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안목, 眼目>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강 일 송
오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우리 국민들의 예술적 눈높이를 높여준 유홍준 교수의
책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유홍준 교수의 여러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미(美)를 보는 눈” 즉,
안목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자인 유홍준(1949-)교수는 서울대 미학과에서 학사,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를 합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했으며, 영남대 교수, 명지대 대학원장, 문화재청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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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목 - 미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
-- 환재 박규수(1807-1877)
“미(美)를 보는 눈”을 우리는 ‘안목, 眼目’이라고 한다. 안목이 높다는 것은 미적 가치를
감별하는 눈이 뛰어남을 말한다. 안목에 높낮이가 있는 것은 미와 예술의 세계가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보통 예술적 형식의 틀을 갖춘 작품을 두고서는 안목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적인
작품 앞에서는 안목의 차이가 완연히 드러난다.
서양 근대미술사에서 쿠르베의 리얼리즘, 마네의 인상파, 반 고흐가 푸대접을 받은 것은
아직 세상의 안목이 작가의 뜻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대는 물론이고
당대에도 그 예술을 알아보는 귀재들이 있어 그들 덕분에 예술적 재평가와 복권이
이루어진다.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예술로 말할 것 같으면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를 능가할
예술가가 없다. 추사의 글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글씨,
잘되고 못됨을 따진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불계공졸, 不計工拙’의 글씨이다.
이런 추사의 글에 대해 뛰어난 안목을 가진 한 사람이었던 환재 박규수(1807-1877)는
추사체에 대해 글을 쓰면서 그의 천재성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 추사의 결함
까지도 말하고 있다. 또한 추사의 개성적인 서체는 고전 속으로 깊이 들어가 익힌
다음 이룩한 것으로, 추사를 배우려는 젊은이는 그의 글씨체를 모방하지 말고 그의
수련과 연찬을 배우라고 한 것이었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였다. 1862년 임술농민봉기 때 백성을 무마하는 안핵사로
진주에 파견되었다. 그곳의 상황을 살펴본 후 농민들이 일어난 것은 단순히 이 지역
수령들의 잘못 때문만이 아니라 전정, 군정, 환곡 등 사회 전반의 문제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역사책에서 진주민란은 삼정(三政)의
문란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는 대목이다.
박규수에게는 예술에 대한 안목 뿐 아니라 세상의 추이를 보는 안목도 있었다.
그는 말년에 조국의 장래를 위하여 가회동 집에서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등 젊은
양반 자제들을 불러 모아 개화사상을 가르칠 정도로 안목이 원대했다.
확실히 박규수의 안목은 높고, 깊고 넓었다.
★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 백자, 달항아리
서양미술사와 동양미술사의 관점이 다른 것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도자기이다.
동양미술에서는 도자기가 당당히 미술사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으나, 서양미술사에서는
도자기는 아트(art)가 아니라 크래프트(craft)다, 즉 예술이 아니라 공예다.
서양미술사에서 도자기는 연륜이 깊지 않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도기가 유명하지만
그것은 거기에 그려진 그림에 주목하는 것이고,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생산한 자기는
18세기 초 독일의 마이센 자기가 처음이니 그 역사가 300여 년밖에 안 된다.
이에 반해 동양도자사는 아주 오래다. 중국의 경우 신석기시대 도기는 고고학의 영역
으로 치더라도 한나라 회도부터 치면 2,000년, 4세기 월주요의 초기 청자부터 치면
1,600년이 된다. 우리나라도 원삼국시대 도기부터 보면 2,000년, 고려청자부터 헤아
리면 1,000년의 도자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자기를 생산하였지만 조몬토기라는 훌륭한 토기 문화가 있었고 가야도기를 이어받은
스에키 토기부터 치면, 1,500년 도기의 역사가 있다.
도자기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도자기를 보면서 잘생겼다,
멋지다, 아름답다, 우아하다, 품위 있다, 귀엽다, 앙증맞다, 호방하다, 당당하다,
듬직하다, 수수하다, 소박하다 등등 여러 감정을 본 대로, 그리고 느낀 대로 말한다.
그런 미적 향유와 미적 태도를 통해 우리의 정서는 순화되고 치유된다.
도자기에 시와 글을 새겨 넣은 경우가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에는 드물지만 조선백자에는
자주 있어 이것이 우리나라 도자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한중일 도자기에 대한 민족적 특성을 일본의 유명한 학자 야네기 무네요시(1889-1961)는
말하기를, 중국은 형태미가 강하고, 일본은 색채가 밝고, 한국은 선이 아름답다고 했다.
