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by 해헌 서재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 “나희덕 산문집”


강 일 송


오늘은 삶에 대한 찬찬한 고찰과 관조의 시선이 아름다운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하나를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나희덕(1966~) 작가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였고,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어두워진다는 것”,

“그곳이 멀지 않다”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등을 출간했습니다.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그의 글 몇 편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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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라는 부동산


전주 한옥마을을 걷다가 우연히 한 집을 발견했다.

‘인생 부동산’이라니! 게다가 ‘이 사무소는 직접 운영합니다.’

라는 문구까지 붙어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 통 크게 ‘인생’이라는 상호를 붙힌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왠지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집이나 땅이 아니라 인생에 대해

무엇이든 대답해줄 것 같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폐업한 지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공연히

‘인생 부동산’ 주변을 서성거렸다.


인생의 문제가 생겨 상담을 할 곳을 찾지만 결국 타인들은

인생 자체를 바꾸어 줄 수가 없다. 엉킨 실타래처럼 막히고

꼬여 있는 문제들을 인내심 있게 풀어나가야 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생각해보니, 인생은 부동산과 닮은 데가 많다. 시세가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가 있다는 것, 투자 한번 잘못했다

완전히 망할 수도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세주고

타인의 마음을 전세나 월세처럼 받으며 산다는 것.

그러다가도 이따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보증금마저 날릴

수도 있다는 것.


은퇴 이후에도 수십 년을 살아야 하니 인생도 이제는 이모작을

해야 할 모양이다. 은퇴, retire, 타이어를 갈아끼운다는 뜻

이다. 새로운 삶의 영토를 찾거나 다시 일구기 위해, 길고 긴

삶을 안내해줄 ‘인생 부동산’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없는 국번”

이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역시 인생의 길을 일러줄 진정한 허가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구나.



★ 저 구름을 가져갈 수 있다면


영국을 떠나며 가장 가져오고 싶었던 것이 있다. 구름이다.

영국은 해양성 기후에다 바람이 강해서인지 구름의 변화가

유난히 다채로웠다.

터너나 콘스터블 같은 풍경화가의 그림에 구름의 표현이

풍부한 것도 그런 자연환경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우리나라의 구름도 영국의 구름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왜 나는 영국의 구름이 더 특별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건 구름의 차이가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모처럼 하늘을 보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구름이 아니라 구름을

바라볼 시간과 마음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마루나 풀밭에 누워 하염없이 구름을 바라

보곤 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 새로운 구름들이

눈앞에 밀려와 있었다. 어린 날에 바라보던 그 구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질문에 정현종 시인은

“내가 잃어버린 구름이, 하늘에 떠 있구나.” 라고 대답한다.


시인들은 누구보다도 구름을 사랑하는 종족이다.

일찍이 보들레르는 구름은 “신이 증기로 만든 움직이는

건축” 이라고 표현했다.

무엇을 가장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방인’ 보들레르는

“난 구름을 사랑해. 저기 흘러가는 구름.....” 이라고

대답했다.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도 구름에 관한 질문이 여럿 있다.


구름들은 그렇게 많이 울면서

점점 더 행복해질까?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덧없는 풍부함, 그것이 우리가 구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 오, 시간이여


내가 즐겨 차는 손목시계에는 셰익스피어의 초상과 함께 그의

희곡 “십이야, Twelfth Night”에 나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건 시곗바늘만이 아니다. 시계의 둥근

판을 감싸고 있는 이 문장 역시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가며

시간의 지혜를 말해준다. 번역해 보면 이렇다.


오. 시간이여

이 엉킨 매듭을 풀어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다.

이 매듭을 푸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어렵구나.


“십이야”에서 이란성 쌍둥이인 바이올라와 세바스찬은 풍랑

으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여동생인 바이올라는 남장을 하고

올시노 공작의 하인이 되는데, 올리비아에게 사랑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다가 오히려 그녀의 구애를 받게 된다.

여자의 몸으로 주인이 사랑하는 여자의 사랑을 받게 되자

곤혹스러워하며 내뱉는 탄식이 바로 이 문장이다.


때로는 시간만이 뒤엉킨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줄 수 있다는

것. 바이올라의 입을 빌려 전하는 셰익스피어의 이 통찰

앞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국 헤어진 오빠를 만나고

복잡한 상황이 정리되는 걸 보면 그녀의 무력한 고백이

가장 정확한 처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시간은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빼앗아

가는 시간과, 뒤엉킨 인생의 매듭을 풀어주며 용서와 화해

에 이르게 하는 시간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원망하기도 하고, 고통을 씻겨주고

가라앉혀주는 시간에게 감사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보다 시간의 너그러움에 좀 더 기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시계를 차거나 풀면서 이 문장을 읊조리

곤 한다. 바이올라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그것은

곧 나의 독백이 되기도 한다.

시계의 무게보다 그것이 퍼나르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유난히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 “오. 시간이여” 라고

가만히 불러본다.

삶의 가해자이자 해결자인 그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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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읽기만 해도 차분하고 세심한 성품의 저자임을 알아챌

수 있는 감성의 책을 한번 보았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40여 편의 에세이 중 눈에 더 들어오는 3편의

글을 골라보았는데,


첫 번째 글은 저자가 전주의 한옥마을을 걷다가 발견한 한

부동산업소의 간판을 보고 쓴 글입니다.

'인생 부동산' 마치 인생에 대해서 큰 깨달음을 얻은 주인장이

인생 상담을 해줄 것 같은 인상을 저자는 받습니다.

그리고 곧 인생과 부동산의 공통점을 찾아냅니다. 인생도

부동산처럼 시세의 오르내림이 있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고전을 할 수도 있고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구요.

폐업한 '인생 부동산'에 건 전화에서는 국번 없는 전화라는 공허한

멘트만 반복해서 흘러나옵니다.


두 번째 글은 구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자는 영국 생활에서 본 구름이 인상깊었었고, 한국에 돌아와

만난 구름도 그에 못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곧 마음의 문제였는데, 특히나 시인들은 유난히 구름에

대해 많은 애정을 표현했었네요.

구름을 신이 만든 건축물이라 표현하기도 하였고, 구름의

가치는 '덧없는 풍부함' 이라는 멋진 말로 요약을 합니다.

덧없음과 풍부함은 가치가 대립을 하는데, 그 두 가지가 절묘

하게 녹아 있을 수 있는 접점이 바로 구름이 아닌가 합니다.


세 번째 글은 시간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 Twelfth Night”에 나오는 명대사를

가지고 저자는 시간에 대한 단상을 풀어냅니다.

시간은 양면성 즉, 세월의 흐름으로 젊음과 아름다움이 지나가

게 하는 면과 시간이 약인 것처럼 세월을 통해서 풀리지 않는

난제를 해결하게 해주는 면이 있었습니다.

삶의 문제를 일으키게 하기도 하고, 해결하게 하기도 하는

시간을 가해자이자 해결자라고 운치있게 표현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시간과 화해하고

시간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과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여유로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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