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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그림 탐닉>

“미술관에서 나는 새로워질 것이다”

by 해헌 서재

<그림 탐닉>


--“미술관에서 나는 새로워질 것이다”


강 일 송


오늘은 그림에 관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예술 여러 분야 중 회화, 즉 그림은 쉽기도

하고 친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부담스럽기조차 합니다.

명화를 보면서, 도대체 이 그림이 왜 수백 억이나 하는지, 어린이가 그린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고 만화를 베껴 놓은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사람들한테 유명한지 말이지요.


오늘 저자인 박정원(1981~)은 우리에게 이러한 선입견을 넘어서서 그림을 그림 자체로 즐기고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국민대 회화과를 나온 그녀는 화가 남편과 결혼해서 현재도

그림을 매일같이 그리고,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가 안내하는 그림들 중 몇 편을 함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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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아침은 어떠십니까?

--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아침의 태양, 1953


미국의 현대 리얼리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의 태양>을 보면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활기찬 새날을 의미하는 ‘굿모닝’이 아닌 다른 의미의 아침을 맞은 침실 풍경임을 알게

됩니다.

선명한 아침 햇살은 침실로 들어와 직사각형의 날카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냅니다.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는 아마도 그렇게 앉아 지난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시선은 공허하고 아침 태양을 맞이한다기보다 낯선 시간과 공간 속에 홀로

갇힌 듯 보입니다.


호퍼는 말년에 60대 부인 조세핀을 모델로 이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도시의 보편적인 여성

상을 보여주려고 하였는데, 그가 그린 그림속의 고독은 지금 현재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삶의 리얼한 풍경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버전으로의 업데이트를 알리는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문화와 양식으로 삶을 빠르게 업데이트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호퍼가 그린 아침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동시대인의 심리적 고립감과 불안 등을 호퍼의 그림 속에서 조용히

대면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죠.


★ 삶과 죽음, 그 한가운데 맺힌 꽃나무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꽃이 핀 아몬드 나무, 1890


만개했던 벚꽃 잎 수만 개가 바람 한 자락에 쓸려 한낮의 폭죽처럼 흩날리면, 우리는 일 년

에 한 번뿐인 꽃잎의 새하얀 춤 속에서 일상의 황홀경을 맛봅니다.

고흐의 명작 <꽃이 핀 아몬드 나무>는 봄을 마주한 인간의 보편적 감동을 그 어떤 그림보다

자연스럽게 담아낸 그림입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의 아기, 1890년 1월에 태어난 조카를 위해 그들의 침실에 걸어 둘 이 그림

을 제작했습니다. 테오는 형의 굳센 의지와 용기를 닮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아들에게 빈센트

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1888년부터 1890년까지 고흐가 매료되었던 소재인 아몬드 나무와 꽃송이의 이 그림은 자연을

다룬 일본 판화의 단순한 구도와 짙은 테두리의 간명한 표현법이 이 그림 안에 흡수되어 있습니다.


고흐에게 조카의 탄생은 봄꽃이 머금은 충만한 기쁨처럼 여겨졌으나, 그해 6월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그림은 빈센트의 마지막 봄이자 또 다른 빈센트의 첫 봄의 순간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죽음과 탄생의 한가운데 맺힌 아몬드 나무의 하얀 꽃송이를

올려다보며 우리도 이 봄을 새롭고도 소중한 것으로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일상의 완벽한 균형을 담다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 우유 따르는 여인, 1657-1658


17세기 네덜란드,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인이 부엌에 서 있습니다. 툭 튀어 나온 이마와

섬세한 콧날을 가진 여인은 주전자를 기울여 우유의 양을 섬세하게 조절합니다.

화가 페르메이르는 네덜란드 부르주아 가정에서 일하는 하녀의 시간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당시 북유럽 회화 중에는 하녀를 대상으로 한 그림들이 여럿 존재합니다. 이 그림도 네덜란

드 서민의 구체적인 문화와 유행을 담고 있는 일종의 풍속화라 볼 수 있죠.

당시 화가들은 가사노동하는 하녀들을 일종의 성적 대상의 상징으로 주로 그렸는데,

페르메이르의 작품 속에는 이러한 상투적인 성적 은유가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색과 형태의 탁월한 균형을 통한 여인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더욱 부각되어 있지요.


