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흐르다> 최진석
--“경계의 철학자 최진석교수의 첫 산문집”
강 일 송
오늘은 제가 두 번 정도 소개한 적이 있는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1959~)
교수의 새로운 책이자, 첫 산문집의 내용 중 두 편 정도를 함께 보려고 합니다.
전에 만난 책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 “탁월한 사유의 시선” 두 권이었는데,
저자는 현 시대 인문학의 대중화와 확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저자는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건명원 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의 저서로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 “탁월한 사유의 시선”,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장자 철학” 등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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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에 선 불안을 견딜 수 있는가
스틱스(Styx)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 시절, <Boat on the River>라는
미국 노래를 듣고서일 것이다. 스틱스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 이름이다.
죽으면 이 강에 다다른다. 그러면 뱃사공이 나와 죽은 이를 배에 태워 지하의 세계로 인도해
준다. 뱃사공의 이름은 카론(Charon)이다. 명왕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강의 이쪽은 삶의 세계고, 저쪽은 죽음의 세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룬다.
스틱스 강물에 무생물이 닿으면 녹아 없어지지만, 생물은 강물에 닿은 부분이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된다. 아킬레스가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발목만이 강물에 담겨지지 않아 발목이
불사의 능력에서 제외된 것이다. 바로 아킬레스건이다.
그리스 신화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내 멋대로 해석을 해본다면, 스틱스 강이 불사의 능력을
갖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강물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흐르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 있는
자는 강한데, 경계에 서 있을 때 생기는 불안이 사람을 고도로 예민하게 유지해 주고, 그
예민성이 경계가 연속되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감지 능력을 우리는 흔히
“통찰”이라고 부른다.
경계에 서 있는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강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의 폭과 능력은 딱 거기에서 멈춘다. 한쪽을 선택한 후
그것을 세계의 전부로 착각한다. 그 프레임에 갇혀 굳어 버린다. 오직 세계를 참과 거짓,
선과 악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자신의 관점에 맞는 것만 참이고 선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고 악이다. 이 관점이 바로 이념이고 신념이고 가치관이다.
세계는 변한다. 세계는 한 순간도 멈추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변화는 흐름이다.
흐름은 사실 경계가 지속적으로 중첩되는 과정이다. 변화를 긍정하면서 경계의 중첩이
세계의 진실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흐르는 것은 부드럽다. 변하는 것은 유연하다.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다.
산 자의 부드러움을 정지시켜 딱딱하게 굳도록 하는 것이 이념이나 신념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경계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한쪽을 선택하여 남겨진 것들이다.
세계가 변화라면, 즉 경계의 중첩이라면 이제 이 흐름을 어떻게 그 흐름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흐름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승리자다. 왜냐하면 흐름을
그 흐름 그대로 마주하는 사람만이 그 변화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흐름에 반응하는 사람은 승자가 되고, 그 흐름에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패자가
된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경계에 서라! 그래야 흐를 수 있다. 그래야 산 자다. 그래야 강하다!”
★ 비틀기와 꼬임
삶의 모든 시도들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율동이다. 그러다가 궁극적으로는 완벽에
도달하고자 한다.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흠결이 없으며, 유한에
갇히지 않으며, 치우침이 없는 균질의 절대 균형 상태라고 말할 것이다.
플라톤은 이런 세계에 “이데아”라는 이름을 달아 주었다. 이런 완벽함을 표현하는 데는
기하학적 원이 적격이다.
사람들에게 우주는 완벽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지구를 오래전부터 우주의 중심으로 간주
했고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케플러는 감춰진
진실을 드러나게 해주었는데, 행성은 원운동이 아니라 타원운동을 한다.
원은 기하학적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조작된 진실일 뿐이다. 진실은 원이 아니라 타원이다.
원에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 타원에는 이미 있다. 바로 힘이다. 우주의 진실은 힘이
작동하는 타원에 더 잘 살아 있다.
