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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낭만주의-상상과 감정으로서의 예술>

“미술론(美術論) 강의”

by 해헌 서재

<낭만주의-상상과 감정으로서의 예술>

--“미술론(美術論) 강의”中, 오병남


강 일 송


오늘은 석학인문강좌 중 “미술론” 책에서 “낭만주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책은 우리 AFP 강좌에서 나누어준 책이었지요.


저자인 오병남(1940~)교수님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하였고 미국 일리

노이대학교 시카고대학원 미학 박사과정을 나왔습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 한국

미학회 회장, 국제 미학회 한국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십니다.


저서로는 “인상주의 연구”, “미학강의”, “미학으로 읽는 미술”, “예술과 철학” 등, 이외에도

많은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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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적’과 ‘낭만주의’


‘낭만적’이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는 “로맨틱(romantic)"은 고전적으로 번역되고 있는 ‘클래식’

과 대비되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은 중세 프랑스의 속어인 “로망즈어(romange)"에 기원을

두고 있고, 이 로망즈어로 쓰여진 중세시대의 옛날 얘기가 “로망스(romance)”이다.

그것은 공상적이고 괴팍하고 가당치 않은 기사들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러한 뜻 때문에 ‘로망스’는 르네상스 이후 신고전주의의 예술에 반대되는 새로운 예술의

경향을 말하는 용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같은 함축의 “로맨틱”이란 말이 영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이다. 이 같은 사실은 1755년 S.존슨이 편찬한 <사전>에 로맨틱이란 어휘의 뜻풀이에서 발견

되는데, “로맨틱은 거칠고, 있을 것 같지 않고, 허황되고, 공상적이고, 야생적인 풍경을 담은

로망스를 닮은....”라고 적혀있다.


로맨틱은 일본인들의 발음을 다시 한자어로 바꾸어 “浪漫的”이 되었고 우리는 “로맨틱”을

“낭만적”으로 읽고 있는 중이다. 의미상으로는 적합한 말을 찾자면 유래도 모를 “낭만적”

이라는 말보다는 “파격적”이라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파격적인 “낭만적” 예술은 그것이 지닌 반이성적이고 반고전주의적 함축 때문에

민족주의적 경향을 띤 독일 문화론자들에 의해서 퍼져 나갔고, 그러던 중 그 말은 과거의

지녔던 의미에서, 19세기에는 “미래사회의 변화”를 기약하는 것으로까지 의미가 변하였다.

즉, 가당치 않고 허황된 것이라는 뜻에서 진지하고 정직하고 자발적인 인간의 마음을 대변

하는 말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


★ 로맨틱의 의미가 바뀐 이유, 배경


그렇다면 존슨의 사전 정의 이후 40년 사이에 왜 그 같이 의미가 변하였을까?

이 기간 서구의 세계에는 두 개의 커다란 혁명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의 독립전쟁(1776)과 프랑스의 대혁명(1789)과 같은 정치혁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장원제도를 대체시킨 산업혁명이다. 따라서 자유의 개념을 자각해 가는 중에

경제 구조의 변화가 초래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새로운 중간 계층의 대두와 새로운 삶의

방식이 수반되었다. 그 결과 시민사회적 사고가 서서히 형성되어 갔다.

이 같은 사실은 모든 분야에서의 새로운 사고와 취미의 잉태를 의미한다.


철학의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신고전주의적 예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던 합리주의가

서서히 퇴조해가고 있는 중에 독일을 중심으로 반계몽사상이 대두하고 있었고, 자아 혹은

주관을 강조하는 독일의 관념론이 잉태되고 있었다.


★ 낭만주의 사고를 촉진시킨 취미상의 변화


(1) 고딕풍 건축과 중세 취미의 부활

-- 고전주의 미술의 권부였던 아카데미의 이론이 힘을 잃자 중세를 선망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됨. 고전주의의 견고한 규칙성에 반하여 고딕의 비규칙성을 대조하기도 했다.


