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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an 04. 2018

<선배 수업>

<선배 수업>

“희망의 나이듦의 인문학”


                                   강 일 송


오늘은 점차 수명이 길어져 백세 시대, 고령화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성숙하게 나이가 들고, 나이 든 삶을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이 책에서 6명의 저자가 쓴 글이 있는데 오늘 그중 한 글을 보겠습니다.


저자는 김찬호(1962~) 문화인류학자로,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학교 밖에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지배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모멸감”, “돈의 인문학”, “눌변”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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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자로서의 노년, 공공성에 기여하기 >


★ 시간(Time)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을 만드는 팀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인터넷 상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뭘까 하고요.

그런데 명사의 경우 가장 많이 쓰인 단어, 가장 빈도가 높은 단어는 바로 “Time",

즉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꼭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해도 크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시간만큼 절대적인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더 빨리 가게 하거나

오늘과 내일을 바꾼다거나 생년월일을 조정한다든다 할 수는 없지요.

결국, ‘시간’만큼은 여전히 불가항력적인 것 아닐까요? 그런데 예전에 비해서

세상의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지 않습니까? 요즘은 변화가 너무 빠릅니다.

이 변화를 놓고서도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대응 방식이 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변화에 끌려가는 사람도 있지요. 또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 있고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헬조선‘과 세대 갈등


한국은 나이에 따른 위계서열이 굉장히 엄격한 나라입니다. 세계에서도 한국 같은 나라가

잘 없죠. 나이 한 살을 놓고 이렇게 위아래 따지는 나라가 없습니다. 일본도 엄격한

존댓말을 씀에도 불구하고 나이 차이가 좀 나도 다 친구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친구는

동갑만 가리키지요.

이렇게 위계서열이 엄격해서 그런지 나이에 따른 긴장이나 갈등이 흔히 일어납니다.


기성세대 특히 남성들은 많은 경우 사회적 지위, 거기서 맺어진 관계나 성취(이게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죠)가 어느 날 갑자기 싹 없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명함이 인격을 대신

했던 삶이 끝나면서 허탈해지는 남성들이 이제는 명함을 주고받지 않는 관계나 공간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시골마을의 할아버지들이 무슨 배지를 크게 달고

다니시는데, 그런게 있어야 자기가 존재감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고, 정체성에 대한

갈구를 표현하는 겁니다.


꼰대의 육하원칙이 있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어딜 감히’, ‘왕년에 말이야’, ‘어떻게

가 나한테’, ‘그걸 내가 왜 해?’,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런 말을 자주하면 꼰대

라고 합니다.


★ 생산자로서의 노년


1950년대 아동심리학자인 에릭슨의 사회심리 발달 단계가 있는데, 중년기는 생산성

(generativity) vs 침체(stagnation) 이라고 나옵니다.

Stagnation이 정체라고 했는데, 이는 체념과 냉소 초조, 불안감 등이 이면에 깔려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기가 갖고 있는 나이, 권위, 돈 등등을 내세워 군림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아래 세대와는 점점 더 격리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됩니다.


반면, Generativity는 ‘창조성’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육체는 쇠약해도 내면에서 계속

용솟음치는 샘물 같은 무엇인데, 기운, 에너지, 발산, 감정 이런 것들이죠.

역사를 보더라도 나이 들어서 세상에 큰 선물을 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창조성은

자기 혼자서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 세대를 향해 뻗어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우리의 관심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인데, 아래 세대가 인생

항로를 헤쳐가는 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선배’의

자리가 있습니다.


즉, ‘아래 세대를 위한 창조성’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래 세대를 보살핌으로

써 나를 돌보는 것, 후대에 봉사하는 동시에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이 되어

곧, 상생이 됩니다.


잘 사는 분들은 카톡이나 전화번호 저장된 곳의 나이 대가 폭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폭넓어야 해요. 위아래로 충분히 횡적으로, 종적으로 잘

짜여 있으면 건강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이외의 누군가에게 열망과 열의를 기울이고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데서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성장을 돕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겁니다. 보람도 남고요.

자기 것만 챙기면 많은 걸 성취해도 오히려 그럴수록 더 허망해집니다.


★ 공공 영역의 창조


요즘은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합니다. 영국의 브렉시트도 그런

거죠. 왜 얼마 살지도 않을 노인들이 우리 미래를 다 결정해버리느냐고, 독일은 그나마

경제가 좋다고 하는데도,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당신들 다

누렸잖아. 이미 다 챙겼잖아, 우리 건 남은 게 없거든.


그래서 공적 영역이 다음 세대를 기꺼이 성장시키고 환대하는,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안 나오고 정말 이 사회가 나를 품어 안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아래 세대와 만나야 합니다. 그 접점이 다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만나는 곳이 가정, 일터, 전철 정도에요. 다른 데서는

별로 만날 일이 없어요.

그나마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좀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배움의 공간입니다.

도서관 가보세요, 초등학생 꼬마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이 있어요. 그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배움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다 겸허해집니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더 내세울 것도 없어요. 그래서 더 빛이 날 수 있지요. 함께 배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예술, 예술은 사람은 약간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잖아요. 연극하고 노래부르고...

동회회도 좋고요, 그런 걸 통해서 좀 어린 아이도 돼보고, 다른 얼굴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허용됩니다.


또 하나는 자원봉사입니다. 자원봉사를 통해서 세대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갈등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목적 자체가 자아(에고)를 넘어서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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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점차 고령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예전에 드물던 세대간의 갈등과 오래

연장된 삶에서의 의미찾기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수명이 긴 시기가 없었고, 또한 여전히 건강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남은 노인 세대와 일자리가 부족한 젊은 세대가 상존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부딪치게 되는 상황인지라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새로운 상황에 당황하고 갈등을 겪게 됩니다.


오늘 저자는 과거 명함이 곧 자기의 정체성이었던 기성세대가 어떻게 백세 시대에

젊은 세대와 함께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성 세대는 과거에 가졌던 의식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꼰대의 육하원칙이 예리하게 이 상황을 말하는데요, 이런 말들을 하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점점 젊은 세대와의 열린 만남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하려고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지금 현재를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지갑을 열어라 라는 말은 열린 마음으로 베푸는 마음을 가져라는 말이

겠지요.


'헬조선'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잃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

하는 이 시대 상황은 분명히 큰 문제가 있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다양한 대책

이 있겠지만, 결국은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

주는 마음 바탕이 중요하고,  사회적으로도 공적 영역에서 젊은 세대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행정적인 대책 뿐아니라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이 베풀고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와 접점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배우는 공간", "예술",

"자원봉사"라는 저자의 분석은 아주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젊은 이가 줄어들어 생산 인구보다 부양인구가 늘어나는

초유의 사태를 우리 한국 사회가 슬기롭게 잘 극복하여야 다음 시대의 희망이

존재하리라 생각합니다.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사회 전반에 배어들기를

희망하는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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