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직선’은 없다. 모더니티의 가장 큰 오류는 ‘직선’에 대한 과도한 신념이었다. 시작은 철도였다. 산에 막히면 터널을 만들어 뚫고, 계곡이나 강으로 끊기면 다리를 만들었다. ‘직선’의 철도를 만들면서 인간은 스스로 신(神)이 되었다.
이제 강물 옆으로, 계곡을 돌아 나가던 아주 오래된 길도 ‘직선’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다. 독일어로 고속도로를 뜻하는 ‘아우토반,Autobahn’은 철도의 ‘아이젠반,Eisenbanh’에서 가져왔다. ‘직선의 길’이라는 뜻이다.
철도에서 시작된 ‘직선의 모더니티’는 이후 인간의 주거 공간으로 옮아왔다. 식물의 곡선으로 장식하던 ‘아르누보’나 ‘유겐트슈틸’을 비판하며 ‘직선의 건축’을 시작한 이는 빈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1870-1933)였다. 이어 르코르뷔지에(1887-1965)나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직선’을 기능주의 건축의 기본 철학으로 삼았다. 대한민국 아파트는 바로 이 ‘직선의 건축’이 가장 경제적으로 그리고 가장 폭력적으로 실현된 형태다.
★ 대한민국의 ‘직선의 모더니티’
우리는 수백 년에 걸쳐 일어난 서구의 모더니티를 수십 년 만에 해치웠다. 대한민국은 ‘직선의 모더니티’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잘 실천한 나라다. ‘안 되면 되게 하라!’고 했고,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더 이상 ‘직선의 시대’가 아니다. 자연을 지배하려고 만들어 놓은 ‘직선’은 재앙처럼 우리 후손에게 전해진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문제들의 근원에는 바로 이 ‘직선의 모더니티’가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견디기 힘든 계층 간, 세대 간 대립 또한 직선의 압축적 성장이 남겨놓은 모순이다.
★ 곡선의 철학과 관대함
기능주의 건축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빈의 또 다른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모더니티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그는 ‘직선은 무신론적이며 비도덕적이다.’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착한 곡선’을 회복하지 않으면 인간 문명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내가 살고 있는 섬에 있는 나의 아지트인 ‘미역창고(美力創庫)’를 가려면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야 한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그러나 섬에 다리가 놓이면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다리는 그저 익숙한 ‘직선의 유혹’일 따름이다. 내가 섬에 들어서는 순간 그토록 마음이 평온해지는 이유는 섬의 ‘착한 곡선’ 때문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나를 괴롭혔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직선’과 관계되었음을 깨닫는다. 참 치열하게 살았다. 부딪히면 뚫었다. 안 되면 되게 했다. 무슨 일이든 맡기면 해냈다. 그러나 내 직선적 행위가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내가 타인에게 입힌 상처는 어느 순간 내 상처로 돌아왔다.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된다. ‘직선의 모더니티’는 평균수명이 채 50세도 안 되던 시절의 이데올로기다. 빨리 죽으니, 서둘러 가야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하는 거다!
구불구불 돌아가며 살아야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다. 부딪히면 돌아가는 ‘곡선’을 심리학적으로는 ‘관대함’이라 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못하는 거다. 이렇게 ‘곡선의 섬’에서 ‘직선의 삶’에 관한 메타 인지적 통찰을 얻는다.
오늘은 김정운 교수가 남해안 섬에 살면서 깨달았다고 하는 메타 인지적 통찰인 '직선'과 '곡선'의 철학에 대하여 함께 보았습니다.
그는 여수의 작은 섬에 ‘미역창고(美力創庫)’라는 자신만의 공간이자 아지트를 만들었고 이곳을 드나들면서 섬의 유려한 곡선을 보면서 현대 문명이 가진 '직선의 모더니티'를 가지고 사유의 공간을 확장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증기기관차가 만들어지면서 놓여진 철도에서 '직선'이 실현되기 시작 했고 이는 곧 현대 문명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이러한 사조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전해져 왔고, 초고속 성장, 급속 성장을 통해 우리는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신조로 문명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직선의 모더니티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유용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고속 성장, 성장 우선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성 배제는 현대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양산했고, 이제는 곡선이 주는 편안함, 여유로움, 너그러움 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곡선의 여유는 심리학적으로 '관대함'으로 표현된다고 하지요. 현대 우리 사회, 특히 한국 사회는 극도로 관대함이 상실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툭 건드리기만 하면 싸우려고 하고, 도로에서도 양보는 없습니다.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최우선이 되어 버린 사회가 되어버렸지요. 사는 곳도 직선으로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아파트가 대세입니다.
자연에서는 직선이 드뭅니다. 저자가 섬을 돌아나오면서 자연에서의 곡선의 관대함을 느꼈듯이, 우리도 자연으로 돌아가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하고 관대한 철학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자처럼 모든 것을 떨치고 섬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일상에서 얼마든지 작은 여유와 소소한 자연스러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잠시 비는 시간에 음악을 들어도 좋고, 시 한 구절을 읊어도 좋고, 커피나 차를 물을 끓여서 한잔 내려 마시며 그 향을 음미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