일상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찰나를 담아낸 화가의 감각이 몇 세기를 거치면서도 퇴색하지

않는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 빛 바랜 여인, 어머니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1834-1903),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1891


19세기 런던식 인테리어로 꾸며진 회색 벽을 배경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나이 든 여인이

보입니다. 차분하면서도 슬픔이 묻어 있는 얼굴과 그 곧은 자태만으로도 그녀의 고고한

인격을 절묘하게 전달됩니다.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유지하고 있는 균형은 그녀가 이 무채색 공간의 오래된 주인이라는 듯

고요히 권위를 드러내지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는 ‘예술을 위한 예술’인 유미주의를 지향하던 화가로 미국에서

태어나 파리와 런던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그림의 모델은 화가의 어머니였는데, 지금은 제목과 달리 <화가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해졌고 지금은 휘슬러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복잡하고 강력한 의미에 대한 방증이 아닌가 합니다.


이 당시 휘슬러의 어머니 안나 맥닐 휘슬러는 아들이 지내던 뉴욕 첼시에 방문했다가 다른

모델의 대타로 그림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당시 아들과 동거 중이었던 연인 조안나

히피넌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런 모자 사이의 갈등이 그림 안에서 은근히 드러납니다.

우선 화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델로부터 화가와의 심리적 거리감이 나타납니다.

화가는 벽에 걸린 액자, 회색 커튼, 검은 드레스와 같은 소재와 그것들 간의 단정한 조화를

통해 유미주의를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작품 안에는 모델을 서는 내내 기도를 드렸다는 독실한 청교도 어머니의 기품과 절제된 삶이

감각적으로 담겨 있기도 합니다. 화가와 어머니의 사연을 알고 나면 그림은 또 새로워

집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얻는 사랑과 감사라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아닌 복잡한 애증과

단절의 감정을 이 그림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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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술 중에서도 회화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명화들을 보고, 도대체 왜 저 그림이 그렇게 유명하고 왜 그렇게 비싼

지 고개가 갸우뚱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미술도 예술의 일종이고, 예술은 인간의 삶에 감동을 주고,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하면, 과거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그림들은 무언가 시대를 거슬러 감동과 울림을 주는 부분이 있겠다 하겠습니다.


오늘 저자는 미술을 전공하고, 화가랑 결혼해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감상

하고 그림과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그가 고른 그림 중 저한테 울림이 있는 몇 점을 골라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의 리얼리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었습니다. 호퍼의 그림

들은 딱 보기만 해도 그가 그린 것을 알 정도로 개성이 뚜렷합니다. <주유소>,

<호텔방>, <철길 옆의 집> 등등, 수많은 작품들은 현대인들의 군중속의 고독 등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이 무미건조하고 고독할수록 화가의 진짜 마음은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사회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고흐의 <꽃이 핀 아몬드 나무>였습니다.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일본에서 들어온 "우키요에"(채색 목판화)의 그림 기법에 모두 열광하고

그 작품들을 수 백점 씩 소장하고 똑같이 따라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자포니

즘이라고 하는데, 이 아몬드나무 그림도 그렇게 그린 그림이라 합니다.

고흐는 늘 고달프고 외롭고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유일한 벗인 동생 테오와의

관계는 언제나 끈끈했습니다. 조카가 태어나, 동생이 굳이 자신의 이름을 조카

에게 붙이자 반대를 했지만, 마지막엔 이 그림으로 축하를 해줍니다.

같은 이름의 한 생명은 태어나고 한 생명은 그 해에 떠나갑니다.


세 번째 그림은 우리가 흔히 "베르메르"라고도 일컫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이었

습니다. 네덜란드 회화의 대가인 그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 중 "진주 귀고리를 한 여인" 은 영화나 소설로도 만들어졌던 대표작이고

오늘 "우유를 따르는 여인"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빛을 가장 잘 다룬 화가라는 명성답게 은은하게 창에서 들어오는 불빛과 엄숙하

기까지 여겨지는 동작, 몸의 균형에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옵니다.


마지막 그림은 미국의 화가 휘슬러의 작품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본래의 제목보다 "화가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그냥 그림을 보면 굉장히 깐깐한 노부인 한 명밖에 안 보이지만, 그림의

숨은 스토리를 알고나면 비로소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격한 교리의 청교도 신자인 어머니는 그림의 모델을 하는 중에도 내내 기도를

하였다고 하고, 아들과 동거하는 여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들과 심리적 갈등

을 겪고 있었다고 하지요. 이제 그림을 보면 아들을 사랑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안 차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가 평생 완고하게 지키며

살아온 삶의 궤적이 보입니다.


이처럼 그림은 그 화가의 살아온 삶과 그 시기의 마음의 상태, 변화 등을 지식으

로 알고, 그림을 보는 본인의 삶을 거기에 투영해 보는 시간, 그리고 화가가

그린 시기로 거슬러가서 그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훨씬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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