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中
<문학을 통한 치유의 모색 - 시경, 詩經>
--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中
강 일 송
오늘은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 중, 시경(詩經), 즉 문학
을 통한 삶의 상처의 치유에 관한 내용을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강경희교수는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를 하였고 중국으로 유학하여
남경대학교에서 중국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현재 이화여대, 동국대, 건국대 등에서 중국 고전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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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고해(苦海)
모든 살아있는 삶은 고해와 같다. 탄생부터 소멸까지 생로병사
를 겪는 생리적 고통은 물론,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고통,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처럼 정신적 고통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고통이 우리 삶의
무늬를 수놓는다.
시인 신경림은 <갈대>에서 ‘산다는 것’은 곧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 노래했다.
그 수많은 고통을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우리는
고통의 바다 속에서 ‘조용히 울면서’ 살아간다.
크고 작은 상처를 받은 우리에겐 따뜻한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다.
★ 힐링과 치유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힐링의 열풍이 거세다. 하지만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아주 잠깐만 괜찮은 위로인 것이 대부분이다.
진정한 힐링이란 외부의 어떤 것에 기대어 아픈 영혼을 위로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삶을 치유하고 성장
하는 일이다. 그래서 상처받기 이전과는 다른 삶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 문학의 역할
문학은 인간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인간 삶의 내밀한 결을 다루는 문학은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는 상상적 거울이다. 독자는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
을 성찰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미와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한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자신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찾는 일이다.
문학에는 본질적으로 치유의 기능이 있는데, 언어로 표출될 때
더 이상 고통은 힘을 과시할 수 없게 된다.
가슴속에 꼭꼭 묻어둔 아픔을 ‘말하는 것’이 바로 치유의
첫걸음이 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고통의 감정과 문학 작품 속에 표현된
감정이 서로 공명하면, 우리 마음에 갇혀 있던 것이 바깥으로
발설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시인 이성복은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라고 했다.
★ 글쓰기의 힘
그런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을 종이에 적으면
비로소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실체가 된다.
모호한 감정이 객관적인 관찰 대상이 되면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즉 언어적 체계를 통해 표현할 수 있을 때 상처가 치유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미라는 “글쓰기는 주의 깊에 보는 행위 그 자체이며
자신이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지 알게 해주는 행위이며, 그것도
끊임없이 달아나고 소용돌이치는 대상을 붙들어 고정시켜놓고
지켜본다는 점에서 성찰적이고 치유적”이라고 말했다.
★ 고대 중국의 “시경”
고대 중국에서는 “시는 마음을 말한 것이고, 노래는 말을 길게
늘인 것”이라 했고, 또 “시란 마음속에 있는 뜻이 가는 바이다.
마음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하면 시가 된다.”라고
정의했다.
<시경>은 대략 기원전 천 년부터 5백 년 사이에 황하 유역의
중원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를 모은 가사집이다.
이처럼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시는 노래와 더불어 존재했다.
한나라 건국 후 유가사상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시’는
경전으로 승격되었고 비로소 ‘시경’이란 이름을 얻었다.
경전이 된 ‘시’는 본래 민중이 그네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한
대중가요였다. 시대가 흐르면서 음악은 사라지고 가사만 남아
서 지금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 글쓰기로 힐링과 치유하기
언어로 고정된 고통은 어지럽고 모호한 대상에서 구체적인
실체로서 확실하게 파악되는 대상으로 바뀌면서 마침내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프레임이 다시 짜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다가 공감이 되는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과 만나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치유로서의 시 쓰기의 시작이다.
시를 쓰는 것을 어렵게 생각말자. 그냥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그저 따라 적으면 된다.
시는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한 것이니까.
이때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감정이나 생각에 그 어떤 가치
판단도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 생각에
도덕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되면 그 감정, 생각은 억압된다.
적은 것을 다시 읽어보면 현재의 자기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고통 사이에 틈이 생기면
그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마침내 자신의
삶에 닥친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때 비로소 치유와 성장이 시작되고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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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얼마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강경화작가의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에서 다른 한 주제를 나누어보았습니다.
문학, 더 들어가 시(詩)가 어떻게 인간삶의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하게 해주는지를 보았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고통으로 누구하나
자유롭지 못하고 마음속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이를
신경림 시인은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이 지점에서 문학의 개입이 가능한데, 문학은 그 자체가 삶의
전반적인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인간 내면의 내밀한 마음의
결을 대상으로 하기에, 인간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문학 작품 속의 감정이 서로 공명이 되고
공감이 되면 비로소 그 응어리가 풀어지면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되지요.
더 나아가 마음속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 나의 감정은
객관화된 객체가 되어 비로소 이를 새롭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간극, 틈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는 기원전 1000년~500년 사이에 쓰여진 시경의 작품들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고대 인간의 삶이나 현대 인간의 삶은
놀랍도록 변함없이 같습니다.
거창한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저자는 그냥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해도 이미 힐링과 치유의
기능이 작동을 해서 어떤 치유 방법보다 놀라운 효과를
발휘해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 준다고 합니다.
어떻게 본다면 문학작품은 그것이 소설이든지, 시든지 간에
인간 삶의 시뮬레이션이 진행되는 장(場)이라는 생각입니다.
나 혼자만이 겪는 감정의 슬픔이나 고통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공명과 공감이 스스로를
고통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겠지요.
시간이 날 때마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작들을 한번씩 들여다 보고 읽으며 삶의 메마름을 해갈할
방편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