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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과 장인정신-예술과 명품>

by 해헌 서재

<스토리텔링과 장인정신-예술과 명품>
--“퇴근길 인문학수업, 전진”中

강 일 송

오늘은 과거 여러 번 소개했던 “퇴근길 인문학수업”의 <전진>편을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멈춤>, <전환> 두 주제에 이어 이번에는 <전진>편이 나왔습니다.

글을 쓴 저자는 백상경제연구원으로 <서울경제신문>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2002년
설립된 후 다양한 인문과학 융합교육을 위해 여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를 바탕으로 기획한 책이고, 고인돌은 8만 여 명이
수강한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중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파트를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민혜련 작가는 ‘르네상스적인 인간’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파리 문화
예술 전문가인데, 프랑스 캉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를 수료하고, 서강대 와인 발효
공정 공학전공으로 공학박사를 마쳤습니다.
<일생에 한번은 파리를 만나라>, <장인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게스트하우스>,
<르네상스,빛과 꽃의 세기> 등 다양한 저서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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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신기루 – 명품

시대를 불문하고 귀한 물건은 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바로 그 ‘명품’
과는 다르다. 과거에는 재료의 가치나 장인의 명성에 따라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현대의 명품은 기업이 내세운 브랜드 이미지에 의지한다.
비닐가방이라도 유명 브랜드의 로고를 새기면 원재료의 값어치를 뛰어넘는 무형의
가치를 얻게 된다.
예술품이나 돈도 마찬가지다. 예술품에는 자체 재료나 장인 정신보다 마케팅을 통한
작가 이미지가 더 많이 투영되며, 돈 역시 ‘신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로 교환된다.

현대사회에서 명품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예술적인 스토리텔링, 역사, 욕망 등이 조합된
신기루다. 신기루는 다가서면 멀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신기루를 좇는다.
기업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나면 또 다른 갈망이 생기는 게 인간의 본성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신기루를 만들어낸다.
이 신기루의 핵심이 바로 ‘장인정신’이다. 중국에서 외주로 생산했을지라도 브랜드
스토리에는 반드시 장인의 스토리가 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랜 역사와 품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 새로운 신분, 새로운 도시

봉건제도의 장원(莊園)은 농경사회였고 폐쇄적인 자급자족 사회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해변의 아말피,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등의 항구는 농촌과 달리 자유
롭고 활기가 넘쳤다. 인간이 모여들자 당연히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숙박시설, 생필품
판매점, 환락가 등이 조성되면서 상업이 번성했다.
갖은 인간 군상 가운데서 상업 활동의 최정상에 있는 계층, 돈 위의 돈, 자본은 좌지
우지하는 ‘대상(大商)’들이었다.

처음에는 상인 그룹의 힘이 약해 땅의 소유자인 영주에게 제압당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길드’라는 일종의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체계화, 조직화해 차츰 영주나
교회와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중세의 장원은 자신의 생산물로 백퍼센트 충족을 못했기에 생필품에 취약했고, 이슬람
등을 통해 들어오는 동양의 값비싼 향신료나 도자기 등은 도시의 상인들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이었다. 따라서 상인조합의 위력은 점차 커져 나갔다.
결국 영주들은 상인들의 권리를 인정하게 되었고, 11-12세기 말에는 이미 상당한
자치권을 가진 도시국가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즈음 독립된 정치,경제 단위로서 도시가 발달하고, 봉건제도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민이
출현했다. 이들은 농업에 종사하지도 않았고, 영주에게 소속되어 조공을 바치는 계약
관계도 없었다. 상인들은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생활양식을 누리게 되었다.
장원과 떨어져 어느 정도 독립된 사법과 행정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상인들은 점차
자치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공화국을 꿈꾸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영주에게서 자신들의
상업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땅을 매입해 길드를 중심으로 도시국가 시스템을 만들고
자치적인 통치를 시작했다.

