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미술관”中
<나와 상관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
--“생각의 미술관”中
강 일 송
오늘은 미술과 철학의 만남에 대한 책 “생각의 미술관”
이야기를 한번 더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번 철학은 보통 글이라는 텍스트안에 존재한다고 생각
하지만 그림을 통해서도 충분히 철학적인 사유가 가능
하다고 이야기했었지요.
저자인 박홍순은 인문학자로 “미술관 옆 인문학”, “사유와
매혹”, “히스토리아 대논쟁”,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등 다양한 작품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도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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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그리트의 <골콘다>, 1953년
마그리트의 <골콘다>는 참 묘한 그림이다. 중산모를 쓴 양복
차림의 수없이 많은 남자가 도시의 하늘을 채우고 있다.
모두 짙은 색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한눈에 대도시의
사무직 직장인으로 보인다.
배경도 유럽 대도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건물이다.
어떻게 보면 하늘에서 인간이 비가 되어 내려오는 듯하고,
다른 시각에서 보면 지상의 인간이 무더기로 하늘을 향해
공중 부양하는 듯하다.
하나의 그림 안에 여러 암시가 숨어 있다. 언뜻 같은 무늬가
반복되는 벽지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화가가 곳곳에 담아놓은
암시를 붙잡고 고삐를 조이면 현실과 맞닿는 지점이
드러난다. 특히 현대인이 맞닥뜨린 복잡한 현실과 만난다.
◉ 첫째로, 왜 중산모를 쓴 남자인가? 화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산모를 쓴 남자는 익명의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 중산모
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쓰던 모자이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특성이 사라진다. 익명화된 개인, 현대인을
표상하는 것이다.
하나같이 동일한 복장, 특히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장 차림
은 집단으로서의 개인, 전체의 다른 이름으로서의 개인을
나타낸다.
현대인에서 개성과 자율성을 가진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마치 레일을 달리는 기차처럼, 동일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동일한 과정을 따라 질주하는 군중의 한 부분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승진 사다리를 올라야 하고, 정년 때까지
큰 변동 없이 직장에서 자리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취업 이후 상당 기간, 대도시에 자기 소유의 집을 마련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숙제다.
다양한 주체는 사라지고 사회가 강제하는 경쟁논리를
속속들이 내면화한 군중을 마그리트는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이다.
◉ 둘째로, 그림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 심상치 않다.
어느 한 사람도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림의 건물의 창문과 커튼도 하나같이 모두 굳게 닫힌
상태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외부를 경계하는 높은 성벽을
둘러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현대인은 항상 군중의 모습
으로 살아가면서도 역설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경쟁 원리, 효율성 논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성적 경쟁이든 직장인의 연봉이나 승진 경쟁이든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야 한다.
경쟁자 사이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마음을 기대
하기는 어렵다. 최대한 경쟁력 있는 모습, 강한 인상을
드러내야만 한다. 인간은 잘난 모습과 못난 모습이 다
섞여 있기 마련인데, 모두 드러내기 어렵다.
당연히 외면적으로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높은 경계의 벽을 세운다.
◉ 셋째로, 왜 그림 속 인물들은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서
부유할까? 마그리트는 “나는 당신이 예상하지 못할 곳에
남자를 배치했다. 남자는 하늘에 있다”고 한다.
우리의 상식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인데, 상식을 벗어난
곳에서 떠돈다.
골콘다(Golconda)라는 그림 제목은 인도의 부유한 도시, 마법
같은 도시를 말한다. 인도 동남부에 있는, 과거 왕조의 수도
로서, 번성하던 시기에는 다이아몬드 생산지로 유명했고, 막대한
부를 누렸다고 한다. 따라서 골콘다는 무진장한 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제 왜 사람들이 땅이 아니라 공중에 떠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경쟁과 신분상승
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
만약 정상적인 사다리 오르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편법, 극단
적인 경우에는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루려 한다.
하다못해 복권이라도 사서 허황된 일확천금의 꿈이라도 품고
위안을 삼는다.
현실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땅에 붙어있지만, 정신은
도시의 공중 위에서 정처를 찾지 못하고 떠다닌다. 신분상승과
대박의 꿈을 좇아 발을 딛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을 산다.
매일 발을 허정대며 빌딩과 빌딩 사이를 떠돈다.
◉ 이 그림의 해석하고 풀어내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철학 영역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몇 가지 연결 과정을 간략하게 다시 확인해 보자.
중산모를 쓴 모습에서 대도시 직장인을, 동일한 정장 차림에서
군중의 동일한 목표와 과정을 연결시켜 내적 연관성에 주목했다.
또한 서로 엇갈리는 시선에서 경쟁사회와 내면의 경계, 공중
부양하는 사람들에서 신분상승 추구 경향으로 연결 고리를
찾았다.
하나의 사물이나 현상을 고립된 것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물
이나 현상과의 연관성에 주목할 때 사고의 지평이 비약적으로
확장된다.
◉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인간, 그리고 제반
현상은 순수하게 독립적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어떤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은 서로 다른 요소가 관계를
맺으면서 나타나는 변형, 변화와 함께 일어난다.
개인과 집단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순수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일부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집단도 그러하다. 개인이 집단 속에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각 사회도 여러 사회 가운데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유대관계를 통해 개인이면서 동시에 인류다.
그리고 인간집단으로서의 계급, 문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인위적 성과물을 포함하는 문명과 연관을 맺으면서 특정한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개인은 기본적으로 그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다양한
생활을 영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행위를 탐구하는 작업은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영역과 요인이 맺는 연관성을 찾는 일이다.
연관관계를 통해 생각은 개별 현상을 넘어 인류와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또한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일정한 경향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철학적 생각은 이 과정을 통해 넓어지고 풍요로워진다.
연관을 통한 사고의 확장 가능성을 늘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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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번 "앎과 확신"에 대한 사유를 마그리트의 그림을
통해 확인했었고, 오늘도 화가이자 철학자인 르네 마그리트
(1898-1967)의 <골콘다, 1953> 를 통해 철학적 사유를 해보
았습니다.
오늘은 흔히 보았던 그림인 <골콘다>인데, 이 그림을 통해 저자는
상상과 사유의 나래를 펼칩니다.
중산모를 쓴 정장차림의 남자들이 도시를 공중부양하고 있는
이 그림은 철학자인 화가가 많은 암시를 곳곳에 심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중산모를 쓴 남자들은 똑같은
정장차림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창문과 커튼이 내려진 건물이 상징하는 현대의 도시에서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단절된 개인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그들은 늘 신분상승과 대박의 꿈을 좇아 발을 땅에 대지
못하고 늘 도시의 공중을 부유합니다.
참으로 현대인의 일상과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이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이 1953년이지만, 이 상황은 지금 우리나라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오늘 저자는 골콘다를 보고 다양한 사유를 하는 방식을 알려
주었고,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어떤 형태로든 연관을 가지고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철학적 사유는 이러한 관계성, 연관을 찾아서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일정한 패턴, 경향을 발견해 내고, 이를 통해 생각의 폭이
넓어지게 하며 우리네 삶이 풍부해지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하루도 골콘다의 군중과는 달리, 개인으로서의 중심을
가지고, 자유스러운 사유를 유지하는 삶의 하루를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