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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1)

“생각의 탄생”

by 해헌 서재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1) -- “생각의 탄생”

-- EBS “인문학 특강” 中


강 일 송


오늘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에 대한 통찰을 준 서강대 철학과의

최진석(1959~) 교수의 “노자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건명원 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의 저서로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 “탁월한 사유의 시선”,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장자 철학” 등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인간이 원시 시대 이후 어떻게 생각을 하게 되고,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왔는지 중국의 역사를 거슬러 가면서 한번 이야기를 펼쳐보고, 노자의 철학까지 자연

스럽게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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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생각의 터전’을 마련하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점에서 삶의 방향은

바로 생각의 방향이고, 가치의 충돌은 생각의 충돌이며, 제도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와 직결

됩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을 추적하는 일이 삶을 추적하는 일이고,

결국 인간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생각이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생각은 인간이 합니다. 인간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작동해 인간의 방식으로 자연에 변화를 가하는 것,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결과를 ‘문화,文化’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세계의 형태가

바로 ‘문명,文明’이지요.


중국에서 문명을 이뤄 나간 주체로서의 인간이 구체적인 유물로 증명된 최초의 사건은

베이징시에서 발견된 화석인류, 베이징원인(北京原人)의 발견입니다. 이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을 사용했던 흔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불을 사용하기 전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불을 사용

하게 됐다는 사실은 인간이 동물을 압도할 위대한 무기 혹은 도구를 갖게 됐다는

점보다 ‘생각’의 물질적 터전을 확보해 나갈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생각의 터전이란 바로 ‘뇌’입니다. 생고기는 소화가 잘 안 됩니다. 반면 익힌 고기는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비축한 에너지가 소화

이외의 곳에 쓰일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뇌 발달의 한 요인이 됩니다.

또한 익힌 고기는 연하기 때문에 질긴 고기를 먹을 때 쓰던 두껍고 강한 턱뼈와 근육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두개골과 근육이 훨씬 얇아지면서 내부에서 뇌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고, 뇌는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넓어진 공간에서 혀는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고 이것이 언어의

사용을 가속시켰습니다. 여기서부터 ‘언어’와 ‘생각’이 함께 연동돼 발전하는 겁니다.

그 매개가 바로 ‘불’이었습니다.


★ 신석기 후반의 종법제도(宗法制度)


신석기 시대 전기는 대체로 모계사회에다가 평등한 사회였습니다.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

으로 분배하였으며 공동으로 의사를 결정하였지요. 하지만 신석기 후반으로 오면서 중국

에서는 종법제도(宗法制度)가 싹트기 시작했는데, 이는 권위와 재산이 혈육을 매개로 전승

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제도는 물론 일부일처제의 형성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종법제도는 적자(嫡子) 가운데 첫째 아들, 즉 적장자(嫡長子)가 아버지의 지위를 계승해

대종(大宗)이 되고 둘째 아들 이하는 소종(小宗)이 되는 친족제도의 형태입니다.

이런 형식은 주(周)나라(BC1046-256)에서 봉건제도로 확장돼 정치적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

게 됩니다. 이런 종법제도를 근거로 주나라에서는 혈연 공동체 의식과 공동 운명체 의식

이 강화되고 순조로운 통치가 가능해졌어요.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사이에 일어난 룽산문화는 신석기 농업혁명이 진행

되어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상승한 시기에 건설된 문화입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잉여 생산물이 나왔고 이는 결국 사유재산이라는 관념의 형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농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남성의 근력이 더 필요하게 되었으며, 남성 주도 관념이 등장

합니다. 남성이 자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확신하는 자식에게 재산을 모두 주려는 욕구는

오직 한 여성을 독점해야만 실현됩니다. 일부일처제가 성립되는 것이지요.

또한 계습이 출현하고, 세습적인 지배자가 출현합니다.


★ 천명(天命)의 등장


이 시기가 되면 인간은 혈연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인간의 위치가 좀 더

상승하면서 그 혈연을 정당해주는 더 상위의 근거를 찾게 됩니다.

