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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Nov 20. 2018

<유럽 문화사>

“인구 – 문화팽창 근원으로서의”

<유럽 문화사> 도널드 서순

--“인구 – 문화팽창 근원으로서의”


                                  강 일 송


오늘은 지난 번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던 도널드 서순의 “유럽 문화사, 근대”

편의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도널드 서순(1946~)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생했고 파리, 밀라노, 런던, 미국

등지에서 공부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런던대학교 퀸메리 칼리지에서 유럽 비교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저서로는 “현대 이탈리아”, “사회주의 100년”, “모나리자”,

“무솔리니와 파시즘” 등이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문화 팽창 근원으로서의 인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함께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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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오늘날 유럽연합 –나라도 아니고 언어적 통일체도 아니지만-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문화시장이다. 유럽연합의 인구는 4억 5,000만 명쯤으로 중국이나 인도에 상대가

안 되고, 부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 상대가 안 되지만, 앞의 두 나라보다는 더 부유

하고 뒤의 두 나라보다는 더 크다.

거의 모든 유럽인이 책, 라디오, 음반, 신문을 살 경제적 여유가 있으며, 실제로

거의 모두가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인도에서는 2003년에야 ‘겨우’

8,200만 가구가 텔레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800년대의 유럽은 완전히 달랐다. 유럽은 가난했고,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었다. 믿을 만한 자료는 없지만, 전체 인구가 1억 9,500만 명이었다는 것이

그럴듯한 추정치다.

그 무렵 수립된 대영제국의 인구도 불과 860만 명이었다.


1850년에는 유럽인의 수가 거의 50%가 늘어 2억 8.800만 명이 되었고 1900년

에는 4억 2,000만 명이 되었다. 이런 전례 없는 성장은 대륙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고, 가장 부유했던 영국에서는 19세기에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150-1900년에는 유럽인들이 계속 건강해지고 수명도 길어졌지만, 인구는 전만큼

빠르게 늘지 않았다. 이는 산아제한으로 가족 규모가 줄고 이민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탓이었다. 이민은 유럽, 북아메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문화시장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유럽인의 이민


오늘날 우리는 이주노동자가 이른바 ‘제3세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이민자 대부분이 유럽인이었다. 18세기의 가장 큰 ‘이민’은 강요된

이민이었다. 노예무역에 의한 이민이었으니까. 세계사상 가장 큰 강요된 이민으로

아프리카인 1,100만~1,200만 명이 노예가 되어 캐나다에서 브라질에 이르는

아메리카로 실려갔다.


중국에서는 1842년에 조약항이 열리면서 수백만 명이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캘리포니아로 이동했다. 제법 많았던 중국, 인도, 일본 출신 이민자 대부분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카리브해로 향했고, 소수는 미국이나 라틴아메리카로 떠났다.

그러나 그 숫자는 유럽이민자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1851년에서 1915년까지 유럽인 4,100만 명이 남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대부분 영국인이었고, 그다음이 독일인이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인이 많아졌고, 절정을 이룬 1887년에만 20만 2,000명이 미국으로 향했다.

그들은 박해나 기아를 피해서 간 게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전망에 매력을 느낀 것이었다. 식민지의 확산은 유럽 출신 정착민들에게 더욱

넓은 공간을 제공했다.


★ 이민과 문화


이민은 높은 수준의 언어적 동질성을 확립하거나 강화하여 문화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라틴아메리카나 미국으로 이민간 폴란드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유대인,

스웨덴인의 자녀들은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 영어를 사용했고, 특히 미국에서

영어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민자들은 상대적으로 문자해득률이 높았고

이는 미국의 문화시장을 팽창시켰다.


이민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보존을 낳았다. 많은 부분 구전되었던 조국의 문화는

이민자들이 새로 택한 나라에서 계속 진화했고, 매우 정성스럽게 보존되었다.

이민자들은 고국 문화의 특정한 특징들, 음식이나 음악 등을 골라 그것을

정체성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정작 그들의 고국에서는 그런 기억이 근대성의

무게에 눌려 빠르게 사라져갔다.


★ 이민자의 도시집중


이민자들은 조국의 시골을 떠나 외국의 도시로 이동했다. 이런 도시집중은 문화

산업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문화의 중추는 시골이 아니라

도시였다. 일찍이 12세기부터 밀라노, 제노바, 베네치아,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

큰 도시, 나아가 런던, 파리, 쾰른, 브루게, 톨루즈, 세비야가 보여준 교역과 문화로

고동치는 활기는 시골의 무기력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런던은 1800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런던은

영국 주민 10%가 사는 곳이었다. 파리는 크기도 절반이었고, 주민은 프랑스 인구의

2.%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도시들은 한참 뒤졌다. 커다란 다국적 제국의 수도였던

빈의 인구는 25만 명에 불과했고, 베를린은 17만 2,000명, 나폴리 35만 명,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의 인구는 채 20만 명이 되지 않았다.


★ 통신과 운송의 혁명


19세기에 이루어진 통신과 운송의 혁명은 문화시장의 통일을 촉진하는 데에 결정

적으로 기여하였다. 음악가, 배우, 이야기꾼, 가수들만이 아니라 책, 신문, 정기

간행물, 악보들이 더 빠르게 이동하자, 지방시장은 전국적 시장이자 국제시장이

되었다. 더 좋고 더 빠른 배가 등장했으며, 운하망이 넓어지고 도로가 개선되었다.

영국(리버풀)과 미국을 잇는 대서양 횡단 항로들이 빠르게 발전했다. 1869년부터는

수에즈 운하 덕분에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이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런 발전은 각 나라와 대륙 전체의 문화적 통합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것이 점차 동질화되고 표준화되었다. 1790년대에 프랑스에서 확립된 미터법이

앵글로색슨 세계를 제외한 여러 지역에서 측정단위로 널리 채택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지점의 경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그리니치 자오선은 1885년에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19세기 말에는 일정한 시간대들이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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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세기 유럽의 문화를 통해 전체 문화사를 살펴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았

습니다.


19세기가 되면서 유럽은 특히 더 많은 발전과 변화를 겪었습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인구의 도시집중도 일어났고, 수많은 이민이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어졌

습니다. 아일랜드처럼 감자기근으로 인해 기아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대대

적으로 간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더 향상시키기 위한 희망으로 많은 이민이

이루어졌다고 하지요.

아일랜드 출신의 가톨릭 집안인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을 보아도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 서부에서 많은 건설 노동일을 하였고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군말없이 일을 하여 백인 노동자들에 비해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지요. 이들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먼저 왔던 아일랜드

노동자들은

중국인을 아주 미워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문화보존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들의 조국에서는 근대화가 되면서 자기

들의 전통문화가 사라졌지만, 이민을 간 사람들은 오히려 조국의 전통문화를 적절히

잘 지키고 계승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통신과 운송의 혁명으로 인한 문화의 성장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상황입니다.

예전에 기차와 배에 의한 운송 혁명이었다면 현재는 비행기와 인터넷 등의 생활화로

점점 서로간의 거리는 짧아졌고, 글로벌이 하나로 묶이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유투브를 통해 한류의 가수들이 전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고

우리의 문화가 구석구석 퍼져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세기의 유럽 문화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현상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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