을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려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고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 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고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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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 속에 갓 태어난 아기부터 어린이, 청년, 노인의 모습까지 사람의
한 평생이 담겨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긴 제목이 달린 이 그림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했을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폴 고갱(1848-1903)
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폴 고갱은 고흐, 세잔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다.
젊은 시절에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중산층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주식시장 붕괴로 삶의 토대가 무너져 내리자
그는 절망 속에서 자신이 믿었던 가치들이 한낱 모래 위 누각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벽보 전단지를 붙이며 근근이 연명하는 도시 빈민이 되었다.
지치고 지친 그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다.
그는 결국 남태평양의 타히티에서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낸다.
타히티 원주민들을 그린 그의 작품에는 원시적 삶과 생명력, 순수함이 담겼다.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원초(原初)가 거기 있었다.
하지만 타히티에서의 삶도 고갱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술에 빠진 그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렸고, 유언처럼 남긴 이 마지막 작품은 그가 고통스럽게 물고
늘어졌던 화두를 우리 앞에 풀어 놓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꽃의 탄생과 소멸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는 문태준 시인.
그는 꽃을 통해 우리 삶의 마디마디를 긴 호흡으로 돌아보며 묵묵히 살아가는
힘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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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그런 길은 없다

베드로시안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나의 어두운 시절이
닮은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이들에게
도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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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외로워도 이미
누군가는 이 길을 나처럼 걸었겠구나, 그래, 그리 생각하면 외로움의
무게는 덜어지고 한결 위로가 된다.
베드로시안의 시처럼 유독 ‘길’을 화폭에 담은 화가 시슬레(1839-1899)
는 영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인상주의 화가다. 모네와 르누아르
등과 함께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야외 그림’을 그렸는데,
1870년대의 파리 근교 풍경들, 강변과 초원, 마을의 골목과 길, 교회가
주요 소재였다.
순간적인 빛의 효과를 섬세하게 잡아낸, 감각.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에 대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또한 대개의 화가들이 그렇듯 죽음 이후에야 세간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사랑하는 부인이 죽은 지 몇 달 뒤 59세의 나이에 베드로시안의
시에서 강조한, 누구나 한 번은 떠나는 길을 걸었다.
그가 살고, 그가 그린 고요한 천변풍경들처럼 그의 죽음도 평화로웠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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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그 앞에서 일시 정지

첫 치마

김 소 월(1902-1934)

사모한 이에게 안녕! 하듯이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 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 쥐어짜며
속없니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

여인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는 남자, 고개를 돌린 채 남자의 입맞춤을
받고 있는 여인의 뺨이 유난히 붉다.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 서로의 표정,
몸짓, 목소리 등 사소한 모든 것은 ‘시그널’이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상대를 섬세하게 ‘감각’하는 때는 바로 사랑에 빠진 순간이다.
이 넘치는 행복감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 ‘일시 정지’를 외치고 싶어
한다. 사랑 앞에 ‘흐르는 시간’은 가는 봄을 바라보는 김소월의 시처럼
안타깝고, 그래서 붙잡아 두고 싶은 무언가다.
하지만 봄은 결국 지나갈게다. 무심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봄이 지난 후에
뜨겁고 서늘하고 매서운,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절이 온다.
화가 앨머 테디마(1836-1912)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꿈꾸었다. 고대의 주제들,
지중해 바다와 푸른 하늘, 토가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 고대 문명의 웅장함과
시간의 흔적들. 이 모든 것들이 앨머 테디마에게는 영감을 주는 소재였다.
비록 1800년대 후반, 산업화가 한창인 시기에 태어났지만 모더니즘의 열풍 속에
서도 한결같이 고전미를 화폭에 담았고 마침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대리석의 화가’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질감 묘사 능력이 탁월했던 앨머 태디마는
옛 신화 속에 나올 뻔한 인물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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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림 3편과 시 3편을 함께 저자의 해설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그림과 시는 인간의 감성을 가장 잘 담아내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시인이기도 하고, 사진작가이기도 한데,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다양한
재능과 감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고갱의 그림입니다. 고갱은 고흐와 함께 잠깐 살기도 했지만
성격차로 갈라섭니다.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현대적인 생활을 하다가 마지막
인생은 타히티에서 원시적인 삶으로 마감합니다.
문태준의 시에서는 ‘한 호흡’을 이야기합니다. 꽃이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
내는 사이, 꽃잎이 떨어질 때까지의 사이를 한 호흡이라고 합니다.
또한 예순 인생 갑자를 돌아나온 홍역 같은 인생을 한 호흡이라고 합니다.
문태준의 말처럼, 고갱의 굴곡 깊은 삶도 ‘한 호흡’입니다.
예방 접종이 없던 시절은 홍역은 누구나 앓고 지나가는 병이었습니다.
홍역 같은 인생, 오늘도 그 인생을 견디고 또 견디어나가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시슬레의 그림이고, 베드로시안의 시와 함께 엮였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길도, 아무리 가파른 길도 나 혼자만 간 길이 아니라 합니다.
인생은 각자가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기에, 자기만이 힘들고
자기만이 고통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의 길을 걸었고 또 걸을 것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위로가 됩니다. 시슬레의 그림은 편안합니다. 나무가 뻗어 있는 저 길을
혼자서든 누구와 함께든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으신가요?

세 번째 그림은 앨머 테디마의 그림이고 김소월의 시를 함께 보았습니다.
앨머 테디마는 인상파가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오히려 고전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자기만의 영역을 고수하면서 결국 인정을 받지요.
김소월의 시는 참으로 토속적이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정감이 넘칩니다.
사랑 앞에서는 시간이 멈춥니다. 가장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고조시키고
흔드는 것이 사랑의 감정이겠지요.
여인의 볼은 복숭아같이 연하게 붉습니다. 남자에게 맡긴 손은 사랑을 받아
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속절없이 가는 봄같이 세월은 흘러가지만, 순수한 사랑의 마음은 그들의
가슴 속에서는 영원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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