자객이나 동물이 목표 대상을 기다릴 때는 정지된 상태에서 고요하고 철저히 부동의 상태에
든다. 그러나 갑자기 목표 대상이 시야에 들면 몸은 바로 비틀어진다. 힘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허리를 꼬아서 탄성을 준비한다. 그 탄성(彈性)이 적중(的中)이라는 최종적인 목적을
보장할 것이다.
인간이 지구라는 별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아무리 고차원적인 의미로 치장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종으로 끊어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 즉 생존 이상일 수 없다.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근본
동인은 생존으로 압축된다. 인간 활동의 핵심 동인은 생존이다. 문화도, 예술도, 수학도,
문학도, 철학도, 상업도, 종교도, 과학도 심지어는 지루한 방탕까지도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생존을 도모하는 최초의 활동은 ‘분류’로 시작된다. 원초적으로 피아를 구분하고,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가르며, 적대적인 것과 우호적인 것을 구별한다. 효율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다. 이 구분에 지속성을 부여하여 전승하는 것도 필요해진다. 그래야 본인도
실수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게도 도움이 된다.
경험을 통제하는 능력이 축적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우리는 ‘지적 활동’이라고 한다.
지적이라는 말은 경험을 통제하는 일관된 형식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의 성숙
이라는 것은 결국 지적인 능력의 계발과 연관된다. 지적인 사람이 더 잘 생존할 수 있다.
지적인 사람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지적인 활동 자체를
확장하여 분류의 틀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훌쩍훌쩍 건너뛰어 버린다. 서로 이질적인
것들을 연결하여 소통시켜 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은유’다.
은유는 ‘비틀기’다. 시인들은 비틀기의 명수들인데, 뒤틀린 틈새로 새로운 것들이 탄생한다.
이렇게 꼬아가면서 우리는 영토를 확장해 나간다. DNA 이중나선의 꼬임으로 인류의
유전 정보가 확산된다.
힘이 작동하는 비틀기로 꼬인 세계, 이것이 진실이다. 진실한 자는 평면적으로 풀어지지
않는다. 전혀 관계없었던 무엇과 꼬이고 또 꼬이며 영토를 넓혀 확장하고 또 확장해
나간다. 힘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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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시대의 뛰어난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자의 글을 보다 보면, 노자, 장자 사상에 해박하고, 이를 현대에 적절하게 접목
하여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먼저 첫 번째 글을 보자면, 이 책의 제목에서 나왔듯이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는 쉬우나 경계에 서기는 불안하고 어렵
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경계에 선 자만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고 오롯이 나일수
있으며 창의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흔히 흑백논리에 의하면 회색지대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법한데,
한쪽에 치우치면 신념, 이념의 늪에 빠져 진정한 진리와 우주의 원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저자는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을 관통하는 가장 큰 법칙 중 하나가 "모든 만물은 변화한다." 라고 한다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경계에 선 자는 가장 그 변화에 민감하고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삶의 원리를 "비틀기와 꼬임"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체계적
으로 분석한 글이었습니다. 저자는 꼬임과 비틀기 안에 에너지가 축적이 되고
이는 탄성에너지가 되며, 적중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간다고 합니다.
원보다는 타원이 에너지가 축적이 된 상태임을 말하고, 비틀기와 꼬임을 통해
세계는 확장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틀림과 꼬임을 DNA의 이중나선 원리까지 적용한 것은 탁월한 응용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번성의 원리는 바로 이
DNA의 이중나선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인간 활동의 핵심 동인은 생존이다. 문화도, 예술도, 수학도, 문학도, 철학도,
상업도, 종교도, 과학도 심지어는 지루한 방탕까지도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라는
말은 저자가 깊은 통찰이 깃든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게해줍니다.
과학도가 아닌 철학자지만, 생명의 원리, 과학적인 사고 인식도 심도있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하기는 어려워, 다음에 다시 한번 이 책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