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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Oct 07. 2017

<당신이 보지 못한 피렌체>

<당신이 보지 못한 피렌체> 성제환

--“경제사와 예술사를 아우르는 멋진 통섭”


                                     강 일 송


오늘은 르네상스가 일어난 멋진 도시 피렌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온 나라가 관광유적 자체인 이태리 여행에서도 늘 빠지지 않는 도시 피렌체,

이전에 오늘 소개할 저자의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이라는 책을 안내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좀 다른 방향으로 피렌체를 들여다 보겠는데요, 저자 소개를 먼저 한다면

성제환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대학교에서

노동경제학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원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저서로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문화의 창조성과 지적재산 보호”

“한국의 고용정책”, “문화 경제학”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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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상스 다시 보기


‘르네상스’하면 많은 이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아름다움을 창조한 천재 예술가들을 통해 한 시대를 기억하는 것은 당연

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나 너무 르네상스 시대를 예술의 영역에 국한시켜 보면, 파도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파도를 일으키는 실체인 바람은 알 수가 없다. 이제 우리도 르네상스

시대를 파도가 아니라 파도를 일게 하는 바람을 통해 들여다 볼 시점에 이른 것 같다.


르네상스라 불렸던 시대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의 영혼과 사지를 교회의 종소리와 성직자의

입으로 꽁꽁 묶어놓았던 중세 천 년을 넘어서 ‘인간이 중심’이 되는 문명 시대를 향한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 있다. 이를 계기로 뉴턴 같은 과학자가 신의 영역이었던 우주를

인간의 지성으로 탐구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바꾸어놓은 ‘근대’라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 르네상스 이전의 시대


르네상스 시대라는 문명화된 시기가 도래하기 직전, 중세 말기 피렌체의 모습부터 그려

보기로 하자. 그래야 르네상스 시대가 선명하게 보인다.

당시 지역의 종교 지도자는 주교였고, 주교는 대토지를 소유한 교회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가장 부자였다. 또한 종교 지도자의 영적 권위를 무기삼아 농촌의 영주들과

결탁하여 세속 권력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로마시대의 피렌체는 뷱유럽으로 이어지는 군사 도로를 지키기

위해 건설된 요새일 뿐이었다.(기원전 59년) 이때는 목재로 지은 집들이 대부분인

자그마한 촌락이었으나 이름만큼은 ‘번성하는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플로렌티아’로

불렸다. 11세기 초반, 군사도로 덕분에 피렌체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고 유럽에서 가장

번성한 상업 도시로 발달하게 된다. 자연스레 인구도 늘어나 무려 4만 5000여 명에 이르게

되는데, 당시 파리의 인구보다는 적지만 런던보다 많았다.


이렇게 피렌체가 갑자기 성장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둘러싸고 교회에서는 성직자들, 길거리

에서는 귀족들 사이에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주교는 십일조, 도시의 상점에서 거두어들이는

임대료, 농지 임대료, 그리고 상품 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의 수입 등을 차지했고, 피렌체

토착 귀족들은 사병을 거느리고 주교의 신변을 보호하는 중세기사의 역할을 수행하며 함께

부를 쌓았다.


★ 새로운 계층, 부자 상인의 등장


경제활동이 점차 농업에서 상업으로 이동을 하게 되자 환전업과 무역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상인계층이 부상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치정부를

세워나갔고, 이런 과정에서 대략 1300년대 초반까지 주교와 상인들은 세속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을 겪게 된다.


1304년 피렌체에 기근이 심했던 이 해의 한 여름에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상인들이 곡물을 나폴리에서 수입해 싼값에 시민들에게 판매하자, 주교의 수입이 급감했다.

주교의 봉신이었던 영주 계층은 상인들이 운영하는 곡물시장에 불을 질렀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출연금으로 곡물시장을 복원하고, 3층 건물을 세워 1층에 자신들만의 교회를

만들고, 2층과 3층은 곡물창고와 상인들의 동업자 모임인 길드의 사무실로 사용했다.

이 건물이 오늘날 오르산미켈레라는 교회이며, 이 교회의 외벽에는 당대 최고의 조각가들이

만든 길드들의 수호성인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르네상스 조각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도나텔로, 기베르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인 베로키오 등의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이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제력이 있는 상인들이 주교와의 투쟁에서 승리하자,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기 시작했다. 종교의 역할은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삶에 한정되고,

상인들이 세운 공화정부(시뇨리아)는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의 제도로 공동체를 다스리는

원리로 삼았다.


르네상스라는 시대는 이렇게 영적 권력은 주교에게 남았지만 주교가 행사하던 세속권력은

상인들이 세운 정부로 이양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다. 이들은 통치의 원리를

더 이상 기독교 교리에서 찾지 않고, 찬란했던 과거 고대 로마의 정치 제도에서 찾았다.

자연스레 인간이 세속의 중심에 서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변화가

단숨에 일어난 것은 아니고 대략 25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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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르네상스 발원의 도시, 피렌체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피렌체 하면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이 떠오르고, 이를 후원한 메디치가가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오늘 저자는 그 이전의 시대 상황과 역사적, 경제적 측면에서 피렌체의

이면을 흥미롭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기원전의 피렌체는 자그마한 교통의 요충지였고, 이후 11세기가 되면서 점차

번성하기 시작하고 런던보다 많은 인구가 모인 도시가 됩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의 최고 권력자는 주교가 됩니다.  주교는

모든 경제적 이권을 지니고 세속적 권력까지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자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의 원칙이 운용되는 곳이지요. 새로운

시대에, 무역과 환전업을 통해 부상한 상인들과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최종

승자는 상인들이 차지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자치정부를 세우게

되고, 그 중 대표적인 가문이 메디치가입니다.


물론 르네상스의 확산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기여한 바가 크고, 또 중세에

묻혀 있던 고대의 그리스로마의 학문이 아랍지역에 보존되어 있다가 다시 전승해

온 과정들이 있지만, 일단 중세의 종교가 가졌던 모든 권위와 권력을 인간중심의

문화로 바꾼 과정이 핵심이지요.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피렌체 여행때 찍은 사진 몇 장 추가해서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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