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
“인류가 가장 사랑한 화가와 음악가들의 만남”
강 일 송
오늘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화가와 음악가들을 절묘하게 짝을 지어
음악과 미술의 세계로 함께 안내하는 흥미로운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권순훤(1980~)작가는 피아니스트이자, 네오무지카 대표,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
교수인데,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쳤
다고 합니다. 가수 보아의 큰오빠로도 유명한 그는, 영국왕립음악원에 합격했으나 유학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대중에게 클래식 음악을 설명하고 소개하는 글을 쓰는
일에 뛰어든 것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
★ 르누아르와 슈만
-- 우리는 늘 행복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감정 중 하나가 바로 ‘행복’ 아닐까요?
그리고 예술가 중에서 이 ‘행복’을 가장 잘 표현해 낸 화가를 꼽으라면 저는 제일 먼저
르누아르가 떠오릅니다. 그는 “그림은 기쁨과 행복을 나타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도시의 춤, 아름다운 카페,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 등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드는 그림을 많이 그려 “캔버스에 행복을 담아낸 화가”라고
도 불린답니다.
르누아르(1841~1919)는 1841년 프랑스의 리모주에서 조그만 양복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가난했기에 도자기 견습생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고 1862년 샤를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조수로 들어가 모네, 세잔과 같은 화가들과 교류하게 됩니다.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라파엘로의 작품들과 폼페이의 벽화에서 큰 감동을 받습
니다. 이후 좀 더 담백한 색조를 사용하고, 자세를 명확하게 그려서 화면 구성에 깊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르누아르의 작품과 어울릴 만한 음악은 어떤 곡들이 있을까요?
저는 슈만(1810~1856)이 작곡한 <어린이의 정경>을 꼽고자 하는데, 이는 총 13곡의 모음곡
집입니다. 당대를 휩쓸던 화려한 기교를 앞세우는 비르투오소 스타일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로지 어린이의 입장에서 작곡한 아름다운 멜로디로 포근하고 서정적인 곡이지요.
이 곡은 어렵지 않은 난이도와 아름다운 멜로디만으로도 고도의 예술성을 표현해 냈습니다.
특히 7번째 곡인 <트로이메라이>가 큰 사랑을 받고 있지요. 트로이메라이는 꿈이라는 뜻
입니다. 온화하고도 아름다운 멜로디와 다양한 화성으로 1쪽밖에 되지 않는 짧은 곡임
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합니다.
★ 클림트와 베토벤
--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오직 하나뿐인 사랑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가지요. 클림트의 인생은 드라마틱한 연애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클림트는 단 한 명의 여인과 죽을 때까지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살았지요.
그는 참으로 독특한 삶을 살았는데, 결혼하지 않고 평생 홀로 살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살았습니다.
금세공업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황금빛이 많습니다.
그의 유명한 그림 <키스>에 나오는 여인은 그가 평생 동안 정신적 반려자로 삼은 플뢰게가
아닐까하고 추측을 하는데, 한때 클림트의 애인이었고 이후 애인에서 친구가 된 후
평생 가까이에서 서로를 지켜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클림트가 임종 직전에 찾은 여인이 플뢰게였고, 플뢰게는 클림트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
주었습니다.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1770-1827)은 귀족 가문의 소녀인 줄리에타
귀차르디에와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 소녀에게 이 곡을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19세기 유럽에서 음악가라는 직업
은 그다지 높이 평가받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귀족과 결혼하기에는 힘든
위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월광>에는 당시에 베토벤이 했던 많은 고민들이 녹아
있는 듯합니다. 이 곡이 완성될 때쯤 줄리에타는 집안의 반대를 이겨 내지 못하고 베토벤과
헤어져 다른 귀족과 결혼을 하고 맙니다.
<월광>은 일반적으로 ‘달빛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환상곡 풍의 소나타’라고
소개되지만, 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이면에는 슬픈 결말이 뻔히 보이는 베토벤의 불안한
사랑,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어둡고 우울한 감정, 그렇지만 이 모든 시련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해 나가려는 베토벤 특유의 강인함과 인생 철학이 다양하게
녹아 있습니다.
★ 미켈란젤로와 모차르트
-- 괴짜, 진짜가 되다.
