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를 읽다>

양자오

by 해헌 서재

<장자(莊子)를 읽다> 양자오

강 일 송

오늘은 지난번에도 한번 말씀드린 적 있는 장자(莊子)에 대한 책 한 권을 보려고
합니다.
흔히 도가(道家)로 알려진 노장사상의 중심 인물인데요, 저자인 양자오(楊照)선생은
인간 중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주나라의 주류 문화와 달리, 인간과 자연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관점에서 장자의 사상을 풀어냅니다.

저자인 양자오는 중화권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이고 대만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습니다. 타이베이 예술대학 주임교수를 역임하고
언론, 출판, 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인문학자입니다.

한 번 내용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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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상 언어로 수천 년 전 고전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행운
입니다. 현재 중국인들은 2천여 년전의 중국 문자를 번역 없이 읽을 수 있고, 정보의
대부분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중국 문자와 오늘날 중국인이 일상에서 쓰는 문자 사이에는 분명하고도 강력한
연속성이 존재하지요.
이는 인류 문명에서 아주 특이한 현상으로 또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나의 문자 체계가 5천년 동안이나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늘날 문자의 사용 규칙대로
몇천 년 전의 문헌을 직접 읽을 수 있다니 대단하지요.

중국사회는 이러한 문자 전통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중국의 전통 관점에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인은 조상이나 옛사람을 지극히 가깝게 여기고 친밀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역사학이 한 학문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역사와 현실 사이의 명확한 경계가 인식되지 않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속체처럼
여겨지는 것이지요.

중국 전통에서 엄격한 의미의 ‘저자’는 상대적으로 늦게 출현했습니다.
아주 일찍부터 책이 있었고, 분명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도대체 누가 이 책을 썼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
<상서>, <사경>, <좌전> 은 모두 오랫동안 전해지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쓰인
책입니다.

<논어>는 공자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이지만, 이 내용을 기록한 사람에 대해 아직도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장자>의 저자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그는 송(宋)나라 몽현사람이라고 알려져 있고, 송나라는 오늘날의
허난성 상추지역에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 이미 알려진 인류의 오래된 문화들을 살펴보면 “연속된 세계관”이 다수로
강력한 주류를 이룹니다. 고고학자 장광즈 선생이 주창한 이론인데, 이는 사람과
외부 환경의 사이에 명확한 구분과 단절이 없다는 의미지요. 세상만물은 나와 절대적
으로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을 저것으로 변화할 수 있고, 저것 또한 이것으로
변화할 수 있지요. 죽음이란 연속적인 현상 중의 한 가지 변화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연속된 세계관”은 중국에서는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은 주나라시절부터 “불연속 세계관”이 주류였는데,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두 범주를 나눕니다.
사람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이 아닌 것의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한다고 단정하지요.
사람은 오직 사람의 영역만 파악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일에만 관여해야 합니다.

주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세웠을 때부터 “불연속 세계관”이 “연속된 세계관”을 배척
하고 억압해 왔습니다. 인간세상의 환경에 모든 주의력을 집중해, 인간관계를 안정
시키고 균형있게 배치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공자의 <논어>가 이러한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장자는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주나라와 달리 “연속된 세계관”이 존재
하였던 상나라의 문화가 이어진 송나라에서 장자가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장자>에서는 여러 차례 공자나 유가를 언급합니다.
주나라의 주류 문화를 비판하고 반격하는 것이지요.

공자나 유가가 친족을 돌보고 인간관계와 예의범절을 지키려고 동분서주 노력하는
반면, 장자는 이를 비판합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의 영역은 이토록 보잘 것 없이 작은데, 모든 정력과 시간을 그처럼
작은 것에 쏟아붓고, 비교하면 수백 배, 수천 배나 큰 나머지 세계는 무시하고 잊어
버리다니, 이 어찌 어리석고 황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도가에서 흔히 노장이라고 붙여 이야기하지만 둘 사이에는 근본 바탕에서 차이
가 큽니다. 장자는 완벽하게 “연속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자는 여전히
주나라문화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처리할지 고심합니다.

양자 모두 도를 이야기하고 자연을 강조하면서 자연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장자는 사람이 광활한 자연을 공간으로 삼아 인간 세계라는 비좁은 범주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연을 유유히 누비며 도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데, 중점을
둔 반면, 노자는 자연의 도리를 인간 세상에 적용해 인간관계를 처리하고 이를 통해
더 안정적이고 강력하게 인간의 삶을 장악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장자는 주나라 문화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들은 이 인간 세계의 문제를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기고 그토록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내가 보는 세계는 당신들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며 풍부하다. 내가 어떻게 당신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그 좁아터진 감옥
으로 들어가 느끼며 사고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의 핵심은 사람들이 “불연속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 세상 밖의
더욱 넓은 우주를 바라보도록 하는 데 있지요.
장자는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광대한 자연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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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장자에 대한 글을 한 번 보았습니다.

처음 내용은 한자가 수천 년동안 그 체계가 이어져서 현대 중국인들도 친숙하게
과거의 문헌을 읽기도 하고 과거의 인물들을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서
소통하듯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비슷한 사례가 없다는 말이었는데, 이것은 한자가 표음문자가 아니라 표의문자
이기에 과연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속적 세계관”, “불연속적 세계관”이라는 개념은 생소하긴 하지만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인데, 인간관계와 인간세상을 중시한 공자를 위시한 유가와 자연의 광대
함과 무위를 중시하는 도가는 서로의 사고의 축이 다를 뿐이지 그래도 저자의 말처럼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무용의 쓸모를 이야기하고, 상대성을 이야기하는 장자는 그 스케일이 유가에 비해
탁월하게 크고 광범위하며 개성이 강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장자는 누구보다 “상대성”을 잘 이해한 철학자라 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커도 당신보다
더 큰 존재가 있으며, 당신이 아무리 작아도 당신보다 더 작은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
라는 것이지요.

또한 장자는 좁은 편견과 선입관을 던져버리고 넓은 시야와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새롭게 보고 경험하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바삐 한치 앞도 잘 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
는 지혜를 주는 장자의 말들을 떠올려보고, 살면서 마주하는 어려운 일, 힘든 일들을

장자의 그 큰 스케일의 생각처럼 한낱 보잘것 없다는 듯이 흘려 보낼 수 있는 여유를

호기롭게 한번 부려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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