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흐르다”中 2.
<사람으로 산다는 것> 최진석
--“경계에 흐르다”中 2.
강 일 송
오늘은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1959~)교수의 “경계에 흐르다”에서 두 번째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현 시대 인문학의 대중화와 확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이었고, 노장 사상을
바탕으로 현대 철학까지 연결하여 “인간 본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남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건명원 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의 저서로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 “탁월한 사유의 시선”,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장자 철학” 등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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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으로 산다는 것
성공한 사람에게 큰 적은 성공 ‘기억’이다. 여기에서 ‘사람’과 ‘기억’이라는 단어는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한다. 성공할 때는 ‘사람’으로 존재하다가, 성공한 다음에는 그 ‘기억’에
갇혀 버리기 십상이다.
‘기억’에 갇힌 그 ‘사람’은 새롭게 펼쳐지는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하여 거듭
성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억’에 주도권을 뺏긴 그 사람은 온전한 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기억에 갇혀 더 이상 창의적 돌파가 불가능해지면, 사람의 형상은 하고 있으되
진짜 ‘사람’ 혹은 참된 ‘사람’은 아니다.
중국 한나라를 개국한 유방의 이야기가 의미 있게 들린다. 유방은 유학자들이 탁상공론만
일삼는다고 생각하여 “유자(儒子)를 만나면 갓에다 오줌을 눴다”고 할 정도로 그들을
무시했는데, 육가(陸賈)라는 유학자는 계속 유방에게 시경이나 서경의 내용들을 설파하려고
애썼다. 어느 날 유방은 참지 못하고 “나는 말 잔등에 올라탄 채 천하를 얻었다. 뭐가
부족해서 내가 시경이나 서경이니 하는 따위를 들어야 하느냐?”고 육가를 힐난했다.
그러자 육가는 “폐하는 말 등에서 천하를 얻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말 등에 올라탄 채로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사마천은 유방이 육가의 이 말에
“언짢아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 전한다.
내 생각에 유방의 모든 업적은 바로 이 ‘부끄러운 기색’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육가의 말을 알아들었다. 승리의 기억에 갇히지 않고
황제라는 지위의 거만한 관념에도 갇히지 않고 오로지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기색’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유방의 가장 위대한 점이다.
배운 것도 없고 인격적 품위도 그렇게 높지 않았던 유방이 이렇게 천하를 유지하고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세워 나간 비밀은 유방이 계속 ‘사람’으로서의 내면을 잃지 않고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육가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변신하였고, 국가 경영자로
거듭난 것이었다.
‘기억’이라 함은 관념으로 지어진 틀, 넓게 말해 이념이나 신념을 말한다. 자기를 익숙함
속에 머무르게 하는 가치관이다. 정해진 마음, 즉 ‘성심,成心’이다. 인간은 누구나 성심
의 지배를 받지만, 함량이 큰 사람, 창의적인 사람, 관용적인 사람, 위대한 사람, 큰 사람,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대부분은 이 성심의 제약을 덜 받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사람’이라고 따로 표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념이나 신념 혹은 가치관으로 고정되어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굳어 버렸거나 혹은 굳어 가는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만의 고유하고 진실된 내면의 활동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는 것이다.
이 ‘참 사람’이 감화력을 발휘하고 힘을 내는 능력은 무엇인가? 바로 “덕,德”이다.
덕은 한 개인을 바로 그 사람이게 하는 유일한 터전이다. 장자가 말한대로 덕은
“천지를 관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인 것이다. 덕을 온전하게 발휘하여 기억이나 정해진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고유한 생명력을 발동시키는 바로 그 사람이 참 사람(眞人)이다.
세계는 변한다. 계속 변하기만 한다. 이 변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프레임에서 저
프레임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기존의 프레임은 나에게 익숙한 개념과 문법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밝고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는 세계는 아직 암흑이거나 오리무중이다.
그런데 참 사람은 바로 그 오리무중 속에서 ‘홀로’ 조화로운 소리를 듣는다. 홀로 서서
아직 오지 않은 빛을 본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이미 있는 ‘기억’이나 ‘이념’, ‘신념’에 의존하기보다는
자기에게만 있는 고유한 ‘덕’에 의존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사람은 불안하고 어색하고,
생경하더라도 창의적 기풍 속으로 스스로 진입한다. 기준을 수용하여 지키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기준을 생산한다. ‘우리’가 구사하는 논리에 빠지지 않고 ‘나’만의 이야기를
꿈꾼다. 분석이나 비판에 빠져들지 않고 스스로 직접 행위자로 나선다.
이것이 사람으로 사는 길이다. 창조자고, 지배자고, 지도자며, 영웅이고 희망이다.
이리하여 결국 ‘사람’이 희망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만 사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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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시대의 철학자 최진석교수의 “경계에 흐르다”중 두 번째 내용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저자는 진정 사람이란 어떤 존재이고 어떠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적 담론을
우리에게 확실히 전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점차 인간의 역할이 줄어들고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 생길 일자리보다
사라질 일자리가 몇 배가 됩니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이미 확인이 된 바 있지요. 그런데 새로 나온 인공지능은 알파고를 형편없이
눌러 이겼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엄청난 변화의 시대입니다. 이 세상은 본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가 통하는 장
이지만, 이제는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갈수록 더 가속도가 붙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대
를 최교수는 “암흑”, “오리무중”의 시대라고 말하고, 이를 넘어서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이는
진정 “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 과거의 신념,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는 “덕”의 인간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덕이라 하면 유방의 예에서 보았듯이 2200년 전의 중국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도 똑같이 덕의 정치, 덕의 관계성이 통하는 사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 관용이 있는 사람, 남의 처지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사람을 귀하게 여기되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등이 저자가 말하는
참 사람, 그리고 인공지능의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평온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