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한병철
<피로 사회>(2010, 한병철)
강 일 송
오늘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저자의 책을 소개해 봅니다.
저자는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신학을 공부를 하였고, 현재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피로 사회>(2010)를 독일에서 출간 후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데, 이 책이 시대의 뇌관을 건드렸기 때문이라 합니다.
2주만에 초판이 매진되며 2011년 독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철학서로
일컬어집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박테리아적이라고 하는 시대는 적어도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종언을
고했고 21세기는 오히려 신경증적이라 규정할 수 있다 합니다.
신경성 질환들,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염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인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입니다.
지난 세기는 면역학적 시대였습니다.
즉,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그어진 시대라는
말입니다. 냉전 역시 이러한 면역학적 도식을 따릅니다.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입니다. 그 본질 속에는 맹목성이
있는데, 낯선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타자도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
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과 함께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게 되었는데,
면역학적 도식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새로운 구도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
을 특징으로 합니다. 오늘날 이질성은 아무런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차이”로 대체되었습니다.
또한 면역학적 패러다임으로는 세계화 과정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면역학적 조직 세계는 특수한 공간구조를 가지는데, 경계선, 통로, 문턱,
울타리, 참호, 장벽 등이고, 보편적 교류와 교환을 가로막아서 세계화를
방해합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본다면,
예전의 사회는 “규율사회”였고, 이는 감옥, 병영, 공장, 수용소, 병원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사회였는데, 21세기 사회는 “성과사회”로 변모했습니다.
성과사회는 피트니스클럽, 오피스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 등
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사회의 주민들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로 불립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입니다.
하지만 성과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우울증이 발생을 하게 되고
성과사회의 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구도를 만듭니다.
자기착취는 신자유적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리게 해줍니다. 스스로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자발적으로 착취를 한다 합니다.
한국사회 역시 성과사회로 변모하였고, 그에 따른 사회적 폐해와 정신질환
등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피로사회 역시 성과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선명한 주제였고
그러한 연유로 독일에서 폭발적 반응이 일어났으며,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자는 피로사회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한번 방안을 풀어본다면,
동양적인 사고로 패러다임을 전향하는 것이 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경쟁적보다는 조화로움,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적 관점보다 동반하고 함께 가꾸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
느림의 미학, 후손까지 생각하는 멀리 보는 관점으로 보기,
성장의 과실을 나눌 줄 아는 배려있는 사회 만들기 등
특히 우리가 스스로 착취하는 “자기착취”를 벗어나려면, 욕심을 좀 내려놓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있는 자각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