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美),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
강 일 송
오늘은 미학(美學), 그중에서도 한국미(韓國美)에 관한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최준식(1956~)교수로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국제 한국학회 회장, 한국문화표현단 단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다", "한국문화와
한국인", "개벽시대를 여는 사람들" 등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에 대해서 의외로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근거 없는 문화적 열등감
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문화의 진정한
멋과 아름다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
우선 미(美)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봅니다.
미란 정의상으로는 자연,인생,예술 등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하겠지요. 하지만 누구나 보는 관점에 따라서 아름다움
이란 달라질 수 있고,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미에 대한 학문인 미학(Aesthetica)이란 철학의 한 분야로, 이미
플라톤에게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고, 1700년대에 이르러 라이프
니쯔볼프학파의 바움가르텐이 이성적 인식에 대하여 한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의의를 부여하여 철학의 한 부문으로
수립하여 Aesthetica 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비롯된 현대 미학은 철학의 한 부문이기에 그
문화적 뿌리가 다른 동양과는 보는 관점과 방식이 너무나 다를 것
임은 자명하고, 오늘은 우리나라의 미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의 미를 논할려면, 먼저 그 기층에 뿌리내려온 무교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무교에서는 무당이 하늘(신령계)와 땅(인간계)를 연결시키고 있는데
굿에서 무당은 춤과 노래를 통하여 엑스타시, 즉 망아경으로 들어
갑니다. 이 속에서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못하는, 종교학적으로
“원초적 혼돈상태”가 되는데, 여기서 일상의 숨막히는 질서가 거부되고
혼돈의 태초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지난 역사동안 인류는 이런 원초적 축제를 늘 해왔고, 일상의 계급
을 벗어버리고 난장판적 축제를 벌렸습니다. 이런 축제는 사회가
질서에 질식하지 않고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였지요.
우리는 이러한 무교와 역사를 같이 해왔고, 우리는 굿에서 보이는
것처럼 질서를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인들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서 어느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인사불성까지 마셔서 망아경까지
가야 술 잘 마셨다하고, 술판은 싸우느라고 난장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술판에서 굿판이 재현됩니다.
우리의 예술을 관통하는 미의식은 “자유분방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학자 중 대표적인 고유섭선생에 의하면 우리의 미는
“무작위의 작위, 무기교의 기교”라고 합니다. 한국의 예술품들은
너무 천연스러워 인위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 외에도
무계획성, 무관심성, 비균제성(asymmetry), 구수한 큰 맛, 질박함
등이 있습니다.
먼저 음악을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시대 가야금의 최고 명인인
황병기 선생은 “가장 비서양적인 것을 동양적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전통음악은 가장 동양적인 음악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의 음악에서 주로 쓰는 박자는 2박자 계통이어서 서양
음악과 합주를 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 반면에 한국음악은 주로
3박자라 서양것과 잘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음악의 세계관이
달라, 서양의 갈등 구조가 없어서, 박이라는 악기가 시작을 알리지
않으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곡이 바뀔 때도 확실한 구분이
없습니다.
이는 서양처럼 세상을 진화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순환
하는 것으로 보니 불안감이 있을 수 없어서입니다.
이번에 미술계를 본다면, 진경시대라 불리는 숙종조 이후 향토색이
짙은 작품들이 대거 나오는데, 진경시대란 한마디로 항상 중국만
쳐다보고 살 던 조선의 선비들이 중국(명)이 오랑캐(청)에 망하자
우러러 볼 대상이 없어져 자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기입니다.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의 “금강산도” 같은 그림들이지요.
상층 계층이 기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나온 그림이 풍속화라고
불리는 그림들이었고 기층에서 자신감이 더해지면서 민화나 장승,
미륵 같은 매우 한국적인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무용계를 보자면, 우리나라 예술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것, 혹은 가장
고유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춤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중국의
영향을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살풀이춤이나 승무 같은 민속춤은
완전히 한국적입니다.
무당은 기생과 더불어 한국 예술의 가장 중요한 담지자이자 계승자
인데, 우리 춤의 대표적인 살풀이춤은 굿판에서 나왔지만 이것이
기방으로 흘러 들어가 예술적인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고 승무도
기원이 확실치 않지만 이것 역시 기생들이 기방에서 발전시킨 춤입니다.
