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강 일 송
오늘은 어렵게만 느껴질 수도 있는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흥미롭게 풀어내는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조원재는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미술이 본능적으로 끌려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미술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서 독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돈을 벌었고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순례했습니다.
2016년부터 <방구석 미술관>이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이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미술관 앞 남자’가 된 남자, 줄여서 ‘미남’이라 불리는 그의 글을 함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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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거장들이 업어 모신 갓파더?
- 에두아르 마네(1832-1883)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그림은 다 아는 작품 <올랭피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는 이 그림은, 그리다 만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예쁘지도 않고, 매력
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그림인데, 왜 다들 그렇게 걸작이라고 하는
것일까? 실제 당시에도 이런 평을 들었습니다.
“관객들은 영안실에 들어서듯이 마네의 부패한 <올랭피아>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썩었다’는 말까지 들은 마네의 <올랭피아>, 하지만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르네상스는 <올랭피아>에서 시작되었다.”
세잔뿐만이 아닙니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 모든 인상주의 화가들이 마네를
드높이 치켜세웠지요. 왜 그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인상주의 거장들이 마네를
존경하고 따랐던 걸까요? 마네를 한 마디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미래로 가는 문’을 찾아 그림에 숨겨둔 남자.
그야말로 마네는 선지자였습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던 미술을 붓으로
내리쳐 금을 냈고, 전혀 새로운 모더니즘 미술로 가는 문을 찾았습니다.
또한 후배들이 그 문을 찾아 열도록 자신의 그림 속에 수수께끼처럼 숨겨두었습니다.
마네는 처음에는 전통적인 클래식한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두 가지의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 첫 번째는 천재 시인 보들레르였습니다. 그는 시의 주제를
과거의 고상한 것이 아닌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가져오는 파격을 가했고
‘악하고 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파격을 시도했지요.
보들레르로 인해 마네는 “현대의 생활, 동시대 사람들과 생활상을 그려라.”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에서 온 도자기를 쌌던 종이 쪼가리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그냥 쪼가리가 아니라 일본에서 꽃피운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였습니다. 당시 일본 서민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담고 있고, 전혀 본 적이
없었던 구도와 단순미가 있었습니다.
마네는 임질로 인한 심각한 근육통과 마비증세로 사망하는데,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
<폴리베르제르 바>입니다. 이 그림에서 마네는 ‘두 개의 시점’을 하나의 그림 안에
넣습니다. 이전의 모든 회화는 ‘단 하나의 시점’만을 적용했습니다. 그 시점은
보통 그림의 정중앙이었죠. 이것은 너무도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치 않는 것이었
습니다. 하지만 마네는 이 고정관념을 파괴합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와 유사한 생각은 세잔의 작업 과제가 됩니다.
세잔은 ‘두 개 이상의 시점’을 하나의 그림 속에 당당히 집어넣습니다. 그래서
세잔이 그린 사과를 보면 테이블 위에서 굴러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것입니다.
또, 이 세잔의 사과를 본 피카소는 수십 수백 개의 시점을 하나의 그림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렇게 ‘입체주의’라는 것이 탄생하지요.
이처럼 미래의 미술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그 문을 그림에 수수께끼처럼 숨겨둔
마네 단 세 점의 그림으로 이후 근대미술의 꽃이 만발할 토양을 다졌습니다.
정말이지 모네, 르누아르, 세잔이 업어 모신 갓파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 사과 하나로 파리를 접수한 남자
폴 세잔(1839-1906)
인류 3대 사과를 아시나요? 첫째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뉴턴의 사과, 마지막
셋째는? 바로 ‘세잔의 사과’입니다. 물론, 세잔을 심히 존경했던 후배 화가
모리스 드니의 사심 담긴 말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세잔은 분명 이렇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회화의 씨앗!’
19세기 중반 이후, 마네가 ‘미래의 회화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모네가 그 문을
열었습니다. 세잔은 모네의 바통을 이어받아 인상주의를 ‘세잔식’으로 업그레이드
합니다. 이 세잔식 인상주의는 20세기 초입부터 빅뱅급 위력을 발휘합니다.
