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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by 해헌 서재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장석주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


강 일 송


오늘은 "책읽기“의 의미에 대한 개인적 고백을 우리 시대의 지식인, 시인, 인문학 저술가,

탐서가, 작가인 장석주(1955~)저자의 말을 통해 보고자 합니다.


저자는 스무 살 때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하며 평론을 겸합니다.

이후 작가의 삶과 대학에서 강의, 방송진행자도 한 뒤

현재는 안성의 ‘수졸제’와 서울의 작업실을 오가며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합니다.


저서로는 시집 “몽해항로”, “오랫동안”, “일요일과 나쁜 날씨”등을 포함해서 “풍경의 탄생”,

“나는 문학이다”, “마흔의 서재”, “새벽예찬”, “일상의 인문학” 등등 90여 권의 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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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밥이다.


다독가로 알려지다 보니 내게 책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은 밥이다.”라고 말합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대개 산책하거나 책을 읽으니까요.

그렇게 날마다 밥 먹듯이 책을 읽습니다.


책 읽기에는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기분 전환, 정신적 고양, 열락 같은 게 따릅니다.

내면이 고요해지면서 내 안에 잠재된 막연한 실존의 불안이 가라앉는 걸 느끼기도 하고요.

책을 읽다 보면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가는 데 수반되는 짜릿한 흥분 같은 걸 느끼게 되지요.

그 훙분이란 나보다 높은 존재가 쿵, 하고 부딪치면서 생겨나는 기쁨과 지적인 즐거움

같은 것입니다.


또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에 담긴 지식이나 사상이 자신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와 생각이

확장되고, 자아가 확장되는 과정입니다. 메이지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는 <독서력>에서

“자신의 경험과 저자의 경험, 자신의 뇌와 저자의 뇌가 혼재해 있는 듯한 느낌이 바로

독서의 참맛이다.” 라고 했습니다.


★ 책 읽기는 자신의 우주를 확장해 나가는 행위


나는 책 읽기가 ‘지적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읽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노동에는 인내와 수고가 따릅니다. 더 나아가 숙련된 책 읽기에는 학습과 훈련이 필요

합니다. 책은 우리의 잃어버린 본성을 일깨우고, 어둠 속에 묻힌 것들에 인지의 빛을

비춥니다. 또한 내안을 돌아보게도 하지요.


무엇보다 책 읽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읽은 것들이 나의 우주를 만든다는 사실 때문

입니다. 누구도 자기의 우주 바깥으로 나가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자기가

만든 우주 안에서만 숨 쉬고 생각하며 살 수 있어요.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우주의

경계를 더 넓게 밀어 가며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넓어지면 운신의 폭이 넓어지니

자유로워지는 것이고요.


★ 인간이 위대한 이유


인간이 위대해진 이유는, 인간이 쓸모없는 일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시, 그림, 음악, 춤, 인문학 따위가 그렇습니다. 동물들은 철저하게 타고난 본성

에 충실하고 목전의 필요에만 반응하지요.


하지만 인간은 상상과 놀이에 빠지고, 재미를 찾아갑니다. 바로 이 점이 동물과 차이를

가르는데, 이런 특징 때문에 인간은 문명의 창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나만의 서재를 가져라


나는 사람들에게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고 말합니다. 책을 사들이는 자세가 이미

지적 생활을 영위하는 처음 단계지요. 책으로 가득 찬 서재는 창조의 산실이고, 지적

역량을 키우는 도량이에요. 서재란 그 사람만의 도서관이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고 고요함에 머물며 사색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 단순하고 느리게 사는 것의 기쁨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바쁜 것이야말로 진짜 게으른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반대로 말하면 한가로운 사람이야말로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쁜 사람은 자신을 돌보지 않으니 게으른 사람이고, 한가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많으니 부지런하다는 뜻입니다.


나는 오랜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안성에 내려가서 ‘수졸재’라는 집을 짓고 15년째 살고

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자연과 벗하고 단순하게 사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몸과 마음의 균형을 가지게 되었는데, 오전에 글쓰고 책읽고, 오후에는 만사 제쳐 놓고

반드시 산책하러 나갑니다. 봄이면 모란과 작약을 보는 즐거움이 있고, 가을에는 낙엽이

지는 걸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기쁨이 있어요.


마음이 고요해지니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자연이 다 내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에요. 이곳에서 주로 노자와 장자를 많이 읽었는데, 이 두 현자로

인해 인생에 대한 긍정과 여유, 넉넉한 관조의 시선,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게 되었

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덜어내니, 인생이 훨씬 더 살 만한 것으로 다가오더군요.

특히 노자의 <도덕경>의 지혜의 수혈로 옹졸한 인격은 다소 너그러워졌고, 삶을 혼란

으로 밀어 넣고 뒤흔들던 내 욕망의 부피도 줄었습니다.


★ 생명의 근원적 형질로서의 ‘비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어느 정도 슬픔을 안고 있는데, 나는 이 ‘비애’를 생명의 근원적

형질의 하나로 봅니다.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해 자기보다 힘이 약한 생명을 취해야 하는데,

그 불가피성에서 비애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에서 보는 생명은

그저 생명으로서 동등한데, 죽임-죽음의 고리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잖아요.

거기서 느껴지는 비애는 단순한 감상주의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 잘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잘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소통하고, 아이들과 소통하고, 동료들과 소통하고, 일과 소통하고..... 우리는 잘 소통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의 공감대를 찾고 내 안의 감성을 열어젖혀야 해요.


행복이라는 것도 세상의 물질적 조건이나 사회적 조건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관계와

소통의 즐거움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린 감성으로 사람과 자연을 대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측은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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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진정한 지식인이자 시인, 독서가인 장석주(1955~) 작가의 다양한 그만의 생각을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10대에 이미 시인으로 고은 시인에게 발탁이 되었고, 20대 초반의 4-5년을 시립도서관에서

마치 붙박이 가구처럼 치열하게 책을 읽었다고 하는 그는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지식인

이었습니다.


독서에 관해서는 다른 책이나 작가에게서도 익히 많이 들은 내용이지만, 독서는 진정 자신의

세계, 자신의 우주를 넓히고 확장하는 가장 훌륭한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적 생활의 시작은 일단 책을 사는 것이라고 하고, 그 책을 소장할 개인 서재를 하나

가지는 것을 저자는 권합니다. 꼭 큰 방이 아니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하나 가지면

그곳이 자신이 쉴 공간, 삶의 여유를 가질 공간, 창조의 공간이 된다고 합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계의 원리는 인간을 근원적인

‘비애’에 빠지게 한다고 하는 고백은 저자가 많은 독서와 깊은 사색에 이른 사람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잘 사는 것은, 잘 소통한다는 것이라는 그만의 정의는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행복도 관계와 소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도 지극히 옳습니다.

다른 생명의 존재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강조하는데, 이 측은지심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어주는 조건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행복한 한 주의 시작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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