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강 일 송
오늘은 우리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작가인 김영하 작가의 신작 산문집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김영하(1968~) 작가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했으며,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하고, 이듬해 첫 장편소설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오직 두 사람>, <보다>, <말하다>, <읽다> 등의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최근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등에 출연까지 하여 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대중과 더 친밀해진 작가는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해외로도 번역되어 작품이
많이 알려졌습니다.
여행의 대가이기도 한 그의 여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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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기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여행기란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
여행담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늘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난다. 로널드 B. 토비아스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무 가지 플롯>에서
‘추구의 플롯’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플롯이라고 소개한다. 주인공이 뭔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들로, 탐색의 대상은 주인공의 인생 전부를 걸 만한
것이어야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굴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결을 찾아
헤맨다. 그보다는 덜 오래된 이야기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주인공들은 험난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추구의 플롯의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결말이다.
주인공들은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 훨씬 중요한 어떤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깨달음”이다.
길가메시는 ‘불사의 비법’ 대신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통찰에 이른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귀환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가 진짜로 얻게 된 것은, 신으로 표상되는
세계는 인간의 안위 따위에는 무심하다는 것, 제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의 삶은 매우 연약한 기반위에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 환각과 미망으로
얻은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추구의 플롯
이처럼 ‘추구의 플롯’으로 구축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두 가지 층위의 목표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추구의 플롯’에 따라 잘 쓰인 이야기는 주인공이 외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그런 이야기가 관객에게 깊은
만족감을 준다.
‘추구의 플롯’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대체로 주인공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거꾸로 여행기가 ‘추구의 플롯’으로 쓰일 수 있고, 쓰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바란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우리 인생에도 언제나 외면적인 목표들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 번듯한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자식을 잘 키워 좋은 대학에
보내기 같은 것들, 그런데 이런 외면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 인생과 여행
미국의 한 학자는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들을 연구했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나는
마이너리그 선수가 될거야’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없을 것이다. 모두의 꿈은 메이저
리거, 그중에서도 화려한 성적을 내고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였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신인 드래프트로 등록된 아마추어 선수는 2000년부터 2011년
까지 17,925명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뛴 선수는 1,326명에 그쳤다.
이는 약 7.4%에 불과하다. 마이너리거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원래 추구하던 것과 다른 것을 얻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불행했을 리는 없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했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은퇴한 후에는 코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거나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메이저 리거 되기)보다 더 소중한 교훈들을 얻었거나
최소한 얻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언정 평생을 들여 이룬 작은 성취가 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얻으려고 했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고 해소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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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성과 감성, 필력을 겸비한 김영하 작가를 통해 인생과 여행에 관한 다양
한 담론을 들어보았습니다.
뛰어난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때로는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라고 통찰하였지요.
마찬가지로 김영하 작가도 여행에 관하여 "여행이란 추구의 플롯에 의거하여 처음
목적과 달리 시련과 방황을 통해 더 큰 목적,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인생과 여행은 함께 이야기되고 잘 비유되지요.
작가가 말했듯이 "추구의 플롯"에 의하면 인생에서 외면적 목표는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직업, 직장 구해서 좋은 짝 만나서 좋은 자녀 낳고 성공하여
경제적 부와 명예를 누리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겠지요. 김작가의 말처럼
이를 그대로 이루고 사는 인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목적을 이루지 않고도 사람들은 다 인생을 살아내는가 에 대해
마이너리거 선수들의 삶을 예를 듭니다. 처음 거창했던 목표와는 달리 소박한
인생을 살아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작은 성취가 있으며 순간순간의 행복이
있기에 어느 인생이라도 감히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음의 목표와는 다른 여행이나 인생을 살아갈지라도, 늘 새로운 배움이 있고
새로운 경험이 우리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여행같은 인생, 인생같은 여행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여행 같은 하루를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