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탄생>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문명의 역사”
강 일 송
오늘은 시간(Time)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담론을 담고 있는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알렉산더 데만트(1937~)는 독일 마르크부르크에서 태어났고, 1974년부터
2005년까지 30여년 간 베를린자유대학교 고대역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로마와 고대 후기 역사, 유럽 문화사 및 정신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했고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시간의 문화사를 집대성해낸 유럽의 저명한
학자입니다.
시간이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를
옥죄는 감옥인가?” 라는 화두를 가진 이 책을 함께 보겠습니다.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시간의 개념과 총론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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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의미
‘시간’(Zeit)이라는 단어는 독일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열 개 중 하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간은 ‘나누다’를 의미하는 어원으로 거슬러간다. 영어의 타임(Time)과 프랑스어인
탕(temps) 그리고 라틴어인 템푸스(tempus)는 ‘자르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템노(temno)와 ‘잘라냄’이라는 뜻의 토메(tome)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구역별로 잘라서’ 헤아리고 측정한다.
템푸스라는 단어에는 재고 담금질하고 혼합하는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예언가들의 신전인 템플룸(templum)은 예외적인 구역으로 ‘도려진 채로’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예언가들은 ‘사색하는’(kontemplativ) 혹은 ‘관찰하는’(contemplate)
일을 한다. 온도(temperature)는 열을, 템포(tempo)는 속도를 측정한 값이며,
기질(temperament)은 히포크라테스가 이야기한 네 가지 체액이 서로 다른 양으로
혼합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 시간은 규정할 수 없다.
시간이라는 단어의 역사적 유래를 살피다 보면 그 배경과 관련된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플라톤은 ‘움직이지 않는 영원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미지’라고 시간을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 혹은 이후에 따른 움직임의 횟수와 범위라고
정의함으로 보다 냉철한 입장을 취했다. 1687년 라이프니츠는 ‘시간은 변화의 수를
말한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시간에 대한 정의는 변화와 움직임, 사건이나 충동, 이전이나 이후, 결과와
불가피성, 기간이나 일시적 혹은 지속적인 변화와 같은 표현들을 포함한다.
피타고라스는 “시간의 하늘의 영혼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딜레마를 피하려
했으며,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서 “시간이란 하찮은 물질 존재와 우리 자신에게
일정한 기간의 실재성을 부여하는 척하는 우리 뇌의 발명품이다.”라고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 시간은 대상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은 움직임을 필요로 하고 움직임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둘다 대상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공간과 시간은 나뉘어 있는 것이다. 구분을 통해 구역이 생겨난다.
공간적 개념으로부터 시간의 기본 개념이 도출되었다.
‘이따금’, ‘당분간’ 과 같은 표현은 원래 두 개의 시간 말뚝 사이의 간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시간의 측정 방식을 통해 ‘길고 짧은’ 시간의 구역이 나뉘게 된다.
우리는 ‘이전’과 ‘이후’라는 시간적 개념을 공간적으로 구분하며 ‘가까운’미래와
‘오래된’ 과거를 구별한다. 가령 마지막으로 월급 인상이 이루어진 것은
‘아주 오래전’이며 경제 위기는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아무튼 우리는 ‘시간에 의해 구분되는 거리’라는 기준을 통해 그것을 결정한다.
공간 없는 시간이란 생각할 수 없고, 시간 없는 공간도 생각할 수 없다.
‘생각’이란 공간과 시간에 스스로를 묶는 과정이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할지라도 생각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 시간은 순환적인가 혹은 직선적인가
공간적 사고 속에는 순환성과 선형성이 함께 존재한다.
하나의 사건이 계속 반복될 때 우리는 순환적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
음악의 경우라면 론도(Rondo)에 해당될 것이다. 이것이 한 방향으로만 계속
물러서지 않고 전진한다면 우리는 ‘선형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음악으로 치자면
푸가다. 우리는 선형적으로 반복되는 단위를 헤아림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다.
자동차를 통해 순환성과 선형성을 비교해볼 수 있다. 길 위에서 주행하는 것은
선형성에 해당된다. 시곗바늘은 12시에서 다음 12시로 계속 순환하며 돌아가지만
시간은 선형적으로 더해져서 하루가 된다. 하루의 시간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선적으로
이어지지만 매일 순환적으로 반복된다.
달도 궤도를 돌면서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순환하는 것과
동시에 봄에서 겨울까지 직선적으로 움직이면서 한 해를 맞이하고 그 한 해는
처음에서 끝으로 계속 반복되면서 ‘해의 순환’이라는 주기를 만들어 낸다.
개별적인 해의 선형 구조는 그 순환적 반복의 결과로, 이는 세계의 역사가 된다.
★ 고대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
오늘날 우리가 ‘옛날’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과거는 ‘가장 최근의 시간’에서 가늠한
시간이다. 하지만 시간도 스스로 나이를 먹는 것으로 봐야 할까?
만일 그렇다면 구석기시대는 신석기시대로 불러야 하고 신석기는 구석기로
불러야 할 것이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어지는 400만년 동안 시간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나이를 먹지 않고 단지
객체만이 나이를 먹는다.
기독교적인 시간관에 있어서 심판의 날은 세상이 최고령에 달한 마지막 날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처음으로 창조된 날은 가장 젊은 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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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간에 대한 과거로부터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
습니다. 우리가 책을 보고 읽는 것도 결국 시간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제가 글을 쓰는 이 행위도 시간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시간은 모든 문화에서 다양하게 불려져 왔는데, 특히 서양에서의 시간은 그 뿌리
가 그리스어 템노와 토메에 있었습니다. 이 단어들은 '자른다'는 뜻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접하는 CT(Computed Tomography)도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우리의
인체를 단면으로 잘라본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영어의 온도를 나타내는 Temperature와 기질인 Temperament도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말이었군요.
서양 철학의 시작이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도 시간에 대한
견해를 남겼고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도 자기 나름의 정의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중요한 정의는 시간은 대상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공간적 개념으로부터 시간적 개념이 도출되었다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눈에 보이는 공간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훨씬 쉽고
이를 듣는 사람도 이해가 편하지요.
저자의 뛰어난 통찰이 보이는 문장을 꼽으라면 "생각은 공간과 시간에 스스로를
묶는 과정"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늘 시간과 공간을 마치 그래프의
가로세로 축처럼 기준으로 삼아 그안에 자리를 잡기 마련입니다.
또한 시간은 선형적인가, 순환적인가 라는 논의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담론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결국 자동차의 엔진 구조처럼, 피스톤의 직선운동
이 바퀴의 회전운동으로 바뀌어 차가 앞으로 나가듯이, 사계절이 순환하지만
매년 해가 더해지듯이, 달은 보름달에서 초생달로 차고 빠짐을 반복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듯이, 두 가지는 서로 상보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생각을 뒤집어 보는 재미가 있는 부분인데, 가장 오래전 시간의
시작점이 가장 젊은 시간이고 세상의 최후의 날이 가장 늙은 날이 된다는
독특한 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나이를 먹지 않고, 객체만이 나이를
먹는다는 모순이 함께 존재하기에 그동안 사람들은 당연하게 과거가 더 오래
되었다고 생각해왔지요.
시간이 과연 하나의 객체로서 존재하는가, 시간은 변함이 없는가, 시간은 인간의
편리에 의해 발명된 것인가, 등등 다양한 질문은 인류역사상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아주 많은 학문적 내용을 담은 훌륭한 저작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