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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洞察)>

by 해헌 서재

<통찰(洞察)> EBS 특별기획

--“예리한 관찰력으로 동서고금을 관통하다”


강 일 송


오늘은 EBS가 특별기획으로 제작하였고 뜨거운 반응이 있었던 인문 프로그램인

“통찰”을 정리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세대 간 갈등, 빈부격차, 남북간 문제, 한중미일 간의

국가간 문제, 저출산 고령화 문제, 심각한 경제문제 등에 대한 인문학적인 길안내를

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뛰어난 인문학자들의 강연이 방송으로 진행되었고, 오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의 장을 지닌 그 내용들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오늘은 그중 첫 번째 시간으로 통찰의 시작, “인간” 편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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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동굴, 통찰의 시작


어두컴컴한 동굴 속, 인간은 동굴 벽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린다. 초원을 달리는 말과

황소, 사슴과 사자, 그 안에 자신의 손바닥을 새긴다.

동굴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삶을 시작했던 장소다. 자궁에 탯줄로 이어진 태아처럼 어두운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숨어든 인류의 조상들은 거기서 인류 최초의 사유를 시작했다.

바로 그곳에서 무수한 존재의 질문들을 쏟아냈고, 그 해답을 찾으려 스스로를 성찰했다.


동굴에서 통찰이 시작된 것! 동굴(洞窟)이라는 한자가 바로 통찰(洞察)과 맞닿아 있는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다.

동굴의 ‘동洞’과 통찰의 ‘통洞’은 같은 한자다.


통찰의 ‘통’자가 통할 통(通)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통찰의 통자과 동굴 동자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들 깜짝 놀란다. 이 동굴 동자는 우리가 흔히 ‘동네’라고 말할

때도 쓰는 글자다. 예전에는 우물을 공유한 공동체가 바로 동네였고 그 원초적 동네는

바로 “동굴”이었다. 그래서 동굴 속에서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을 “통찰”이라고 부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에 관한 깊은 성찰은 사실 스스로 쓸쓸하고 모호하고 고독한

상태에 진입해야지만 가능하다. 그 때 바로 통찰이 생기는 것이다. 이 어두운 공간에

쑥 들어가서 생경한 자아를 발견하고 그 모습으로 새로운 삶의 여정을 떠날 때, 내 안에

스멀스멀 생기는 그것, 바로 그것을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상징하는 아주 구체

적인 장소가 바로 동굴이다.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도 동굴에서 시작했고, 신라의 승려 원효도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깨달음을 얻었지 않는가.


★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오는 게 깨달음의 시작이다.


배움이란 어쩌면 지식을 쌓아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았던 세계를 허물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배움의 범위를 확장해서 이

피비린내 나는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무기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지극히 좁은 시공간의 세계에서 형성된 편견을 깨부수는 작업이다. 그 편견으로부터

나와야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는데, 이를 그리스인들은 엑스타시스,ecstasis 라고 했다.


‘내가 서 있는 곳,state 에서부터 나오는 ex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시작이다.


★ 통찰에 이르게 하는 고통


동굴에 들어가면 고통을 얻게 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그걸 영어로 패션,passion 이라고 한다. 흔히

‘열정’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이 단어의 본래 뜻은 사실 우리가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파세인,pathein'에서 나왔는데, 원래 ’고통스럽다.‘, ’괴롭다.‘

는 뜻이다.


그런데 왜 ‘고통’인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패션은 어렵고 익숙하지 않고

괴로운 것을 자신의 본질로 수용하려는 마음”으로 정의했다. 정확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있는 상태, 일상적인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생경한 장소로 들어가 내 안에 숨겨진

위대한 사명을 발견하려는 여정이 바로 패션이다.


★ 그대만의 골방이 있는가?


“월든”의 헨리 데이빗 소로 같은 경우도 특이한 체험을 따라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 1845년부터 1847년까지 사회와 인연을 완전히 끊고 월든이라는 호숫가에 2년 정도

살면서 인생을 정교하게 살고 삶의 본질을 스스로 깨닫기 원했다. 그는 이렇게 숲 속에서

홀로 청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영위하며 자연과 인생을 직시했다.

소로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장소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그것을 ‘고독,solitude'라고 불렀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계기로 이해했다. 그렇게 해서 엮인 책이 바로 시대의 명작, “월든”이다.


씨알 함석헌 선생이 쓴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다. 동굴의 통찰, 골방의

성찰에 대해 이보다 더 근사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오직 그대의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의 맘의 네 문 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으면

극진하신 님의 꿈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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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내의 최고 석학들이 EBS에서 "통찰"이라는 주제를 놓고 방송을 했던

내용을 책으로 낸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중 오늘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루어 보았는데, 뛰어난 인문학자인 서울대

종교학과의 배철현 교수님의 강의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예전에 배교수님의

"심연"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초기 인류의 문명의 시작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통찰의 '통'자와 동굴, 동네의 '동'자의 한자가 같은 줄은 저도 이 책을 보고 알았

네요. 보통은 통찰의 '통'자가 통할 통자로 여기게 마련일텐데 말이지요.

저자의 말처럼, 인류의 초기 조상들은 추위와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 찾은 가장

안전한 장소를 동굴로 삼았습니다. 이곳은 어둡고 습기차고 박쥐와 거미가 있는

곳이지만, 반면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자궁같은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2-3만년 전의 동굴벽화가 그려졌고,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행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단군신화의 곰이 사람이 된 곳이 동굴인 것도 단순한 장소의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입니다. 원효의 깨달음도 동굴에서 왔고, 플라톤도 동굴의

비유를 들었지요.


저자는 씨알 함석헌 선생의 시를 인용하면서, 현대인들도 자기만의 동굴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요즘은 아지트라고 표현해도 되겠지요.

데이빗 소로의 월든호숫가의 통나무집이 그에게는 동굴이었고, 함석헌 선생은

골방이 동굴이었습니다.


세상의 바쁨에서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에 대한 사유를 하고 삶에 대한 여유를

가질수 있는 장소라면 사실 어디든지 동굴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공간을 꼭 하나 가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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