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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코드로 노자 읽기>

by 해헌 서재

<생명의 코드로 노자 읽기>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노자이야기”


강 일 송


오늘은 영문학자로 영미문학을 가르쳤던 교수이지만 만년에 노자에 심취하여 노자

다운 삶을 살다가 간 노교수의 글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카지마 쇼조(1923-2015)교수는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 클레아몬트 대학원을 졸업한 후, 신슈대학교, 요코하마

국립대학교 등에서 교수를 역임하며 창작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시집 <만청>, <방광>, <이사>, 번역시집 <석양의 그림자-영국현대시선집>, <포 시집>,

이 있어며, <타오 히어 나우>, <노자와 살아간다>, <지금을 산다>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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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만남과 경이로움


‘우연한 만남’이란 영어로는 인카운터(encounter)라고 하는데, 새롭거나 뜻밖의

대상과 우연히 만난다는 뜻이다. 나는 노자와 우연하게 만났는데 영문학을 한

덕분이다. 영역본으로 된 노자를 읽고는 자석에 끌리듯 강한 느낌에 사로잡혀

번역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처럼 우연한 만남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만남이라는 의미를 극단까지

밀고가 보면 그 끝에는 죽음과의 만남이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나라는 존재의

생과 사가 마지막으로 ‘만남’을 갖는 지점이다. 그때까지는 뜻밖의 우연한

만남이 수도 없이 다양한 형태로 찾아올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경이를 끊임없이 경험한다.

인간이란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존재다. 항상 어떠한 ‘만남’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보다 많은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점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 구별하지 않는 마음


우리는 자기에게 없는 무언가에 대해 놀라움과 경이를 느낀다. 그리고 놀라움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 속에 없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이 있다는 증거다.

다양한 것을 받아들이려는 마음만 있다면, ‘놀라움과 경이로움’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수 있다.

‘놀라움의 감수성’ 즉 작은 일에도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계속 유지한다면 우리는

쉽게 늙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놀라움이 없는 사람은 감히

늙은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경이로운 마음’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는 ‘구별하지 않는 마음’

에서 온다. 자신과 타인의 구별, 누구와 누구의 구별, 무엇과 무엇의 구별, 이러한

구별은 사람을 경이로움에서 멀어지게 하는 첫 번째 장애물이다. 경이로움은

대상과의 합일이다. 구별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거기에는 ‘좋음과 나쁨’, ‘깨끗함과

더러움’, ‘너와 나’ 같은, 매사를 가르려는 판단이 생긴다.


★ 무위란 만물에 내재된 리듬에 따라 사는 것이다.


무위(無爲)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글자 그대로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다는 뜻인데,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행위를 하면서 살아간다.

노자의 무위란 작위(作爲)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자의 해설본을 쓴 미국의 어느 여성이 ‘무위’란 만물에 내재된 리듬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 생명의 리듬이 내재된 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위인 것이다.


★ 욕망과 공포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삶


인간의 욕망은 그림자처럼 자신을 쫓아다닌다. 청년기부터 장년기까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그림자와 발자국 소리에 쫓기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어차피 경쟁사회에서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영어에서 ‘리액션,reaction’과 ‘레스폰스,response’라는 말이 있다. 리액션은 외부

로부터 주어지는 조건에 자신의 깊은 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말하고,

레스폰스는 상대의 자극에 자기 안의 것으로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두 단어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


사회의 요구가 있을 때, 기계적으로만 리액션하지 말고 내면의 소리, 자신의 욕구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그렇다면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겠는가.


★ 세상은 언제나 변하는 것


인간사에서 어느 한 가지만이 계속되는 불변이란 없다. 언제나 변화한다.

행인가, 불행인가도 어느 한 쪽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에게는 행복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일 수 있듯이 객관적인 기준 같은 것은 없다. 자기의 주관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의 주관이 확실한 균형을 잡고서 과거와 변한 상황이 와도

이것도 그런대로 괜찮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이 바로 균형 잡힌

마음의 평화일 것이다. 그러한 균형 감각을 자기 속에서 찾아보라고 노자는

말한다.


★ 아름다움이란 더러움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


서구 사람들이 온갖 논리를 내세워 구축한 사고의 체계를 철학이라고 한다.

그 방대한 철학에도 단 하나,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더러움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더러움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다. 또한 아름다움이 없다면

더럽다는 개념도 있을 수 없다는 사유의 세계......


즉, 아름다움과 더러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서구 사람들이 소크라테스 이후 2,500년에 걸쳐 이룩한 사고의 체계

어디에도 이런 식의 사유는 찾아볼 수 없다.


아름다움과 추하다는 결코 분리할 수가 없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다. 만약 온통

악이었던 시대가 있었다면, 아무도 그걸 악이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을 알고 나서야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중국 3대 선종의 조사인 승찬이라는 선승이 ‘불이,不二’라는 말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승찬은 6-7세기 사람으로 이미 그 시대에 ‘둘로 나눌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말을 남긴 것이다.

이분법적인 사고가 굳어버린 서구 사람에게는 상당히 낯설면서도 신비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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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당히 독특한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만년에

노자를 자기 나라 말이나 한자가 아니라 영문판을 읽고 자석에 끌리듯 빠져들어

남은 여생을 노자를 공부하며 쓴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노자의 말을 빌어, 열린 마음과 구별하지 않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우연한 일과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구별하지

않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노장 사상의 중심이 되는 무위(無爲)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있는데, 서양의

여성 해설가가 쓴 말이 가슴에 닿습니다. "만물에 내재된 리듬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다." 상당히 신선한 해석이고 적절한 해석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세상은 모든 것이 변하는데, 이를 대하는 태도가 균형 잡히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움과 더러움을 구별짓는 마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서구에서 비롯된 철학의 사유 체계에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미추가

하나임을 인식하는 사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동양에서는 이미 '불이,不二'라는 표현으로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옳고 그름,

등이 둘이 아닌 쌍둥이 같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저자가 이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귀한 가르침들 중

균형 잡힌 시각으로 마주하는 만물의 내재된 리듬을 읽고 그 리듬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지혜를 가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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