(2) 숭고(sublimity)미의 유행

-- 계몽 시대를 통해 발전한 과학적 탐구는 모든 것을 정확히 증명함으로써 자연의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결국 미지의 영역에 다다라 좌절됨. 이 시기 거친 파도나

예측할 수 없는 알프스의 눈사태 등이 오히려 신선하게 경험되고, 이와 같은 풍경을

‘숭고한’ 자연이라고 부름.


(3) 대순회 여행의 유행

-- 17세기 말부터 18세기를 통해 귀족들에게 패키지 여행으로 1-2년에 걸쳐 주로 프랑스나

이태리를 여행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것은 본래 영국 신사들의 교육을 위해 생겼으나

이태리 고전미술의 수집과 그에 대한 취미를 확산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4) 개인주의 풍조의 등장

-- 마지막으로 루소로 대변되는 “개인주의적 풍조”의 등장을 들 수 있다. 루소는 진정 고독한

개인이었다. 그는 혼자 걸어서 알프스를 횡단했고, 그의 “고백록”에 그러한 숭고한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 낭만주의 역시 또 다른 이상 중의 하나


낭만주의는 상상력과 감정을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확신하면서 역사에 등장

했다. 그들의 상상과 감정은 무한에 이르는 통로로서의 역할도 했고, 고차적인 신의 실재

에 대한 통찰의 매개로서 역할도 했으며 인간 내면의 비밀을 여는 열쇠로서의 역할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초월적인 존재가 허황된 것으로 판명되고, 낭만주의자들을 열광시켰던

‘무한’이라는 개념이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이 되자, 낭만주의 또한 또 다른 이상의

하나일 뿐이었다. 따라서 시간의 경과와 함께 낭만주의는 시대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어갔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의 물질주의는 개인의 상상에 아무런 공감을 가지지

못했다.


이제 인간은 자기의 현재의 모습과 그 현재의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 같은

‘사실’에로의 전향은 중요한데, 이것이 새로운 “사실주의”의 도래를 알려주는 예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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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미학계의 거장

이자 석학이신 오병남교수님이었고, 그 내용 중 낭만주의에 관한 부분을 살펴

보았습니다.


낭만주의는 본래 로맨틱 이라는 용어를 일본말로 바꾼 것을 우리가 다시 들여온

말임을 밝혀보았고, 처음에 로맨틱은 고전주의에 반하여 일어난 사조를 말했는데

이후에는 긍정적 의미로 전환되어 현재의 로맨틱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철학에 있어서도 신고전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던 합리주의에 대항해서 반계몽

주의적인 사상이 일어나고, 미술에서도 상상력과 감성이 중요시 되는 사조로

흘러가게 됩니다.

여기에는 크게 정치적인 변화인 "미국독립운동"과 "프랑스혁명"이란 큰 사건들

이 있었고 경제사회적으로는 "산업혁명"이란 커다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중간계층이 생겨나고 시민사회가 형성이 되면서 낭만주의의

배경이 무르익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낭만주의도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자 하나의 이상적인

사조로 변화되게 되는데, "사실주의"의 도래가 그것입니다.


우리가 문화나 예술의 변화를 보면 언제나 "정형"과 "파격"이 순환됨을 알수가

있습니다. 패션에 있어서도 치마의 길이는 짧아졌다가 길어졌다가 반복을

하지요. 마찬가지로 정형의 고전주의가 대세를 이루다가 다시 낭만주의처럼

파격이 뒤를 잇습니다. 계절이 여름에서 겨울로, 다시 겨울에서 여름으로 흘러

가듯이 끊임없이 그 패턴을 반복됩니다.


한 시대를 본다면 음악과 미술, 철학, 문학 등이 비슷한 사조로 함께 흘러감을

또한 목격할 수도 있지요. 철학에서도 합리주의의 계몽사상이 반계몽주의로

바뀌어 유행이 변화합니다.


이러한 흐름의 원리를 프레임으로 하여 현대의 문화도 대입을 하여 바라본다면

상당부분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생물의 유전에서도 돌연변이

나 전혀 설명이 안 되는 예외도 존재는 하니 모든 현상을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겠지만 해가 길어지면 짧아지고, 차면 다시 비워지는 자연의 섭리가 어디에서나

통용됨을 이해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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