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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세상의 유명한 사과들>

by 해헌 서재

<세상의 유명한 사과들> 이운진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中


강 일 송


오늘은 시(詩)와 그림의 아름다운 만남을 보여주는 글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예술 중 문학과 미술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 두 장르가 만났을 때, 요즘말로 어떤 멋진 '케미'가 있는지 함께 보시지요,


저자인 이운진(1971~)시인은 1995년 월간 ‘시문학’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과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사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은 다양한 과일을

우리가 먹을 수 있지만, 사과만큼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과일이 있나

싶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시와 알프레드 뒤러, 세잔의 그림을 통해 함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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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의 사과


미국의 식탁에 오른 음식들은 평균 2,400킬로미터를 여행해서 온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여서 글로벌화된 식탁을 늘 마주한다.

온갖 다양한 열대과일과 남미에서 온 포도까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사과만큼 우리와 함께 해오고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있는

과일이 있을까.


성경에 나오는 이브의 사과는 물론이고,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파리스의 황금사과, 백설공주 이야기의 독이 든 사과, 윌리엄 텔이

화살로 쏘아맞힌 사과, 만유인력의 발견하게 해 준 뉴턴의 사과는 너무도

유명하다. 또한 내일 세계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사과도 있고,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일컫는 세잔의 사과도

유명하다.


★ 이브의 사과, 유혹의 사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는 지상낙원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선악과를

먹어 보라는 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이브는 결국 먹음직스럽고

탐스런 사과를 따 먹게 된다. 이후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이 이야기는 시대를 이어 오며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이 장면을 성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남겨 놓았고, 오늘 소개할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아담과 이브”에서도 나타난다.


뒤러는 독일이 자랑하는 화가인데,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꽃피고 있을 때

독일의 르네상스를 대표했던 화가이다. 그는 “인체비례론”이라는 책을 썼을

정도로 평생 동안 비례를 연구했고, 아담과 이브의 그림에도 팔등신이 넘는

아름다운 비례를 대입시켰다.

이 그림을 잠깐 보면, 에덴동산에 있던 모든 과일을 다 먹어본 그들은 이 탐스

러운 빨간 사과가 궁금했을 것이다. 거기다 뱀의 속삭임에 마음이 흔들린 이브는

아담에게로 눈빛을 고스란히 보낸다. 아담의 표정도 죄책감보다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담긴 눈빛이다.


★ 세잔의 사과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는 인류 역사상 유명한 세 개의 사과로, 이브의 사과와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를 꼽았다.

폴 세잔(1839-1906)은 아버지의 강요로 법대에 진학했지만 결국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최고의 미술 학교인 국립미술학교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그 뒤 살롱전에도 세 번의 출품이 낙선하고 만다. 간신히 인상파 전시회에

같이 작품을 냈지만 언론과 미술 평론계의 무시와 심한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로

사과가 썩어 짓무를 때까지 100번이 넘도록 관찰하고 그리고 또 그렸다.

세잔은 실제 보이는 대로의 사과를 그리려고 한 게 아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에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구조가 있다고 그는 믿었다.


세잔의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의 포도송이와 사과, 그리고 접시, 유리잔, 등은

수많은 고려 끝에 배치가 된 것일 것이다. 고갱은 이 그림의 연녹색 사과와

붉은 사과가 서로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림의 전체 구성을 이해하고는 세잔을

하늘이 내린 화가라고 불렀다 한다. 이는 두 사과의 시각적인 운율을 고려한

것이라고 후에 사람들은 평한다.


또한 세잔은 한 사물을 여러 방향에서 관찰하고 그것을 하나의 화폭에 담았다.

이 방식은 피카소 같은 화가에게 영향을 주어 입체파를 탄생시키게 된다.

그러니 세잔의 사과가 없었다면 피카소도 없었을 것이다.

피카소는 세잔을 두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했으니 세잔이 미술사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고 그로 인해 현대미술이 출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사과를 먹으며


함 민 복(1962~)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를 지탱해온 사과나무 뿌리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 사과 한 알에 든 우주


아사삭 아사삭 사과를 먹으면 입안에 사과의 모든 시절이 한꺼번에 다

고이는 기분이 든다. 사과가 익기 전까지의 햇살과 바람, 밤하늘의 어둠

까지도 사과 안에 담겨있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사과나무 혼자만으로는 안 되고, 사과를 키우는 농부의 정성만으로도 안 된다.

거기에는 온갖 것의 인연과 지나오고 지나갈 모든 시간이 다 함께 있다.


시인은 사과를 먹는 건 사과가 있기까지 관여했던 모든 시간과 기억을 먹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사과나무 뿌리를 움켜 쥔 흙과 땅위의 모든 것들을

끌어당기는 지구의 중력까지, 아니 더 멀리 우주의 시간까지 가져왔다.

태초에 우주가 생기지 않았다면 사과 한 알은 있을 수 없을테니.

결국 흙으로 돌아갈 자신이 돌고돌아 사과를 키울 것이고, 시인은 사과

한 알에서 온 우주와 생명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류를 움직인 사과가 하나 더 등장했다. 바로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다. 이처럼 사과는 인류의 새로운 창조와 혁신의 장이 열릴 때

마다 등장했다. 앞으로 세상을 바꿀 사과는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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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자는 사과를 통해 역사와 문학과 미술을 함께 아우르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선악과는 인류의 역사이야기에서 가장 일찍

시작된 사건이라 할 수 있으니 종교의 시대였던 중세를 거칠 때까지 많은

회화와 예술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독일의 화가 뒤러는 탐스러운 빨간 사과에 중점을 두면서 아담과

이브의 아름다운 신체비례와 호기심과 즐거움이 섞인 눈빛을 멋지게

그려냅니다.


두 번째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하는 세잔의 그림입니다. 오늘 보여드린

사과의 정물 말고도 많은 사과그림을 세잔은 남겼고,기 고향에서 본

생 빅투아르산의 연작도 유명하지요. 그는 다른 인상파와는 달리 사물의

본질과 그 근본 구조와 구도를 발견하고자 하였기에, 입체파를 잉태할 수

있었고, 그의 사과가 그토록 유명해질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함민복 시인의 사과에 대한 시였습니다. 함민복 시인은 익히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집을 내었던 작가로 사색의 깊이가 깊고

철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늘 시에서, 시공간을 아우르는 확대된 사고의 지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서 세잔은 그 근본의 구조를 보았다면, 함시인은

사과 한 알에서 사과의 살아온 모든 역사를 보았던 것입니다.

사과를 키운 것은 흙과 농부의 땀만이 아니라, 사과를 지나쳐 간 소슬바람,

햇살, 눈송이, 벌레의 기억 등등, 거기다가 경험의 편린으로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파란 하늘까지...

시인의 상상력은 급기야 우주로까지 펼쳐나가, 빅뱅의 순간까지 거슬러

갑니다. 우주 만물의 순환을 상기하며 결국 나와 사과가 하나로 어우러지게

되지요.


사과라는 아이템을 놓고 오늘 이운진시인은 우리를 다양한 영역으로 안내하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인류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한 사과는 현대에 이르러

스티브 잡스의 "애플"까지 진행해 왔고, 향후 어떤 사과가 다시 인류를 새로운

장으로 인도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평온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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