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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 外>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中

by 해헌 서재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 外>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中

강 일 송

오늘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작가의 새로운 책을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지난 번에 이어서 이번에는 책의 전반에 흐르는 그의 재기 넘치고
번뜩이는 사고의 흐름을 좇아 보려고 합니다.

김정운 작가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
에서 디플롬,박사 과정을 하였고, 베를린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습니다. 이후 그림을 배우러 일본으로 가 쿄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여수에서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쓰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때 썼던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었습니다.
저서로는 <에디톨로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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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은 대략 4세부터 생긴다고 한다.
타인이 나와는 ‘다른 생각’ 경우에 따라서는 ‘틀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진정한 신뢰가 가능하다.

타인에 대한 ‘믿음’은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강요다. ‘아빠는 믿는다’ 또는 ‘엄마는 믿는다’고 이야기할 때, ‘자녀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부모, 자식 관계만이 아니다.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되뇌어야 배신당하지 않는다.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항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나중에 꼭 그런다. “정말 믿었던 이가 등에 칼을 꽂았다.”고.

★ 시선과 의사소통

시선은 곧 마음이다. 내 시선이 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눈의 흰자위가 그토록 큰 이유는 시선의 방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인간은 타인과 대상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함께 보기, joint-attention’다. 인간의 의사소통은 바로 이 ‘함께 보기’에 기초한다.
다른 동물들은 시선의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눈 전체가 거의 같은 색
이거나 흰자위가 아주 작다. 이는 소통이 아니라 사냥하기 위해 진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함께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후 차원 높은 협업이 가능해졌고, 시간이 흐르며
‘대상의 공유’는 ‘의미의 공유’로까지 발전했다. 이윽고 ‘문명’이다.
‘함께 보기’가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먼저 봐야 한다. ‘리더’다.
남들보다 먼저 보는 리더의 새로운 시선이 ‘공유’될 때 사회는 발전하고 구성원들은
성장한다.

★ 인간은 언제부터 ‘창조적’이었을까

인간은 도대체 언제부터 ‘창조적, Creative’이 되었을까? 단어 사용의 역사적 빈도수를
보여주는 ‘구글 엔그램 뷰어’에서 ‘창조성’을 검색했다.
놀랍게도 ‘창조성’은 192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다. 이건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다!
창조성이라는 단어가 원래부터 있던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회화는 대상의 정확한 모방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켜왔다. 그러나 사진이 나오자 ‘재현’의
회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변화의 시작은 폴 세잔이었다. 그는 추상회화를
등장시켰고, 칸딘스키, 카지미르 말레비치, 엘 리시츠키 등 러시아 구성주의는 더욱
과감해졌다.

대상을 기하학적 단위로 쪼갰고, 기하학적 단위로 해체된 대상은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창조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단순화하여 해체해야 재구성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 ‘책읽기’와 ‘침 바르기’

지식과 정보를 인터넷 검색으로 더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도대체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침을 바를 수 있기 때문이다.
‘침 바르기’는 ‘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다. 우리는 ‘귀한 것’에 꼭 침을 바른다.
뭉칫돈이 생기면 우리는 한 장 한 장 침을 발라가며 돈을 센다. 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이 아무리 효율적이어도 아날로그 책 읽는 재미를 따라갈 수 없다.
침을 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갈수록 ‘침 바르기’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일단 돈 셀 일이 없어졌다.
죄다 카드로 계산한다. 카드도 이젠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왔다. 돈은 그저 계좌에서
계좌로 이동할 뿐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침 바르기’가 동반되는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
이다. 영상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는 일은 일방적이고 수동적이다.
속기 쉽다는 이야기다. 책은 다르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그 옆의
빈 곳에 떠오르는 내 생각을 적는다. 밑줄을 긋고 빈 곳에 내 생각을 문자화하는
행위는 매우 성찰적이다.

이 같은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심리학에서는 ‘메타 인지, Meta-cognition’이라고
한다.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자기 성찰, Self-reflection’의 메커니즘과 ‘밑줄 긋는 독서’의
메커니즘이 심리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책을 읽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의미’의 생성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개별적 사건과 경험들에 대한 기억은 주체적 관심에 따라 서로 연결되며 의식의 차원으로
올라온다. 인간의 의식 또한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다. ‘입자’와 같은 개별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행위가 바로 ‘의미 부여’다. 개별 사건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순한 ‘팩트’에 불과한 사건들을 연결하는 그 ‘의미 부여’가 의식의 본질이다.

독서는 저자의 생각에 끊임없이 내가 개입하며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과 내용을
새롭게 편집하는 아주 특별한 ‘의미 구성 과정’이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띄엄띄엄 골라서 읽으라고 목차도
있고, 색인도 있는 거다. 하루에도 수만, 수십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느 세월에
다 읽을 수 있을까?

골라 읽는 ‘발췌독’이야말로 ‘의미 구성’이 가능해지는 주체적 독서법이다.
책은 진짜 재미있고, 정말 중요한 것만 끝까지 읽는 거다!
책이 그래도 제일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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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정은 교수책을 한번 더 살펴보았습니다.

저자가 엉뚱하게(?) 여수의 작은 섬으로 내려가서,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그림과 글을 쓰면서 지내는 여유는 어떻게 보면 사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일반인들이 함부로 따라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때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처럼 저질러(?)야만 어떤 일을 행할 수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어쨌든 그의 여수에서의 필체는 여전히 날카롭고 재미있습니다.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라는 말은 의미가 심장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믿는다 라고 하는 말의 오류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이고
자녀나 타인이나 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름을 전제하여야만 진정한 신뢰의
바탕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인간의 흰자위가 큰 이유는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의사소통과 협업이
가능하기 위함이고, 이를 통해 문명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류학자
들이 주장을 해오고 있었고,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생각의 공유, 의미의 공유까지
이루어 사회가 발달했음은 개연성이 높다는 생각입니다.

다음은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놀랍게도 192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인간은 창조성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에서도 이런 유사한 예를 알 수가
있는데, 영국 왕실의 전통예식이나, 스코틀랜드의 킬트의상 등이 수백년 혹은
천년 이상 된 것 같지만 대부분의 전통은 18-19세기에 형성이 된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민족과 국가에 대한 개념도 근대에 생겼다고 하지요.

마지막으로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는 특이하게도 '침 바르는' 행위
와 독서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귀한 것에 침을 바르는 행위를
했다고 하지요, 보통 침을 바르면 찜을 해서 내 것이라는 것을 표하기도 합니다.

이런 침 바르기가 동반된 독서는 자기 성찰을 하게 해주고, 능동적이고 상호
작용적이라고 합니다. 전자책은 침을 바를 수가 없고, 책이 주는 그 촉감, 부피감
등의 감각적 자극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주로 책은 서점에 가서 직접 골라서 한아름 들고 오는 편인데, 그 책들의
무게감이 뿌듯한 만족감과 행복감, 기대감과 비례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인간 사고의 최고봉은 '메타 인지'입니다. 자기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능력, 자기를 멀리서 떨어뜨려 놓고 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사이트, insight 를 갖게 하여 말그대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합니다.
이러한 메타인지를 기르는 최고의 방법은 주지하였듯이 '독서'라 할 수 있겠지요.

오늘도 평온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