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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17. 2018

<히스토리아>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히스토리아> 주경철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강 일 송


오늘은 해박한 역사학자로서 저자가 인류 역사의 다양한 주제와 사건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모아쓴 글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주경철(1960~)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와 같은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소장과

르네상스 연구소 소장, 도시사학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그동안 주교수의 책은 여러 권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오늘 책도 저자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통한 깊은 사유의 글들이 가득한 책이었습니다.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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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의 날이냐, 침략의 날이냐 -- “콜럼버스의 날”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처음 육지에 상륙한 날은 1492년 10월 12일이었다.

이날 그의 <항해일지>에 기록되기를 그는 에스파냐 국왕의 이름 이니셜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몇 명의 부하들과 함께 상륙한 뒤 그 땅이 에스파냐 국왕의 소유라고

선언하는 의식을 치렀다. 벌거벗은 채 살아가던 현지 주민들이 모여들어 이 기이한

행동을 지켜봤다.


“자신들이 들은 것을 아주 빨리 되뇌어 말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똑똑한 하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런 종교도 없는 것으로 봐서 훌륭한 기독교도가 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다시 떠날 무렵에 그들 중 여섯 명을 잡아서 국왕 전하께 데리고 가서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콜럼버스의 생각대로라면 현지 주민들의 언어는 언어도 아니고, 기독교가 아닌

종교는 종교도 아니다. 그들을 지배하고 노예로 삼으면 될 것이며, 우선 그중

몇 명을 짐승 잡아가듯 맘대로 잡아다가 통역 겸 앞잡이로 키우면 좋을 것이다.

이것이 유럽인들의 태도였다. 실제로 이후 일어난 일들은 ‘인디언’이라고 잘못

명명한 이 사람들에 대한 착취와 노예화, 학살이었다.


소위 지리상의 ‘발견’이나 식민지 ‘개발’의 실상은 이런 것이었다. 그동안 콜럼버스를

영웅으로 기리던 미국 학교에서도 점차 실상을 숨김없이 가르치고 있다. 최근

신문지상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콜럼버스를 피고로 해서 모의재판을 열었는데, 그 결과는 “에스파냐 왕실을

빙자하여 절도를 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과거 역사 인물 중 콜럼버스만큼 격정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이제 ‘신대륙을 발견’하고 새로운 세상을 연 인물이라기보다는

침략자, 학살자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크게

바뀌어 간다.


★ 장수(長壽) -- 재앙인가 축복인가


세계 여러 지역의 신화는 황금 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장수를 누렸다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아담의 자손들은 모두 수백 년을 살았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므두셀라(에녹의 아들이며 노아의 할아버지)는 969세를 살았다고 한다.

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비관적인 성격이 짙어서일까, 신화의 주인공이라

해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는데, 영생불사를 찾아 헤매던 길가메시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120세의 수명을 누리다가 죽었다.


하지만 실제로 못 먹고 못 살던 대부분의 역사 시대에 인간의 평균 수명은

30세 정도에 불과했고, 50대가 되면 이미 노인 취급을 당했다.


인간 수명의 한계는 대체로 120년 정도로 보인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프랑스의 잔 칼망(1875-1997)으로서 122년 164일을 살았다.

이 할머니는 120세 이상 생존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대대로 장수하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금연운동가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럽겠지만 21세부터 117세까지 하루

두 대씩 꾸준히 담배를 피웠다 한다. 85세에 펜싱을 배우고 100세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110세가 되어서야 요양원에 들어갔다.


의학이 발달하고 생활 환경이 개선되면서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 77세, 여자 83.8세다. 언젠가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가 되고 오래 사는 사람은 150세까지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래 사는 게 좋은 일일까.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에서 만난 한 철학자는

인간이 얼마나 사는 것이 좋으냐는 물음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 소금 — 생명의 필수품에서 혁명의 도화선으로


소금은 사람의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물품이다. 사막을 건널 때 물 부족

만큼 위험한 것이 소금 부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낙타를 몰고 사하라를 건너는

대상(隊商)은 물이 나는 곳과 암염이 나는 곳 혹은 소금을 숨겨둔 곳을 잘 기억

하고 여행을 해야 한다. 바닷가에서 먼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암염 광산이 가까

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소금 장사꾼들이 닿을 수 있어야만 했다.


과거의 권력 당국은 이처럼 소금 공급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이용해 세금을

걷었다. 국가의 입자에서 보면 소금 거래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것만큼 손쉬운

징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생산 원가로만 따지면 소금은 아주 싼 물품이어야 하지만 높은 세금이 붙다

보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경우 1630년에는 소금 가격이

생산비의 14배였으나 1710년에는 140배가 됐다.

가벨(Gabelle)이라 불리던 염세(鹽稅)는 늘 서민들에게 원망의 대상이었다.

높은 세금은 자연히 암거래와 관리의 부정부패를 초래했는데, 지역마다 세율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 염세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고

당국은 주동자를 사형에 처하면서까지 억압하려고만 했다.

결국 ‘세금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가벨은 프랑스 혁명이 한참 진행 중인 1790년에 폐지됐다가 나폴레옹에 의해

1806년 재도입됐고, 그 후 1945년에 가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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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양사학자인 주경철 교수의 역사 에세이 3편을 함께 보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콜럼버스의 평가에 대한 역사적 인식 변화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제국주의는 유럽이든 아시아든 마찬가지였습니다. 힘의 우위가 있는

나라나 세력이 강제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무단으로 침략하고 수탈하고 지배하는

것은 역사에서 흔한 일인데, 특히 한참 해양으로 뻗어나가던 콜럼버스의 시대는

이러한 성향이 더욱 강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천 만명의 원주민이 살던 곳에 들어가서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고 하고, 그 사람

들은 동물처럼 취급을 하며 이제까지 아메리카대륙의 역사는 진행해 왔지요.

아시아나 호주대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펜실베이나 주의 초등학교에서 나온 모의재판의 결과처럼 미국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역사 평가가 달라지고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인지상정의 결과로

보여지고 미국 뿐아니라 남아메리카, 호주, 일본의 북해도, 동남아시아 등에서

벌어졌던 유사한 사건들도 함께 새로이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번째는 장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추구하고 더 오래 살아있기를 원합니다. 이에 대한 뿌리깊은 염원이 인류의

오래된 신화에 남아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만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아님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고, 삶의 질이 동반된 장수가

진정 인간에게 필요한 것일 겁니다.

고대 인도의 철학자 말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군요.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명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소금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소금은 과거로부터 인간에게 필수적이기에 로마시대의 군인들은 봉급을 소금으로

받았고, 소금의 라틴어가 샐러리(salary)였기에 샐러리맨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합니다.


이처럼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이러한 거래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 세금을 거두게

되었고, 과한 세금은 농민들이 먹고 살기에 힘든 환경을 초래해 봉기가 일어나게

되고 프랑스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였다고 하지요.


"죽음과 세금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 있습니다. 세금이란 공적인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에 사회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기꺼이 부담해야 합니다.

또한 세금을 거두는 주체인 정부나 권력은 이를 정말 투명하게 거두고 운용해서

세금을 낸 주체를 이롭게 해야 할 의무도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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