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한병철 저

by 해헌 서재

<시간의 향기>, 한병철 저

강 일 송

오늘은 이전에 올렸던 “피로사회”의 한병철교수의 또 다른 저서인 “시간의
향기“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재독(在獨) 철학자인 저자는 끊임없이
현대인의 삶에 대하여 각성을 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데,
“피로사회”보다 “시간의 향기”가 먼저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순서가 바뀌어
“시간의 향기”가 1년 뒤에 출간이 되었더군요.
어쨌든 내용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날의 사회는 시간자체를 인질로 삼고 있다. 이 사회는 시간을 일에
묶어 놓고, 시간을 일의 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일의 시간은 향기가 없다. 쉬는 시간도 그저 일의 시간의 다른 면일 뿐이다.
우리는 휴가 때도 잠잘 때도 일의 시간을 데리고 간다.
긴장의 이완이나 느리게 살기 등도 노동력의 재충전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
일의 한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왜 오늘날 현대인들은 늘 시간이 없고 쫓기기만 하는 것일까?
오늘날의 시간은 리듬과 방향을 상실하고 원자화된다. 시간은 균질한
시간의 점들로 축소된 현재들의 나열일 뿐이다.
현재는 지속성을 상실하고 순간순간 가볍게 휘발되어 날아가 버린다.
시간의 진행은 어디론가를 향한 전진이 아니라 단순히 끝없는 현재의
사라짐일 뿐이다.

시간의 사라짐은 시간에 무게를 더해주던 의미의 중심, 의미의 중력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왜 의미의 중심이 사라지는가?
세계를 인간의 작위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의 대상으로 보는 근대적 세계관
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은 행위를 통해 세계를 바꾸어갈 수 있는 주체로 서고 이러함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결국 “활동적 삶”이다.

활동적 삶은 시간도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주체적 개입을 통해 시간을 단축시킨다.
비행기,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 디지털화 등등.
이 모든 것이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 싸움속에 전통적인 시간의 리듬, 그리고 그 리듬 위에 형성된
삶에 대한 감각은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함으로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워져서, 무게를 잃어버린
시간은 댐이 무너지듯 마구 흘러가버린다. 인생도 그 물살에 휩쓸려
가볍게 떠내려 간다.
시간의 무게의 가벼움으로 오늘날 더 젊게 오래 살지만, 역설적으로 훨씬
빠르게 나이를 먹어버린다.

저자는 이러한 무게를 상실한 가벼움의 시간을 “향기가 없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시간의 위기를 초래한 조작 가능성의 세계관과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절대화를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사색적 삶(vita contemplativa)”
을 제시한다.

사색적 삶이란 정관(靜觀)하는 삶, 무위의 삶으로서, 행위를 멈추고 조작하
려는 욕망을 버리고, 순간순간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을 가만히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어쩌면 기다림에 대한 감각을 복원하는 것이며, 열매를 숙성시키기 위한
자연의 시간을 단축하지 않고 그 시간의 아름다운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 저자의 메시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왜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뒤늦게 건너가 독일 철학,문학,
신학을 공부한 이방인에 독일인들의 반향과 열광이 일어났는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한병철 교수의 책을 읽다보면, 장자를 비롯한 동양적 사색의 근원이
느껴집니다. 결국 현대의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서양 철학적 물음들을
기저에 깔린 동양철학적인 사유의 대안제시로 독일사회에서 그토록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에 또한 필연적으로
동반되었던 바쁨, 쫓김, 피로 등으로부터 이제는 자연의 흐름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의 혁명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되었다고 말해봅니다.

자기의 본업에 매몰되어 삶의 향기, 시간의 향기를 잃어버린
메마른 삶을 고요히 바라보고, 나의 삶에, 나의 시간에 향기를 돌려 줄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저부터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중간에 있는 중국의 시 한편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봄의 꽃들, 가을의 달
여름의 서늘한 바람, 겨울의 눈
우리의 정신에 쓸데없는 일이
매달려 있지 않다면
그게 바로 사람에게 좋은 때라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카피책, Copy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