마티스와 피카소가 20세기 회화를 혁신하는 영감의 핵심 원친이 되거든요.
세잔의 그림을 보면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 있습니다. 마네의 그림처럼 세잔의 그림도 알고자
노력해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마티스와 피카소가 세잔의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요.
1870년대초, 모네로부터 탄생한 인상주의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고전주의의
패러다임을 깨고 너도나도 인상주의 스타일을 따라 그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게, 모네식 인상주의를 거부한 인상주의가
등장하는데 “후기 인상주의‘입니다. 이들은 인상주의의 일부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쿨하게 거부합니다. 이들이 바로 쇠라, 고갱, 고흐, 세잔 등입니다.
세잔을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자연의 본질을 담은 ’묵직함‘
이었습니다. 세잔의 사과를 보면 묵직함이 느껴집니다. 이 묵직함의 실체는
아마 사과의 감촉, 무게 등 실체가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네가 시작한 인상주의에서는 찰나의 색을 포착하고 그렸기에 뭔가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세잔이 본 자연은 겉모습에서가 아닌 변화하지 않는 실체가 있었고
이를 수없이 반복해서 그립니다.
두 번째는 조화와 균형을 담은 ’견고함‘입니다.
세잔의 그림은 마치 매우 잘 지어진 현대 건축물처럼 독창적이면서도 동시에 탄탄한
견고함이 있습니다. 모네의 인상주의는 찰나의 빛을 포착했기에 화면 자체가 불안
정하고 기울어져 보였습니다. 세잔은 무조건 과거를 부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보고, 거장의 회화들에서 계승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조화와 균형‘이었습니다.
인상주의에 ’조화와 균형‘을 담자. 이것은 ’자연의 본질‘을 담자는 것과 함께
세잔의 평생 과업이 됩니다. 그는 조화와 균형을 만드는 본질마저 통찰합니다.
바로 ’구성(composition)‘입니다. 캔버스 안에 100퍼센트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그림 속 사물간 화음‘을 구성하는 것이죠.
20세기부터 <구성(composition)>이라는 제목의 회화가 쏟아져 나온 원인도 바로
세잔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앞서 20세기 회화가 가야 할 길을 본 선지자. 그럼에도 자신이 아는
것은 고작 바닷가에 모래 한 톨 정도라고 여기며 고개 숙인 사람.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채찍질하며 붓을 놓지 않은 사람.
그렇기에 세잔은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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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술에 관한 내용을 스토리텔링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하지만 깊이를
잃지 않은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자는 비록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미술을
사랑하여 직접 유럽의 미술관을 훑었고, 팟캐스트를 통해 많은 대중과 호흡
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여러 미술가들 중 현대 회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마네와
세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먼저 마네의 <올랭피아>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는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렸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의 마네는 인상파들 후배 화가들에게 선지자이자 리더로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에게 영향을 준 두 가지 요소는 "보들레르"와 일본의 채색화 "우키요에"였고
그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새로운 미술의 시대를 엽니다.
세잔도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후배 화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
화가였습니다. 부자인 아버지의 유산으로 인생의 후반에는 그림에만 집중하게
된 행운도 있었고 성격도 원만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림에 대한 헌신과 집중
으로 마티스, 피카소 등의 뛰어난 후배 화가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마네와 세잔, 고흐의 경우처럼 뛰어난 예술가들이 살아있는 당대에
큰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뒤에 그들의 위대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가기에 동시대의 사람들, 비평가들에게는 형편없는 작품이었던 것이지요.
물론 피카소처럼 오래 장수하면서, 다작을 하고, 생전에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행운의 예술가도 존재하지만 말입니다.
결국 인류 문화의 큰 흐름을 보면 "조임과 풀림" , "정형과 비정형" 이라는
시스템이 반복, 순환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전에서 낭만으로, 낭만에서 신고전으로,
그러다가 현대에 와서 구조의 해체로, 이후에는 구조가 강화되는 물결이 일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겠지요.
알고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미술도 공부를 하면 더 풍성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