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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

<아트 인문학>

by 해헌 서재

<아트 인문학> 김태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강 일 송


오늘은 아트를 매개로 한 인문학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이전에 이책의 김태진 저자의 “아트인문학여행”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르네상스에

관한 내용을 주로 이야기했고, 오늘은 여러 미술사조 중 인상주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번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김태진 저자는 서울대에서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보들레르를 전공한 미술애호가로 서울대

인문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서울 시립대 겸임교수이며, 기업인재연구소 대표로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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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는 방법 자체가 바뀌다 – 알라 프리마 기법


파리 몽마르트에서 가까운 바티뇰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한 화실에서 잘 차려입은 신사

들이 모여 한 화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누구이며 이

화가는 왜 이런 시범을 보이고 있을까? 인상주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

하게 되는 이 기념비적인 그림에는 그 면면도 화려한 이들이 등장한다.


그림을 그리는 이는 ‘마네’다. 그는 동료 화가이자 평론가인 아스트뤽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그의 뒤로 동료 화가로는 숄데러, 르누아르, 바지유, 모네가 보이고 에밀 졸라와

수집가 메트르도 보인다. 르누아르는 마네의 붓질을 잠시라도 놓칠세라 몰입한 상태다.

마네가 이들에게 보여주는 건 무얼까. 바로 “알라 프리마 기법”이다.


*알라 프리마(alla prima); '단번에 그리다'라는 뜻을 가진 그림 기법


인상주의 화가들의 리더이자 정신적인 지주로 영원히 기억될 마네는 젊었을 때부터

벨라스케스와 할스에게 매료된 사람이었다. 그는 데생만 반복하는 고리타분한 아카데미를

박차고 나와 루브르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배운 마네는 그뒤 해외여행을

통해 여러 미술을 직접 접하게 된다.


그는 네덜란드에서는 할스의 작품을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고, 스페인에서는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고 감격했다. <올랭피아>에 쏟아진 비난과 모욕으로 좌절했던 시기에 마드리드로

도피성 여행을 떠났던 마네는 프라도미술관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시녀들>을 직접

마주한 뒤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이 옳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어 왔던 것이다.


마네는 이들에게서 배운 알라 프리마가 틀에 박힌 고전미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임을 확신했다. 그리하여 자신을 따르는 젊은 후배들에게 이처럼

열심히 그 기법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 인상주의의 외광회화


마네를 따랐던 이들 젊은 화가들 중에는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았다.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는 물론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등은 모두 풍경화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바르비종파’ 즉, 프랑수아 밀레나 카미유 코로처럼

성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이 바르비종파에서 가져온 개념은 ‘외광회화’였다.

이는 작업실에서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직접 햇살을 받으며 그리는 그림을 의미했다.


그런데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용어만 외광회화였지 밖에서 스케치만 하고 대부분은 실내

에서 그렸다. 하지만 젊은 풍경화가들은 모네의 주도하에 실제로 밖에서 그림을 그렸고

가능하면 현장에서 완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니 시간이 문제였다. 이때

이들에게 딱 맞는 해결책이 되어준 것이 바로 알라 프리마 기법이었다.


★ 기술과 산업의 발전 – 튜브형 물감의 등장


알라 프리마가 인상주의의 외광회화를 가능하게 한 이면에는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서양엔 화학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공 안료가 경쟁

적으로 개발되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색상의 안료가 만들어졌고, 오일과

혼합된 튜브형 물감이 만들어져 이내 대량생산이 이루어졌다. 이전까지 매우 비싼

안료를 사다가 직접 물감을 제조해야 했던 화가들로서는 너무나 편리한 발명품이

만들어진 셈이었다.


이 무렵 철도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는데, 철도는 ‘엄청난 속도’로 공간의 제약을 없애

버렸다. 화가들은 풍경을 그리기 위해 가고 싶던 장소를 마음껏 갈 수 있게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주로 선택한 현장은 센 강변의 휴양지나 저 멀리 노르망디

바닷가였다.


튜브형 물감과 기차, 이 두 가지를 기억하자. 인상주의 풍경화를 낳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시대적 요인들이다. 여기에 기법적으로 알라 프리마가 더해진다.

