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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17. 2016

<처음 시작하는 이에게> 고두현

오늘은 시(詩)모음 해설집을 한 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고두현 시인은 경남 남해 출신으로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인이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가려 뽑은 국내외 명시 24편을 가지고 에세이를 엮은 형식의 책입니다. 오늘 저자가 뽑은 시 중 다시 몇 편을 골라서 제 시평을 같이 곁들여 보고자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이에게>, 고두현 지음, 21세기북스



당신의 눈망울 속에 나를 담아주세요

-- 셰이크 모하메드(1951~)


당신의 눈망울 속에 나를 담아주세요
그 눈망울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어쩔 수 없더라도 그 눈 깜빡이지 마세요
당신에게 담겨 있는 나를 떨어뜨리지 마세요
슬프더라도 눈물 흘리지 마세요
그 눈물이 홍수되어 쏟아지면
나도 함께 쓸려가 버리니까요




두바이의 최고 경영자인 셰이크 모하메드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추진력을 겸비한 지도자로 이름이 높습니다. 사막에 스키장을 만들고, 세계 최고층 빌딩을 세우고 세계지도 모양의 인공섬을 만드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지도자입니다. 하지만 그가 시인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의 탁월한 상상력은 시적 감수성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당신의 눈망울 속에 나를 담아 주세요”라는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나라는 분명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순수를 꿈꾸며

--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을 보라.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을 기술에 접목시켜 성공을 한 대표적인 기업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자기만의 서재에 들어가 시를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 시도 찬찬히 살펴보면, 굉장히 철학적입니다. 마치 장자의 도를 이야기하는 듯, 동양적입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손바닥안에 무한을 쥡니다. 찰나와 영원이 둘이 아님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무한한 상상력이 시에서 비롯되었음을 느끼게 되지요.




청 춘

-- 새뮤얼 울만(1840-1924)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새뮤얼 울만은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한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사회운동가, 교육가로 활동을 하고 은퇴를 한 후 다양한 시를 많이 썼는데, <청춘>이란 시도 78세에 썼다고 합니다. 묻혀져 있던 이 시는 수십 년이 지나 미국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가 이 시를 암송하고 사랑한 사실이 알려진 후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거쳐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광고카피가 떠오릅니다. 끊임없이 열정을 가지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정신이 생기가 있으면 신체적인 나이는 많아도 여전히 그는 젊은이라고 합니다. 반면, 스무 살이라도 도전의식이 없고 현실에 안주하고 열정이 식은 사람은 노인이라고 하네요.

나는 마음이 젊은이인가 늙은이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 고두현(1963~)


그것은 바닷물 같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목마르다고
이백 년 전,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한 세기가 지났다

이십 세기의 마지막 가을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93세로 세상을 뜨며 말했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그리고 오늘
광화문 네거리에서
삼팔육 친구를 만났다.

한 잔 가볍게
목을 축인 그가
아주 쿨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머니가 가벼우니
좇도 마음이 무겁군!




마지막으로 시 한편 더 보겠습니다. 이 시의 작가는 이 책을 엮은이입니다.


돈은 참 요지경인 물건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물건 중에 이보다 더 요상한 물건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전 기사에 났지요. 아들이 로또에 당첨되었고 그 돈의 용처를 가지고 노모와 형제들간 분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후 아들네에 찾아간 노모와 여동생을 못 들어오게 막으니 열쇠수리공을 불러 들어가려 하였고, 아들은 경찰을 불렀더군요. 노모는 이후 피켓을 들고 패륜아라고 시청앞에서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만하면 막장 드라마라 할만 하지요.


시인은 말하기를 주머니가 가벼우니 엄청 마음이 무겁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주머니가 무거우니 엄청 마음이 가벼워졌을까요? 그냥 생각해도 결코 가벼워 보이지는 않네요. 그렇다면 주머니가 가벼워도 마음이 무겁고, 무거워도 무거우니 이건 무슨 조화인가요?


개인적으로 돈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해 보자면, 돈은 "목적"시 하지 말고 "도구"화하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돈에 대해 과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나, 오히려 과하게 배척하는 것은 둘 다 모두 돈에 집착하고 매여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돈을 도구화하는, 즉 수단으로 여기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단으로 생각하되 나쁜 감정을 대입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돈이 없다면, 매번 이웃과 거래를 할 때, 닭 한마리 장에 가지고 가서 쌀로 팔아서 오고, 콩 한 자루 지고가서 공책 사오고..  얼마나 귀찮겠습니까. 그러니 편리한 도구로 고마운 물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것이란 말에 동의를 합니다. 그래서 돈에 대해서 중용은 참 힘들다  생각이 됩니다.


오늘 시 몇 편 보았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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