이런 경향은 조상신(祖上神)이나 천명(天命)의 등장을 촉진시킵니다.


중국 상고시대를 논할 때 주로 하, 은, 주 삼대를 이야기하지요. 은나라 시대부터 갑골문

이 등장하고 그들은 신의 뜻을 찾아 항상 점을 쳤습니다. 갑골은 바로 이 점복에 사용됐고

제사나 사냥, 전쟁 등의 큰일을 조상신이나 하느님인 상제(上帝)의 명을 찾았습니다.

이제 혈연을 매개로 자신을 이해하던 인간이 이제는 상제라고 하는 신을 매개로 자신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로써 은나라 사람들은 상제라고 하는 최고신이 내린 천명에 의해서 은나라가 건립됐기

때문에 은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하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아직 천명을 받지 않은 주나라 입장에서 정당성

문제에 마주하게 됩니다.


★ 정당성의 해결책 덕(德)의 등장과 예(禮)의 출현


이 때 우리에게 현재까지도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덕(德)’이라는 개념이 출현합니다.

즉 덕이 있으면 천명이 오고, 덕을 잃으면 천명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천명이 주나라로 옮겨가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정당성을 확보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당시에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아주 잘 정화된 마음의 상태가 준비돼야 합니다.

그 정제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고안된 절차가 따로 있었는데, 절차만 지키면 신을

만족시킬 수준으로 제사를 잘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절차를 ‘예(禮)’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이것이 예의 가장 원시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 천명보다 인간의 힘을 믿다.


베이징 원인에서 출발해 ‘덕’의 담지자로서 진화한 인간은 이제 ‘천명’과의 교류가 가능

해질 정도로 상승된 위치와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덕은 이제 권력의 정당성과 통치의 핵심 근거가 되었습니다. “왕권신수설”은 인간에 있는

덕에 의해서 신권 자체가 동선을 달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천의 뜻보다 인간의 힘과 인간의 일로 활동의 중심축이 이동하는데, 말하자면

‘진인사대천명’이라는 생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에 등장한 ‘덕’이라는 개념은, 당시의 인간이 얼마나 강한 의지로

신으로부터 독립해 ‘인간의 길’을 가려고 노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신과 책임을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인간은 스스로 존엄성을 키우면서 자존심 강한

존재로 성장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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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시대 뛰어난 철학자인 최진석교수의 명강의를 함께 보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석기시대부터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중국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고 설명해주고 있는데 어디에서도 잘 듣기 힘든 흥미로운 이야기였습

니다.


베이징 원인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어, 불의 사용 흔적으로 불을 사용

한것으로 추측되는 베이징 원인은 이후 맹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질긴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 뇌의 용적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 생각(사고)의 터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신석기 농업혁명으로 잉여 생산물이 생겨나게 되고, 이를 통해 계급이 발생

하고 축적된 잉여생산물(재산)을 적장자에게 물려주는 종법제도가 나타납니다.

이는 확실히 자기 혈육임이 인정되어야 함으로 일부일처제가 연동으로 사회에

나타나게 되지요.


그리고 이러한 혈연간의 상속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천명", 즉 신의

뜻을 담보해야 했고, 상제라고 하는 최고신의 의중을 얻기 위해 점을 치는 행위가

발달합니다.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정제된 제사 행위에서 '예'가 등장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명을 받았다는 은나라가 새로운 주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새로운 정권인

주나라는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할 이데올로기가 필요하였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덕'의 개념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덕이 없으면 천명도 없어져

덕을 가진 새로운 세력이 천명을 물려 받는 것이지요.


이는 단순히 정권의 교체 문제가 아니라 '신의 영역'이 축소하고 '인간의 영역'이

점차 늘어나는 현상을 보여주었고, 유럽에서 중세이후 르네상스로 인해 인간중심

의 문화가 확산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여집니다.


다음에 2편에서 연이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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