이들이 없었다면 인상주의의 혁명이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 찰나에서 영원으로


마네가 살아간 시대는 사회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시기였다. 식민지 자원까지 확보하며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한 유럽의 열강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번영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파리는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대대적인 개발에 착수,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

하는 중이었다. 꼬불꼬불한 중세 골목길로 이루어졌던 도시는 넓은 대로의 도시구조로

바뀌고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섰다. 세상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백화점이 생겨나고 패션산업이 발달하면서 멋지게 차려입은 댄디들과 숙녀들이

거리에 넘쳐났고, 밤에는 유흥가의 불빛이 파리를 환하게 밝혔다.


현대식 도시로 바뀐 파리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눈을 열어주었다. 새로운 파리를

파리지앵들을 그리는 데 빠져들었고, 마네는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이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한 순간을 포착해 영원한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마네의 평생지기로서 또한 도시의 한 장면을 절묘하게 포착한 위대한 화가는 바로

‘드가’다.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들 중 엘리트 화가로서의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던

화가다. 그는 스냅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앵글로 그리길 좋아했다. 파리의

화려한 ‘도시의 여인’들을 그렸는데, 그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발레리나였다.

그는 화려한 무대의 모습보다는 무대 뒤편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보다 인간적인

면면들을 더 많이 그렸다.


또한 인상주의를 말할 때 르누아르를 빼고 말할 수 없다. 르누아르는 마네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낸 동료였다. 행복의 느낌을 가장 잘

전해주는 화가로 손꼽히며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데 특히 뛰어났다.

르누아르 역시 당시 파리지앵들의 한 순간을 절묘하게 잡아낸 화가였다.


한 뱃놀이 모임의 오찬장을 담아낸 그림은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각각의 특징까지 섬세하게 그려

냄으로써 스쳐 지나갈 한 순간을 영원히 기억될 순간으로 만들어냈다.


(이 유쾌한 그림은 1881년 그려졌으며, 르누아르의 친구들이 대거 등장한다. 왼편

아래 꽃장식 모자를 쓴 여인은 미래 르누아르의 아내가 될 샤리고이며, 오른쪽 아래

의자를 거꾸로 앉은 이는 동료 화가 카유보트이고, 오른쪽 위로 자신의 볼에

손을 댄 여인은 당시 인기 여배우 잔 사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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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칫 어렵다고 여겨지기 쉬운 미술을 탁월한 식견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알려주는 김태진 저자의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자는 대학 최고의 강의에 수여되는 ‘베스트 티쳐’ 상을 수상할 만큼 인정받고 있고

그의 강연은 열렬한 앙코르 요청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번 꼭 실제 강의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미술의 사조는 인류의 역사, 문화사, 경제사에 맞추어 함께 연동되면서 변화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 오늘은 고전미술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도를 과감히

하였던 인상주의 화가들, 특히 리더였던 마네를 위주로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마네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기성 화단의 뿌리 깊은 관행과 관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기법 “알라 프리마”를 들여서 시도하고 후배화가들에게 알립니다.

또한 이 무렵 격동의 사회발전 속에서 튜브형 물감의 발명은 이들 화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었고, 외광회화를 통해 인상주의 사조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기차의 등장도 공간적인 제약을 풀어주어, 멀리 떨어진 자연을 찾아서 화가들은

자유로이 다니게 되었지요.


또한 파리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파리지앵들은 화려한 문화에 젖어가면서

이들의 일상을 포착하는 일을 인상주의 화가들은 하게 됩니다. 과거와 전혀 다른

구도를 통해 발레리나 등을 그린 드가, 행복한 일상과 아름다운 여인들을 주로 그린

르누아르 등도 파리의 일상의 순간을 그려내지요.


새로운 시대적 상황은 새로운 사조의 문화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음악도, 문학도, 미술도,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명제라고 하지요. 인상주의 화가들은 튜브형 물감, 기차 등의 도움으로 고전주의

미술에 반하는 새로운 풍의 사조를 형성하였고, 처음에 이들은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았지만 현대에서 가장 인정받고 비싼 가치를 평가받는 그림들 중 많은 부분이

바로 이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들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도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하여, 서울시립미술관과 예술의 전당 등의

전시회를 빠지지 않고 관람을 했었는데, 특히 화가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어도 이에 굴하지 않고 삶의 아름다움과 행복함을 그려낸 점을 좋아합니다.


“그림이란 즐겁고, 유쾌하며 예쁜 것이어야 한다.” -- 르누아르

(A picture should be joyful, pleasant, and beautiful)


르누아르의 말처럼, 즐겁고, 유쾌하며, 예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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