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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ul 27. 2017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서 진정한 세계화로”


                                강 일 송


오늘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 하는 콜럼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균형잡힌 역사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이성형(1959-2012) 교수는 부산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 국제 지역원, 콜레히오 데

메히코, 과달라하라 대학교, 과달라하라 자치 대학교의 초빙 교수 및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HK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저서로는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논쟁”, “IMF 시대의 멕시코”, “신자유주의의

빛과 그림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등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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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교도들에게 들어간 후 서유럽이 동쪽 무역로를

이용하려면 비싼 통행료를 바쳐야 했다.

당시 서유럽은 아시아나 이슬람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허약했다. 서구는 인도나

중국에 팔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술과 상품이 별로 없었다.

비단, 도자기, 향료와 같은 고급 소비재에서 종이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동방에서

이를 모두 수입해야 했다.


오스만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서유럽은 새로운 항로무역 루트를

찾기 위해 대서양으로 갔다. 풍요의 땅인 인도와 중국을 동쪽 루트를 경유하여

가기에는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식민지로 끌어들인 아메리카에서 대량의 금과 은을 약탈

하여 늘어가는 아시아와의 무역 적자를 간신히 지탱할 수 있었다.


★ “발견”이라는 미몽


사실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땅을 처음 밟은 사람이 콜럼버스라는 이야기는 거짓이다.

이미 바이킹족들이 고기를 잡으러 그린란드를 드나들었다. 오래 전부터 아메리카는

아시아인들의 대륙이었다. 시베리아에 있던 몽골계 아시아인들이 빙하기에 알래스카

를 거쳐서 아메리카로 들어왔고, 동남아인들이 남태평양의 군도들을 거쳐서 칠레로

흘러 들어왔다.

이들의 후예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놀랄 정도로 화려하고 장대한 아스텍, 마야,

잉카와 같은 발전된 문명을 건설했다.


콜럼버스의 역사적 기여는 아메리카란 신대륙을 ‘인도’라고 우겼고, 이 약속의 땅을

처음 ‘발견’하여 카스티야 군주의 땅으로 만든 것이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때문에 동쪽 진로가 막힌 유럽은 아메리카를 통해 황금과 은을

얻었고, 이를 통해 근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 탐험가이자 노예상인인 콜럼버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전통적인 담론은 “선량한 야만(bon sauvage)"

이라는 프레임이었다. 원주민들은 옷도, 무기도, 소유물도, 철도 없고, 종교도

글자도 없기 때문에 백지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 스페인의 훈육과 후견

이 필요하고 기독교식으로 입고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하며, 또한 문명인의 의무인

노동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처음에 물을 주고 음식을 주며 후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이러한 후의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의 생각은 애초부터 명확했다. 황금에 대한 욕망과 귀족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욕망이 그를 대서양으로 인도한 것이다. 그는 계속 “도대체 황금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집요하게 물었다.


후에 식민사업에 원주민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해지자, 그는 원주민들

이야말로 “부의 원천”이라고 기록한다. 그는 군주를 안심시키기 위해 편지를 보내기를

“성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팔 수 있는 모든 노예들을 여기에서 보낼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 ‘인디오의 보호자’ 라스 카사스 신부


오늘날 인권법의 원조로 인정받는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라스 카사스(1474-1566)신부는

정복자들과 일부 사제들의 원주민 수탈을 강하게 비난하며, ‘정의를 위한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당대의 해방신학자’였던 그는 인종을 넘어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의 최소치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하느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성서의 말씀에 근거한 그의 주장은

평등주의에 기초한 근대의 인권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 노예주의 신학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노예제에 찬성하는 노예주의 신학자들은 ‘정의의 전쟁론’과

‘자연 노예론’을 받아들여 스페인의 군사적 제국주의와 강압적 포교방식을 옹호했다.


첫째,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 천성적 조건을 가진 사람이 복종을 거부하면 전쟁은

정당화된다.

둘째, 자연에 반하는 식인이라는 끔찍한 죄를 제거하고 악마숭배와 가공할 만한

인신공희 의식을 단절하기 위해서 전쟁은 정당화된다.

셋째, 인간의 심장으로 신을 달래기 위해서, 이 야만인들이 매년 희생시키는 많은

무고한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은 정당화된다.

넷째, 불신자에 대한 전쟁은 정당화된다. 이 전쟁으로 기독교가 전파되는 길이 열릴

뿐만 아니라 선교사의 일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2) 원주민 보호 신학

라스 카사스는 1562년 84세때 자신의 논리를 서인도 위원회에 보냈다.


첫째, 정복이라고 불리는 모든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둘째, 우리는 부당하게 인디오들의 왕국과 정부를 빼앗았다.

셋째, 원주민에 대한 노동력 할당제는 잔인하고 그 자체로 악한 것이다.

넷째, 이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다섯째, 터키인이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전쟁과 약탈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처럼 인디오

들에 대한 전쟁과 도적질을 정당화할 수 없다.

여섯째, 스페인에 들어온 모든 금,은, 진주 그리고 물건들은 훔친 것이다.

일곱째, 아메리카 인디오들은 우리에 대해서 정의의 전쟁을 일으키고, 우리를 그들의

땅에서 몰아낼 권리를 가지고 있다.


북미의 신교도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에 행한 실천은 절멸전이었다. 좀 나은 경우에

인디언 보호구역에 몰아놓고 위스키와 담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신교도도 남미의 가톨릭 스페인보다 전혀 나을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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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현재의 서구 중심의 세계사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의 글을 함께 보았

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배우고 유통되고 있는 세계관이 굉장히 편협하고 한쪽에

치우친 일방적인 역사관이라고 일갈합니다.


특히 미국에서 굉장히 영웅으로 대접받는 제노바 사람 컬럼버스에 대한 다양한

팩트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인디언 보호구역에 격리되어 있는 미국의 원주민들은 미국의 건국사가

원주민 추방과 학살의 역사였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신대륙이 '발견' 된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에 의해 '침략' 당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스페인인들이 남아메리카로 들어갈 때, 그들이 주장한 것은 "선량한 야만"에 대한

역할이었습니다.   금과 은을 찾아간 그들은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

하고 노예상이 되어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두 가지 관점이 충돌하였는데, 노예주의 신학과 원주민 보호 신학

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다 평등하다는 성경의 말씀을 주장한 수도사

라스 카사스가 인상적인데, 그는 무려 수백 년 전에 인권에 대한 기초를 닦은

인물이었습니다.


국익을 위해 노예제를 찬성하고, 식민지 건설을 찬성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시절,

다른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었을텐데, 그는 용감하게 원주민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내놓습니다.

원주민들을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수백 만 명이 사는 땅을 보고도

주인이 없는 곳이라고 당시 유럽인들은 치부하였지요.


하지만 아직도 유럽인들, 백인들의 선민의식, 우월의식, 인종차별의식은 진행

형입니다.   얼마전 흑인 여검사가 타고 가던 차를 백인경찰이 아무 이유없이

잡아서 검문을 하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지요.


500년 전에 인권에 대한 기초를 다지게 해준 라스 카사스 신부의 이야기로

오늘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정복이라고 불리는 모든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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