또한 중국 도자기의 형태미는 완벽함을 보여주고, 일본 도자기는 색채미가 깔끔함을
추구하는데 한국 도자기의 선은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한다고 했다.
그 많은 조선백자 중 대표적인 유물 하나를 꼽자면 아무래도 18세기 전반 영조시대
금사리가마에서 만들어진 백자대호, 즉 달항아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높이 한 자 반(약 45cm)이상 되는 달항아리는 현재 약 스무 점이 전하고 있고
그중 일곱 점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우리를
매료시킨다.
이전의 발로 차는 수동식 물레로는 이처럼 큰 둥근 항아리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커다란 왕사발 두 개를 이어 붙여 달항아리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기하학적
원이 아니라 비정형의 둥근 선이 나타났고 이는 기하학적 원에서 느낄 수 없는
미감을 준다.
세월이 흐르면서 달항아리는 알게 모르게 한국미의 상징이 되었다. 일찍이 달항아리를
소재로 삼아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이는 수화 김환기가 대표적인데 그 맥이 점점
더 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퍼져나가 고영훈, 강익종은 아예 달항아리의 화가로 통하며,
구본창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사진 작업으로 재현하고 있다. 또 많은 도공, 도예가
들이 달항아리 제작에 열중하고 있다. 달항아리는 실내 장식에서도 공간에 품위와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제공한다.
이렇게 달항아리는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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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미술사학자이자 작가인 유홍준 교수의 새로운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고 멀기만 했던 예술의 영역을 한층 가깝게 느끼게 하였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예술에 관한 책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그는 오늘 “안목”이라는 책을 통해 대중들에게 미(美)에 대한 일깨움을 주고 일상
생활에서도 미적인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줍니다.
오늘 책 내용 중 두 가지를 뽑아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기도 한 환재 박규수를 통해 예술작품을 보는 안목,
그리고 세상사를 바라보는 안목이 뛰어났음을 보았고, 많은 예술작품이 이런 뛰어난
안목을 지닌 인재에 의해 평가받고 대중에게도 영향을 줌을 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서체는 난해하고 어렵지만 그 바탕에는 고전을 탐구한 깊은 내공이
있음을 환재 박규수는 말하고 있습니다.
피카소가 어떻게 보면 대충 그린 듯한,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듯한 그림도 있지만
젊은 초기 시절의 피카소 그림을 보면 아주 기본이 충실하며 세밀한 그림을 그렸
던 적이 있었지요. 이는 기술적으로 완숙한 단계에 이르러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혁신적인 작품이 탄생했음을 말해줍니다.
유홍준 교수도 잘되고 못됨을 따진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불계공졸, 不計工拙’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였고, 노자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을 2500년 전에 이야기를
하였었지요. 즉, 큰 기교일수록 평범하고 서툴러 보인다는 말입니다.
또한 심입천출(深入淺出)이라는 말도 있지요. 깊이 들어가서 얕게 표현한다는
말로 보통 깊고 많이 아는 사람이 설명은 쉽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미의 아이콘이 된 달항아리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도자기는 예로부터 가장 오랜 시간 지속이 되었고, 전 시대에 나타나며, 보존이
비교적 잘되는 특징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기에 좋은 소재라고 하였습니다.
서양미술사에서 도자기는 공예의 영역이고, 동양미술사에서는 아트(예술)의
영역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네요.
동양, 특히 중국의 도자기는 유럽의 귀족과 왕족에서는 가장 귀한 보물 중 하나였고
18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마이센가마에서 드디어 도자기를 생산하게 되었지요.
중국의 도자기에 이어 일본의 도자기가 유럽에 엄청나게 수출이 되어 일본의 도자기는
19세기에 유럽에 많이 알려졌지요. 하지만 우리의 도자기는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이 유명하고, 오늘 언급한 달항아리가
한국미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움미술관에서 만난 달항아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약간 어두운 공간에 조명을 받은 하얀 달항아리는 완벽한 원도 아니고 약간의 얼룩도
있어 보이지만 그 풍만한 볼륨감과 넉넉함이 마음을 여유롭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수화 김환기의 달항아리 그림을 보면 1950년대 그린 그림이지만
너무나 현대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거장의 면모가 보입니다.
오늘 저자는 당대에 안목 높은 이가 없다면 그 시대의 비극이라고 했는데,
지금 당대에는 유홍준 교수 같은 분이 있어서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