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매일 철학>
--“자아를 찾으려던 철학자 피히테의 '나'이야기”
강 일 송
오늘은 보통은 어렵다고 지레 겁먹기 쉬운 철학을 쉽게 풀어주는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황진규 저자는 철학을 알고 나서부터 회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7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집필실’로 들어가 ‘철학 오타쿠’가 되었다고 합니다.
생활철학에 관련된 글을 쓰고, 수업을 하며 삶으로 연결되는 철학의 ‘쓸모’를
발견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 주제 중 오늘은 ‘자아’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한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한번 보실까요?
============================================================
★ ‘나’를 찾아 행복해지고 싶다.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행복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며 사는
거란 걸. 그렇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나답게 사는 게 행복이다.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진 이유를 알겠다.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답게 사는 것이 행복이란 건 알지만, 정작 나답다는 것,
즉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겠다는 사람이 왜 그리도 많은지 알겠다.
세계 일주를 떠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심지어 속세를 떠나 절에 들어가는
것도 모두 여행이다.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그들은 모두 진짜 ‘나’를 찾아서
행복해지고 싶은 게다.
★ ‘자아’를 찾으려던 철학자, 피히테(1762-1814)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답할 철학자는 피히테(1762-1814)다.
피히테라면,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자아(自我)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흔히 ‘자아’는 ‘나’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피히테의 답은 ‘나는 나다’라는 의미없는 동어 반복처럼 들린다.
하지만 피히테의 자아는 흔히 사용되는 ‘나’와는 조금 다른 혹은 복잡한 함의가
있다. 피히테의 ‘자아’는 직접 경험되지 않고 인식되지도 않지만, 주체와 대상을
연관지어 통일시키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자아’는 ‘자기 의식’인 셈이다.
모든 의식의 기초에 놓여서 그것들을 가늠하게 하는 ‘활동’이 바로 자아이고
자기의식이다. 이 자아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모든 것의 기초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자아(자기의식)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상을
나와 관계 짓는다.
★ 자아(자기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시 돌아와서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피히테는 “나는 자기의식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예를 들어 ‘A는 A다’에서 “밥은 밥이다.”라고 바꾸어 보자. 누구나 밥을 보고
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어떤 것’을 밥이라고
판단하는 ‘자기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의식은 각자가 갖고 있는 “기억” 때문이고, 이 기억 때문에
‘A(밥)=A(밥)’일 수 있는 것이다.
★ 자아는 기억이다.
그렇다. 자기의식은 기억에서 온다. 과거에 밥을 보았던 기억을 ‘나’가 갖고
있어야 지금 밥을 보고 그것을 밥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로 생각할 수 있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은 자기의식을 가질 수 없고, 그래서 자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치매에 걸린 노인에게 자기의식 또는 자아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 나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누구일까?”에 대해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자기의식은 기억이기에,
‘나’는 내가 가진 기억의 총합이다. 그게 바로 자아이고, ‘나’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펜을 들고 자신의 과거 기억을
더듬어 정리하면 된다. 그게 바로 ‘나’다.
여행은 바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여유를 주고, 동시에 익숙한
곳을 떠난 곳에서 잊고 있었거나 흐릿했던 과거가 더 잘 떠오르기 때문이다.
★ 기억을 모두 찾으면 행복해질까?
이제 이런 의문이 든다. 과거의 기억을 찾으면 행복해질까?
기억을 모두 찾아,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행복해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모든 기억을 모두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기억한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 기억은 과거의 총합이다. 기억에 집착하면
오히려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 불행은 언제나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되니까.
기억은 분명 자기이해를 돕지만, 서글프게도 과거에 머무르게 만든다.
기억을 통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라는 연속적인 자기의식을 갖게 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같다는 것은 기억이 만든
착시 효과다.
결국 ‘나’는 없다! 기억을 통해 이어지는 연속된 자기의식 때문에 고정불변의
나가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는 많은 사건을 통해
다양하게 변해온 수많은 과거의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나’다.
‘나’는 끊임없이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우리는 그걸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없다.
★ 기억의 역설, ‘망각’
‘기억’으로 충분히 자기 이해에 도달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망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기억에서 머무를 때, 삶은 우울하고 어두워진다.
유쾌하고 밝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망각’이다. 이 ‘망각’을 위해서 ‘기억’이
필요하다. ‘고정된 자아는 없었다.’라는 기억!
★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망각을 위한 기억’
해맑은 아이들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제의 일들을 망각하고 오늘을
맞이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매일 새 출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아이들은 망각할 수 있기에 매일 행복하다.
새로운 기억으로 새로운 ‘자아’를 만나게 되는 것. 어제의 ‘나’를 잊고 매일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기억은 중요하다.
기억이 바로 ‘나’이니까. 하지만 정작 중요한 기억은 ‘나는 끊임없이 변해 왔다.’
라는 기억이다. ‘고정된 나는 없었다.’라는 기억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나’에
집착하지 않고 과거를 망각할 수 있게 된다.
그 때 우리는 해맑은 아이처럼 행복할 수 있다. 기억해 내자. 잊기 위해서!
==========================================================
오늘은 철학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회사를 다니다가 철학에 빠져서 철학을 주제로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등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주제 중 오늘은 ‘나’, ‘자아’, ‘기억’, ‘망각’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피히테의
철학을 근거로 풀어쓰고 있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를 알아야 한다, ‘자아’를 찾아야 한다. 라는 말을 잘 듣습니다.
‘나’를 찾으면 행복해지리라는 생각에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하고
사색을 하기도 하고, 종교에 귀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과연 ‘나’, ‘자아’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요?
오늘 저자는 피히테의 명제를 빌어, ‘나’ 는 ‘자기의식’이며, ‘자기의식’은 ‘기억’
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기억의 중요성을 말하자면 ‘치매’ 환자들을 고찰하면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기억도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등이 있고 다양하게 나눌 수 있지만, 치매 노인들을
보면 아주 어릴 때의 기억, 60-70년 전의 기억은 하면서, 불과 몇 분 전의 일은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옛 지인을 만났는데, 그 사람과 어릴 적 추억, 기억을 공유한다면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서로 반가워할 것입니다. 반면에, 나는 그 사람과의 어릴 적
추억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전혀 기억을 못할 때 더 이상 둘의 인간관계는 진행이
되지 않지요.
그런 의미에서 ‘자아’는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기억만이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하는 것도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나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나와의 기억을 다 잊고, 나를 보고 ‘아저씨’라고 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아닌 것은 아니지요. 따라서 기억은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전부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저자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엄밀한 의미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같다는 것은 기억이 만든 착시 효과라고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3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나가 아니긴 합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변해가는
연속선상의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현재의 존재가 나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진정한 나를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잊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망각’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망각이 없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억한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있을까 싶습니다. 과거의 상처, 과거 사고의 상흔을 잊지 못하고 생생하게 매일
반복한다면 순간순간이 지옥일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의 뇌는 망각이라는 훌륭한
자체 힐링 프로그램을 돌려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삶을 꿋꿋이 살아가게 해줍니다.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망각’의 순기능을 적절하게 이해하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모두 변하고 또 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각자의 삶을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사는 사고의 바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