서양의 춤인 발레와 비교를 해보면, 발레의 특징 중 하나는 공중에 떠
있는 시간, 즉 체공시간을 가능한 오래 갖는 것입니다. 발레 무용수가
땅으로 내려오는 것은 하늘로 더 높이 치솟기 위함인데 한국의 춤에서는
하늘로 치솟기보다 땅에 더 가까이 가려 하여 한국춤은 땅에서 맴돕니다.
발레는 발끝으로 서니 땅에 대해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상대에
대하여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나 한국춤은 땅을 발뒤꿈치로 내딛으며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며, 땅에 대해 한없는 긍정의 태도를 갖습니다.
이번에는 도자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예술사를 공부할 때 도자기만큼 좋은 자료는 없다고 합니다. 도자기만큼
전 시대를 걸쳐서 나타나는 예술품이 없어서 선사시대 빗살무늬토기로부터
고려시대 청자를 거쳐 조선의 백자까지 다 남아있어 가장 좋은 분야입니다.
먼저 고려청자를 한번 보겠습니다.
원래 청자는 중국에서 유래가 된 것인데, 세상에서 자기를 처음 만든 나라는
중국이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청자는 3세기경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청자가 만들어진 가장 큰 요인은 옥(玉)과 관계가 있는데, 옥은 군자를
상징하여 귀하게 여겨졌고, 부귀와 내세를 보장해주는 신앙적인 의미가 있었
다고 합니다. 흙으로 옥을 입히려는 시도중 가마에서 나무가 탄 후에 재가
앉으면서 푸른옷이 입혀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4세기에 청자가 몽촌토성에서 발견되어 왕성에서 중국에서
수입을 해서 썼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청자수입에 많은 돈이 흘러
들어가자, 중국의 도공들을 후한 대접으로 불러들여, 강진과 고창에서 청자
가마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진정 한국미를 잘 나타내주는 것은 조선시대의 분청자였습니다.
고려청자의 깔끔하고 이지적인 느낌에서 벗어나서 정돈되지 않아 수더분하고
구수함도 있으며 자유분방하기 이를 데 없고 익살과 천진스러움까지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한국미에 대하여 정리를 해 본다면,
한국인들 가슴에 흐르고 있는 무교적 자유분방성이 그 바탕이 되어 무작위의
작위, 무기교의 기교, 비대칭성, 비균제성, 질박함이 한국미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오늘은 미학, 특히 우리나라의 미인 한국미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본래 미(아름다움)란 너무나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고, 시대에 따라 민족에 따라,
나라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다른 미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더 좁게 들어가면 개개인이 가지는 미도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다름 속에서 큰 줄기, 흐름을 찾는다면 어느정도 골라낼 수 있을텐데
오늘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미를 찾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무교'였습니다. 기층 백성들이 수천 년
전부터 찾았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무속신앙.
현대의 종교들도 그 바탕에는 인간 삶의 불안함, 비예측성, 불가항력성 등을 기본
으로 기복신앙적인 요소가 흐르고 있습니다만 무속신앙이야말로 기복신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삶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굿판이 벌어졌고
이는 곧잘 난장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아프리카의 원시부족들이 펼치는 그들만의
축제도 우리의 굿판과 같은 맥락의 잔치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무교의 신앙은 우리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미에 있어서도 당연히 뿌리를
이루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은 정형성, 대칭성, 완벽주의를 거부합니다. 음악에서도 미술에서
도, 도자기를 만들 때도 자유분방하고 무질서에 가까운 성향을 보입니다.
일본의 국보라 불리는 이도다완을 봐도 좌우가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지도 않고
대충 유약에 담궜다가 뺀 흔적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이런 특징 때문에 대칭과
비례에 숨막힌 일본인들은 이도다완을 그토록 극진하게 대접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라는 조선백자 달항아리도 자세히 보면 반구 2개를 이어
붙힌 흔적이 보이고 정확히 원을 이루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흰색이 골고루
퍼져 반듯하게 보이지도 않지요. 하지만 이런 특성으로 달항아리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저자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의 원류는 대부분 조선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문화재가 조선후기 것이 많고, 면면히 이어져
오던 우리 문화의 맥이 끊어진 것도 조선후기이기에, 후손으로서 우리는 이것을
이어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가장 진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름다움을 외면한 채, 세계로 나아갈 수 없고 진정한
메이드인 코리아의 가치를 올리려면 무엇이 가장 한국적인 미인가를 바탕에 깔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