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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13. 2016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안도현

--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아포리즘 中

오늘은 감성적인 시집을 하나 보려고 합니다. 시인 안도현(1961~)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을 하였습니다. 그는 문학적 성취와 독자들의 사랑을 함께 얻은 드문 시인이라고 합니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싶다> 등 10권이 있고, 그가 쓴 동화 <연어>는 1996년에 출간된 이후 100쇄를 돌파하는 기록을 남겼으며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태국, 대만 등에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합니다.

오늘은 그의 시집 중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라는 연작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1


어머니는 손주에게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 싸우더라도 차라리
네가 한 대 더 맞는 게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내는 싸울 때는
바보같이 맞지만 말고 너도 때려야 한다고 아이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있다.
그 손주가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 한 명을 때렸다고 문득 집으로
전화가 온 날 어머니는 은근히 좋아하시고, 아내는 아이를
잡도리해야겠다며 벼르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2


어머니는 아이가 잠들기 전에 배가 고프지 않은지 묻고, 아내는
숙제를 다 했는지 묻는다. 어머니는 다 큰 아들을 ‘내 새끼, 내 새끼’
라고 부를 때도 있다. 아내는 그 어머니의 아들을 ‘이 웬수, 저 웬수’
라고 부를 때도 있다. 어머니는 가는 세월을 무서워하고, 아내는
오는 세월을 기다린다. 어머니는 며느리한테 자주 잔소리를 하시지만,
아내가 나한테 잔소리하는 것은 매우 듣기 싫어한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3


거의 모든 어머니는 물건을 살 때 시장으로 가고 싶어 하고, 거의
모든 아내는 백화점으로 가고 싶어 한다. 파 한 단을 살 때도 어머니는
흙이 뚝뚝 떨어지는 파를 사고, 아내는 말끔하고 예쁘게 다듬어 놓은
파를 산다. 어머니는 고등어 대가리를 비닐봉지에 함께 넣어 오지만,
아내는 생선 가게에다 버리고 온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4


어머니는 손주들의 옷을 고를 때 소매가 넉넉한 것을 사려고 하고,
아내는 아이의 몸에 꼭 들어맞는 옷을 사려고 한다. 어머니는 내일
입힐 것을 생각하지만, 아내는 오늘 입힐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발을 살 때도 그렇다. 어머니는 한 치수 더 큰 것을, 아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을 것을 고른다. 어머니는 값을 따지고 아내는
상표를 따진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5


어머니는 갓 난 손주에게 모유를 먹이는 게 어떻겠냐고 며느리에게
묻고, 아내는 모유를 먹이면 가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된다면서
분유를 먹이자고 남편을 설득한다. 어머니는 장가 든 아들이 가슴
만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가슴을 만져 주는 것을
좋아한다. 세월이 갈수록 어머니는 부끄러움이 많아지고, 아내는
점점 대담해지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가 목욕탕에 갔을 때 우유 한 통을 두고도 생각의
차이가 드러난다. 어머니는 그 우유를 손주에게 먹이려고 하지만
아내는 우유로 마사지 하고 싶어 한다. 어머니는 손주를 생각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생각하는 기특한 순간이다.





어머니와 아내의 차이 6


혹시 시간이 나거든 어머니의 옷장과 아내의 옷장을 각각 들여다
보라. 어머니는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저고리를 장롱 밑바닥에
두고두고 보관하지만, 아내는 3년 전에 산 옷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머니는 무엇이든 모아 두려고 하고, 아내는 필요 없는
것은 버리려고 한다.
어머니는 신 김치를 좋아하지만, 아내는 금방 담근 김치를 좋아
한다. 어머니는 인절미나 수수경단 같은 떡을 좋아하고, 아내는
생크림이 들어 있는 제과점빵을 좋아한다. 어머니는 설탕을 많이
넣은 자판기형 커피를 좋아하고, 아내는 묽은 원두커피를
좋아한다.






읽어 보니 어떠신가요? 공감이 가시나요?
시인들은 별 것 아닌 주제에서도 예리하게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머니와 아내, 즉 고부 관계는 모든 인간 관계 중에서도 가장 미묘하고 혼합이 잘 안 되는 관계로 알려져 있지요.

어머니는 며느리가 아들한테 잔소리하는 것은 참지를 못합니다. 다 큰 아들한테는 “내 새끼, 내 새끼” 합니다만 며느리한테는 좀처럼 살갑지 못합니다.
손주한테 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할머니는 손주한테 배가 고픈지를 묻고, 엄마는 숙제를 다했는지 묻습니다. 둘 다 손주를 위한 것인데, 그 취지와 방향성이 미묘하게 차이가 납니다.

손주가 다른 애를 때리고 왔을 때, 할머니는 은근 좋아하고 엄마는 애를 잡으려고 합니다. 파 한 단을 사도 어머니는 흙이 묻은 친자연적인 것을 좋아하고 아내는 말끔하게 정돈된 백화점용 파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또 한번의 아이러니를 만들어 냅니다. 이 아내는 세월이 흐르면 다시 시어머니가 되어 며느리를 맞이 합니다. 그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데자뷰가 일어납니다.

오늘 연작시를 한번 보았습니다.
시를 읽는 것을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오늘 이 시처럼 편하게 읽다보면 어느새 가까워지는 것이 시이기도 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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