미켈란젤로(1475-1564)는 다빈치와 함께 누구나 익히 아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이탈리아 카센티노의 카프레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지역 행정관이었고, 어머니는 그가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3세가 되던 해에 당시 피렌체의 뛰어난 화가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으로 들어가 도제 수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재능은 스승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으며 그림을 배우게 됩니다. 갈수록 그는 그림보다는 조각으로 관심이 가 로렌초
데 메디치가 설립한 조각 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는 매우 겸손한 예술가였는데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돌덩어리를 눈부시게 아름답고
완벽한 작품으로 변신시켜 놓고도, “나는 다만 돌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이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니까요.
미켈란젤로는 죽기 직전까지 여유롭게 밥 먹을 시간 없이 작업에만 몰두했고, 그 당시의
최고 권력자인 교황에게도 굽히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가였습니다.
이렇게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를 음악에서 찾는다면, 저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단번에 떠오릅니다.
당시의 음악가들은 보통 권력자나 귀족에게 후원을 받으며 생활했기 때문에, 후원자에게
절대적으로 잘 보여야 하는 신세였습니다. 후원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금전적
지원이 끊겨 버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예외였습니다.
그 역시 초창기에는 귀족의 후원을 받았지만, 유난히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닌 그는
그러한 주종 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결국은 당대 예술가로서는 파격적으로 자립을
감행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용단을 내립니다.
천재화가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그림과 어울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하나 고른다면
<피가로의 결혼>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추기경에게 직격탄을 날린 <최후의 심판>과
비교해본다면, 이 곡은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의 동명 희극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로, 마치 부정한 추기경을 조롱하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처럼, 당시의 잘못된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한 곡이었습니다.
보마셰르가 이 연극을 발표했을 당시 왕실과 귀족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파리에서는 아예 상연이 금지될 정도였습니다. 모차르트는 이러한 도전적인 내용을
당대 최고의 대본 작가였던 로렌초 다 폰테와 의기투합하여 뛰어난 오페라로
작곡해 냅니다.
=============================================================
오늘은 음악과 미술의 두 장르가 멋지게 조우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자인 권순훤 작가는 가수 보아의 오빠로도 유명한데,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재원입니다. 전문 피아니스트 연주자의 길보다는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택한 그는 이번 책에서 유명한 음악가와 미술가를 매칭하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풀어나갑니다.
그중 첫 번째는 르누아르와 슈만의 연결을 보았습니다. 르누아르는 결코 순탄한 삶을 산
화가는 아니었지만, 그의 그림은 늘 행복한 일상만을 보여주고 있어서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기도 한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르누아르전을 할 때도 달려가서 보았답니다.
저자는 이런 르누아르와 음악가 슈만을 연결합니다. 슈만의 일생도 만만치 않았지요.
하지만 그의 <어린이 정경>은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두 번째는 이 책의 제목에 나온 것처럼 클림트와 베토벤의 조합인데, 얼핏 보면 큰 공통점
이 있을까 했는데, 사랑이라는 교집합이 존재하는군요. 클림트와 플뢰게의 사랑은 처음
에는 열렬한 사랑이었다가 점차 나이가 들수록 친구같은 은근한 사랑으로 평생을 같이
합니다. 베토벤이 사랑했던 여인 줄리에타,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결국 헤어지게
되지만 그 아픔은 <월광> 피아노 소나타에 남아 수백 년이 흘러도 많은 이들을 감동하게
하고 그 아름다운 선율에 젖게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천재 미술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와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결합이었
습니다. 지금도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면 그 장대함과 예술성
에 압도당하게 되지요. 모차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그 천재성을 보여주었고
그의 천재성을 질투하는 살리에르라는 인물 캐릭터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저자는 두 천재의 공통분모를 큰 권력이나 권위에 저항하며 자신의 예술성을 과감히
드러내는 면에 맞추었습니다.
예술이라는 다양한 장르 중 오늘 음악과 미술 두 분야를 융합하여 살펴보는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예술 뿐 아니라 철학이나 여타 학문의 분야도 항상 그 시대를 관통
하는 맥(脈)이랄까 트렌드라고 할까,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통시적인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보아도 흥미롭고, 오늘 이 책처럼 시대를 달리
하더라도 공통적인 특징을 매개로 연결하여 보는 것 역시 흥미를 더할 것입니다.
오늘도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