★ 르네상스, 판도라의 상자

도시 공화국을 꿈꾸던 대상 계층은 시민들에게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상징물이 필요했다. 유력 가문들은 경쟁적으로 도시 미관을 꾸미는 일에 나섰고,
예술가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가장 독보적인 곳이 피렌체였다.
순수한 상인들로만 이루어진 도시국가였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이 모여 활동했던 게 우연이 아니다.

특히 소규모 상인으로 출발해 귀족 가문이라는 뿌리 없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메디치
가문은 세력의 기반을 굳히고 가문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공공건물을 장식하고
기증하는 데 열심이었다. 이렇게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찬란하게 꽃핀 예술의 도시로
거듭났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든 도시에서는 좀 더 나은 집, 좀 더 멋진 물건, 좀 더
화려한 의상과 보석으로 외관을 치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과거 수공업자라고 천대받던 장인들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상업도시의 형성과 함께 ‘명품’이 탄생한 것이다.

안목 높고 까다로운 상류층을 상대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자신을 갈고 닦으며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다. 이러한 경쟁 덕분에 중세에 억눌려 있던 개인의 능력은
커지고,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수많은 분야에서 천재들이 탄생했다.
르네상스는 바야흐로 천재들이 넘쳐난 시대였다.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교회 권위에
눌려 있던 인간의 재능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한꺼번에 튀어나온 것 같았다.

이중 자타가 공인하는 경지에 오른 기술자를 ‘장인,Maestro’라고 불렀다. 장인들은
독립된 공방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 시절에도 명망 있는 예술가들에게는 제자들이
많이 몰려들었고 7년의 수습 기간이 끝나야 간신히 직인이 되고 그제야 급여를
받으며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길드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는 콩쿠르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때 완성해 제출하는 작품을 ‘명품,Masterpiece’
라고 불렀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금속 공예든 거의 같은 절차를 밟아 장인이 되었다.
예술과 명품은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형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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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현대의 명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적인 과정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해서
흥미로운 저자의 글을 함께 보았습니다.

중세 봉건시대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정은 늘 보아도 극적인 장면입니다.
왜 하필 그 시기에 이탈리아 반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는지,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달이 차면 기울고 다시 차는 것을 반복하듯이 긴 중세의 시대에 내부에서 꿈틀거리던
인간에 대한 관심, 갈망 등이 가장 조건이 완벽한 곳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항상 고착된 곳이 아닌 변화가 넘치는 곳에서 새로움은 시작되는데, 이슬람을 통해
동양 등 외지와의 교류, 무역이 활발하던 지중해의 도시들에서 변화는 발생합니다.
무역, 즉 상업에 의해서 부를 쌓은 새로운 상인들 계층은 차차 권력을 획득해 가고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르네상스를 만들어냅니다.

부가 넘치고 여유가 있는 곳에서 예술과 문화는 꽃피는데, 상업의 중심지였던 피렌체가
역시 그 중심이 됩니다.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유력한 가문들의 후원을 받은 천재들이
시대를 바꾸고, 좀 더 좋고, 멋진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함께 솟아나면서
장인들이 떠오르고, 이 장인들에 의해서 명품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현대의 명품은 이러한 장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현대의 기업들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과거의 명품이나 현대의 명품은 똑같이,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그 바탕에는 장인정신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명품을 좇는 심리를 “신기루”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정확한 표현이지요. 마치 무지개를
좇듯이 아무리 좇아가도 결코 잡히지 않고 도로 저 멀리 달아나지요. 이러한 달아남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처럼 더욱 더 갈망하게 만듭니다.
현대를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하는데, 어떤 기업이든, 어떤 제품이든, 어떤 인물이든
나름의 스토리가 없으면 대중에게 각인되기 어렵고, 스스로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힘듭니다.

저자는 마지막에 예술과 명품은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형제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예술에도 그 한가운데에는 스토리가 있고 장인정신이 바탕이 되어 있기에 그러하겠지요.
각자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스토리와 장인정신이 존재하면 자연히 예술 같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