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간다라, 인도, 중국 불상과 한반도에의 영향”
강 일 송
오늘은 우리나라의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교수가 편찬한 책으로 교양과 상식을 위한 일반인과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저자인 유홍준(1949-)교수는 서울대 미학과에서 학사,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를 합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했으며, 영남대 교수, 명지대 대학원장, 문화재청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간다라, 인도, 중국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불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문화의 전래가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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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불교와 간다라 미술
불상(佛像)은 오늘날 사찰에서 예배의 중심이다. 그러나 석가모니 사후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이 제작되지 않았다. 인도의 원시소승불교(기원전 6세기~기원후 1세기)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스투파가 예배의 대상이었던 무불상(無佛像) 시대였다.
그러나 알렉산더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간다라(Gandhara)지방에서는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모습을 빌려 신을 조각하는 모습을 보고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 이 시기는
대승불교가 일어나는 시점이어서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는 인식이 생겨
교리 상으로도 불상의 조성이 어긋나지 않았다. 이후 불상은 탑과 함께 사찰의 상징으로
되었다.
간다라 불상(1~3세기)은 그리스 신상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리스 신상의
모습이 많이 반영되었다. 얼굴과 복식이 그리스 풍이어서 곱슬머리와 콧수염에 샌들을
신었고 옷은 두툼하고 양어깨에 걸치는 통견이었다.
간다라와 비슷한 시기에 인도 내륙의 마투라(Mathura)지역에 나타난 불상(1-3세기)은
사정이 달랐다. 여기서는 활짝 뜬 큰 눈에 얇은 옷을 밀착시키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낸
채 왼쪽에 걸치는 편단우견을 하였다. 인도 불교의 전성기인 굽타(Gupta)시기(320-647)로
들어서면 불상의 상징인 육계, 나발, 광배 등 32가지 특징이 나타나며 얼굴은 인도의
미인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불상이란 신적인 존재인 동시에 이상적인 인간상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 중국 전래 불상과 한반도 삼국에의 영향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때는 1세기 후한(後漢)
초지만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때는 후한이 망하고 북방의 호족들이 일어나는 오호십육국
시대(316-389)였다. 북방의 호족들은 문화적으로 뛰어난 한족의 유교에 대응하는 사상으로
불교를 적극 받아들였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해한 전진도 오호십육국 중 한 나라였다.
북방을 통일한 북위(386-535)는 불교를 크게 일으켜 5세기 후반에는 거대한 운강석굴을 경영
하고 5세기 말에 낙양으로 천도하면서 용문석굴 같은 거대한 사원을 세웠다. 이때부터 불상의
모습은 중국화되어 얼굴은 갸름하면서 복스럽게 오르고, 옷은 북방의 날씨를 반영하여 두툼
해지면서 옷주름이 굵어진다. 북위 불상의 특징은 고구려 불상에도 나타난다.
한편 남쪽으로 피난 간 한족들도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은 남북조 공히 불교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남조의 양나라(502-557) 불상은 기본적으로 북위 불상과 다르지 않지만
얼굴과 옷주름이 아주 부드럽다. 이는 불상뿐만이 아니라 산수화에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남조와 북조의 문화적, 정서적 차이다. 마치 고구려와 백제에서 보여지는 양식의 차이
같은 것이다. 양나라 불상은 곧 백제 불상에 반영된다.
남북조 시대 전기의 북위와 양나라의 불상은 어린아이의 인체비례인 5-6등신의 몸매에
동안이며 가느다란 미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초기 불교의 부처의 이미지
중 절대자의 친절성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양식이다.
그러나 6세기 중염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나뉘고, 다시 6세기 후반에 북제, 북주 시대로
들어서면 불상은 장대해지며 얼굴의 미소가 점차 사라지면서 경직된 표정으로 바뀐다.
이런 양식적 변화는 수나라(584-620) 불상까지 이어진다. 이제 불상은 절대자의 친절성이
아니라 절대자의 귄위를 강조하는 이미지로 변했다. 이런 양식은 신라 불상에 나타난다.
당나라(620-900)로 들어서면 엄격하고 경직된 불상 조각이 유연한 자세로 바뀌면서 사실적인
인체 모습으로 발전한다. 인도 조각의 영향을 받아 육체는 풍만하고 얼굴에는 살이 오르며
육감적인 불상으로 변한다. 이런 경향은 통일신라 불상에 반영되어 석굴암 같은 불상이
조성되었다.
★ 중국 불상과 삼국시대, 일본에의 전파
중국 불상의 양식적 변천을 보면 고구려는 북위, 백제는 양나라, 신라는 북제,수나라,
통일신라는 당나라 불상과 궤도를 같이하면서 삼국 특유의 불상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삼국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여 일본의 고대국가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또한 아스카시대의 일본 불상 제작에 깊이 개입하는데 초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도래(渡來) 양식이 주도하고 나중에는 도리 같은 조각가가 등장하면서 일본 특유의
불교 미술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상은 중국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경향에 동참하고
한편으로는 이를 일본에 전파하면서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보편적 흐름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이는 서양에서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문화가 독일,
네덜란드로 전파되면서 유럽 문화의 특성을 이루게 된 경우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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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교의 불상을 통한 문화의 전래와 동양 삼국의 영향에 관해 함께 보았
습니다. 문화의 전파는 마치 리트머스지에 떨어뜨린 시약이 퍼지듯이 서서히
그 주변으로 전파가 되어지는 것을 보게됩니다.
기원전 300년 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여정은 수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 끝 일본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페르시아를 정벌하고 동진을 계속하던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인도의 서북쪽에 이르러 대장정을 마무리합니다.
예상보다 인도가 너무 컸고, 긴 대장정의 여파로 부하장수와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지요.
이후 인도의 서북쪽에 남아서 나라를 세운 알렉산드로스의 장군에 의해 이어진
셀레우코스 왕조 등의 영향으로 헬레니즘이 인도에 불상을 처음 만들게 하고
독자적으로 남쪽에서 생긴 마투라 불상과 함께 중국에 영향을 줍니다.
중국의 불상은 곧 우리 한반도에도 영향을 주는데, 고구려는 북위, 백제는 양나라, 신라는 북제,수나라, 통일신라는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요.
이는 불상의 영향 뿐아니라, 모든 문화적 교류가 이들 나라와 근접해서 주고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에서 시작된 문화의 나비 날개짓은 수 세기에 걸쳐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거쳐 통일신라의 불상까지 이어집니다.
우리의 자랑거리인 석굴암의 불상은 간다라 미술 쪽보다는 남쪽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우리의 불상문화는 일본의 불교 미술에 영향을 주지요.
이처럼 문화는 서로 인접한 나라나 민족으로 영향을 서서히 주고, 그 지역의
풍토나 민족의 습성에 맞게 변화되고 발전되어 다시 다른 지역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