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는 거리 찾기”
강 일 송
오늘은 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간관계 심리학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가족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20cm,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46cm,
회사 사람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는 1.2m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김혜남(1959~)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서울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고,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환자를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마흔 세 살의 나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고 엄습하는 절망을 이겨내며
진료와 강의, 책 출간, 두 아이의 육아 등을 훌륭히 해냅니다.
2008년 출간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시작으로 모두 여섯 권의 책을 출간하여
130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합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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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사람보다 낯선 사람에게 더 친절한 사람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일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까운 이보다 오히려 낯선
이에게 더 친절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눈 지 너무나 오래된 딸이 길을
헤매는 낯선 여행객을 보면 먼저 다가가 길을 알려 준다.
서글서글하고 친절해 회사에서 ‘스마일맨’으로 통하는 최과장은 집에만 들어가면
입을 봉한 듯 말이 없어진다.
왜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각자의 섬에서 외롭다고 말하는 것일까? 무엇이 당신과 나 사이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나 또한 6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2001년
몸이 점점 굳어져 가는 파킨슨 병을 진단받고 결국 2014년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게 되자 나를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아파서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많던 지인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게다가 세상은 나 없이도 멀쩡하게 잘 돌아갔다.
그제야 나는 늘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자 과거에 내가
건성으로 대했거나 의례적으로 대했던 사람들에 대해 미안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30여 년 정신분석 전문의로 활동하며 만난 수천 명의 환자들. 그들은 모두 마음이 아파
나를 찾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들을 가장 아프게 만든 사람들은 바로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 상처입기를 각오해야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는 한, 상처에서 끝내 벗어날 수 없다. 누군가와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꽁꽁 감춰왔던 못나고 약한 모습을 그에게 보여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즉 상처 입기를 각오해야 그토록 원하던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지옥 같은 관계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가는 대신 내 관점을 바꾸는 방법을
선택했다. 혹시 내가 상대방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닌지, 애초에 내가 포기하거나
버려야 할 것은 없었는지를 자문해 보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작 소중한 관계를 지키는 데는 소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 사람 사이에 필요한 최적의 거리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로 그는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인간의 공간 사용법에 대해 4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먼저 밀접한 거리는 0~46cm 미만으로 사랑을 나누고, 맞붙어 싸우고, 위로해 주고, 보호해
주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는 거리를 말한다. 소리보다 촉감이나 후각 등의 감각이 주요
소통 수단이 된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서로의 친밀도가 가장 높은 관계에서 나타나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이 불쑥 이 거리를 침범해 들어오면 사람은 움츠러들고, 긴장하며
불안해하면서 위협을 느끼게 된다. 즉 자기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거리이므로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그 다음은 개인적 거리로 46cm~1.2m이다.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이 일정하게 유지하는
거리를 지칭하기 위해 원해 동물학자 하이니 헤디거가 사용한 용어로 서로의 팔 길이
만큼의 사이를 뜻한다. 주로 친구나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접촉보다는 주로 대화로 의사소통을 하면 적당한 친밀감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격식을
필요로 한다. 가벼운 스킨십을 하며 다가갔을 때 상대방이 호감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거리는 1.2m~3.6m로 지배의 한계를 넘어선 거리다. 어떤 특별한 노력이 없는 한
상대방과 닿지도 않고 그럴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비개인적인 업무가 행해지며
사무적이고 공식적인 성격을 띤다. 사적인 질문이나 스킨십이 허용되지 않기에 대화에서도
격식을 갖춘 예의가 요구된다.
끝으로 공적인 거리는 3.6m~7.5m인데, 이는 개인과 대중 사이의 거리로 과장된 목소리와
함께 몸짓이나 자세 등 비언어적 의사 전달 수단이 요구된다. 교사와 학생, 연극배우와
가수, 강사와 청중 사이의 연설이나 강의 등에 필요한 거리다.
★ 거리를 둔다는 것, 그 마법에 대하여
너무 가까워서 서로 상처 입지 않으며, 너무 멀어서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 최적의 거리는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슴도치처럼 한두 번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가
상처를 입으면 아프기 때문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게 된다. 다시금 시도
했다가 또 다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처 받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그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다
가까운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가
무엇을 하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무관심해지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곁에는 늘 내가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거리 두기다.
서로를 진정 소중히 여기기에 꼭 해 줘야 하는 것이 바로 거리 두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설령 또 한 번 상처 입을지라도 용기를 내어 보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이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그와 당신이 서 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간격은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면 혼자 있어도 행복하고, 함께 있어도 행복해
질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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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혜남 저자의 이 책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시가 있습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1883-1931)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마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오늘 이 글을 놀랍게도 잘 표현한 시지요. 이처럼 지혜가 뛰어난 선각자들은 인간관계
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혜남저자의 책은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아주 젊은 나이에 파킨슨 병이라는
엄청난 고통의 병을 안게 되고 숱한 고민과 갈등 속에 있다가 점차 인간적으로 극복해
가는 놀라운 인간 승리를 그는 보여줍니다.
그는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그 많던 지인들이 점차 사라져감을 절감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소홀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진료했던 수많은 마음에 상처 입은 사람들도 놀랍
게도 대부분 가장 가까운 이들이었다는 것도 이야기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꼭 공간과 거리가 필요합니다. 생존을 위한 공간이자 거리를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아주 잘 정리를 하였습니다.
이런 거리를 무시하면 불쾌함, 불안함 등을 주어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게 됩니다.
가족끼리도 마찬가지여서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개인이 안정감을 느끼는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서로에게 큰 상흔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꼭 필요한 거리는 두되 언제나 함께 할 것이고 곁에 있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