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中<3>
<“공자, 노자와 인간의 도(道)>
--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中<3>
강 일 송
오늘은 서강대 철학과의 최진석(1959~) 교수의 “노자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 세 번째를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건명원 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의 저서로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 “탁월한 사유의 시선”,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장자 철학” 등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1,2편에 연이어, 천명을 대신한 인간의 길로서 도(道)가 제시되고 이에 대한 공자와
노자의 각기 다른 사상과 접근법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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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생각으로 닦은 길, 도(道)
서양에서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로 부르면서 최초의 철학자라는 칭호를 붙입니다.
탈레스는 이 세계의 근원으로 물이라고 말했어요. 탈레스가 이 말을 하기 전에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 세계의 근원으로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신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스스로의 생각으로 이 세계와 마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계의 근원을 물로 생각한 것은 화학적으로나 물리학적으로나 지구과학적으로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믿음에서 생각으로, 신에게서 인간으로 이동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인간만의 능력으로 건립한 그 길을 바로 ‘도,道’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만의 능력이란 믿음의 힘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말합니다.
인간은 이제 천명을 따르지 않고 도를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도의 출현은 바로 중국 문명에서 최초로 터져 나온 인간의 독립선언이에요.
도의 출현 이전에 중국인이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개의 축은 ‘천’과 ‘덕’이었습니다.
도가 출현하고 나자 이제 중국인들은 세계와 관계하고 세계를 해석하며 또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두 개의 중심축을 새롭게 갖게 됐으니 그것이 바로 도와 덕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道德’은 바로 이 도와 덕을 붙인 말이지요.
★ 천명의 극복
하늘의 뜻인 천명은 하늘의 아들인 천자를 통해서만 인간 세상 속으로 전달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비밀스러운 비의성(秘意性)은 천자가 임의대로 해도 알 수가 없게
만들었지요. 따라서 천명에 있던 문제점을 비의성, 임의성, 주관성이라고 합니다.
도는 천명을 극복하려는 인간이 만든 매우 인간적인 범주의 개념입니다. 도가 천명을
극복하려면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 안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습니다.
천명론을 극복해 인간의 길을 건립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최초의 철학자로 노자와 공자가
있어요. 이들은 중국에서 최초로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이 확보된 인간의 길,
즉 도를 건립하려고 노력했는데 각자 가진 영감의 원천이 달랐기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길을 그렸습니다.
★ 공자의 철학
공자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 이전의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바로 하늘의 명령 때문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공자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에서 인을 잘 실천할 수 있는 황금률 하나를 제시합니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이는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같기에 가능하겠지요. 이를 공자는 인간으로서의 ‘씨앗’
인 ‘인’을 사람들은 모두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자가 볼 때 인간은 인이라는 씨앗을 공통의 기반으로 공유하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공자의 길은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 노자, 공자를 꾸짖다.
중국 송대의 철학자 주희는 공자의 사상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로 압축해
정리합니다. 공자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본질인 ‘인’이 있다고
보고, 그 보편적 본질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게 만들어진 ‘예’를 수용하고 따를 것을
제안합니다.
공자에 의하면 이 예는 전체 사회가 모두 따라야 하는 보편적인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공자가 건설하려고 했던 ‘인간의 길’이에요. 그런데 노자는
바로 이 점을 공격하면서 자신만의 인간의 길을 건설하려고 해요.
여기서 우리는 현대 철학자 미셀 푸코(1926-1984)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하는데,
푸코는 본질이나 중심을 기반으로 형성된 철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기준이 돼 결국
이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비록 그 본질이 선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노자는 특정한 기준을 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집중하고 통일돼야 한다고 보는
공자식의 문명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노자가 보기에는 모든 가치는 중립적이에요. 그런데 공자의 ‘예,禮’라고 하는 특정
교화 체계를 걸어 놓고 백성 모두를 거기에 통합하려고 합니다. 노자는 그 기준이
비록 선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준으로 행사되는 한 폭력을
잉태한 장치일 뿐이라고 강조해요. 왜냐하면 이 기준이 작동해 세계를 구분하고 배제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공자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보편적 기준을 확보하고 거기에 모든 백성이 일치해나가는
것이 천명을 극복하는 새로운 인간의 길이라고 봤습니다. 이에 반해
노자는 이 기획 자체가 필시 가치론으로 빠져서 구분하고 배제하는 기능을 피하지 못한
채 차등과 갈등의 원천을 잉태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어요.
그렇다면 이런 갈등이 자리 잡지 못할 문명의 기획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야 할까요?
노자는 그 영감을 ‘자연’에서 구합니다. 자연은 이런 분리의 장치가 없이 작동하면서
오히려 영구적이고 거대한 효과와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지요. 자연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관찰됩니다. 노자는 이런 자연의 특성이 천명이 갖고
있던 비의성, 주관성, 임의성을 극복하고 투명성, 객관성, 보편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천명을 극복하고 ‘도’라고 하는 인간의 길을 건립하려 했던 두 철학자 가운데
공자는 ‘인간의 내면’에서 영감을 얻고, 노자는 ‘자연’의 존재형식을 사유의 원천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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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자 인문학의 세 번째 편을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류의 문명 시작부터 하늘의 무서운 힘, 천명에 인간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다가 점차 그 중심이 인간의 영역으로 옮겨오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탈레스도 신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스스로 '생각'을 시작한
철학자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고, 동양의 공자와 노자도 천명을 받은 천자의
길에서 "도"를 통한 인간의 길을 찾고자 한 철학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단, 공자는 그 인간의 길을 "인(仁)과 예(禮)"에서 찾았고, 노자는 그 길을 자연
(自然)에서 찾았습니다. 공자는 가치가 있는 인간이 따라야할 보편적 기준이
있다고 보았고 모든 인간은 마땅히 그 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셀 푸코의 철학이 등장하는데 가치나 본질 중심의 철학은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고 옳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기준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시키고
강제하는 구조를 잉태한다고 보았고, 노자는 2500년 전에 이미 이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공자의 철학을 비판하였습니다.
노자는 가치중립적인 철학을 가지고 '자연'이야말로 진정 인간이 따라야 할 모든
것을 품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누구를 소외하거나 누구를 배제하거나 무엇을
강제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자연은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지요.
오늘 저자인 최교수는 노자의 사상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의와 옳음을 품고 있는 사상도 이미 구분짓고 배제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면 진정한 인간을 위한 가치를 이미 잃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정의로운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고 있는지요.
이미 2500년 전에 이를 꿰뚫었던 노자의 사상을 오늘날 지혜롭게 되살려
진정 인류를 위한 자연의 이치가 널리 통용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