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밥벌이의 고단함”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밥벌이의 고단함”
강 일 송
오늘은 시를 소개한 책으로 드물게 베스트셀러를 하였던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작가
정재찬 교수의 새로운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정재찬(1962~)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지은 책으로
<시를 잊은 그대에게>, <그대를 듣는다>, <현대시의 이념과 논리>, <문학교육의 사회학을
위하여>, <문학교육의 현상과 인식>, <문학교육개론1>, <문학교육원론> 등이 있습니다.
저자는 시를 통해 인생의 맛을 일깨우는 우리 시대의 시(詩) 소믈리에라고까지 칭하고
있으며 그는 시가 진정 우리 삶의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그 첫 시간을 함께 가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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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사는 일이 서러워질 때
“모든 ‘먹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 모든 포유류는 어금니로 음식을 으깨서 먹게 되어
있다. 지하철 계단에서 쪼그리고 자장면을 먹는 걸인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거위간을
먹는 귀부인의 동작은 같다. 그래서 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 두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중
먹고 살기 위해 매일 같이 일하는 것. 그게 일상이고 인생이다. 아, 그런데 그건 정말
너무 지겨운 일 아닙니까? 위의 글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김훈 작가의 수필입니다.
밥은 진저리나고, 밥 먹기는 넌더리나고, 그런데도 그 밥을 위해 질려도 밥을 지어야
하고, 지겨워도 밥벌이를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 서러운 사이클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훈이 답합니다. 대책이 없다고.
하지만 밥벌이가 지겹긴커녕 부러운 사람들도 아주 많습니다. 지금의 우리 청년세대
들이 그렇습니다.
밥벌이의 문제에는 남녀가 따로 없고 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좁은 취업의 문 앞에서
좌절을 겪는 청년 실업자들은 물론, 출산은 장려하면서 정작 정당한 대우는 해주지
않아 서로운 이른바 ‘경단녀’들, 한창 나이에 퇴직당하여 실업 전선을 헤매는
중년들, 혹은 아직 충분한 체력과 경륜과 지혜가 있음에도 사회의 뒷전으로
밀린 노년세대에 이르기까지, 그 지겨운 밥벌이 하나 변변히 할 수가 없어
인간적인 자존감마저 무너짐을 겪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의 모습
입니다.
★ 중과부적
현대판 사설시조 한 편 읽어보시렵니까?
중과부적(衆寡不敵)
김 사 인
조카 학비 몇 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 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하신단다. 다시
자동차세와 통신요금 내고
은행카드 대출할부금 막고 있는데
오래 고생하던 고모 부고 온다. 문상
마치고 막 들어서자
처남 부도나서 집 넘어갔다고
아내 운다.
‘젓가락은 두 자루, 펜은 한 자루........... 중과부적!’
이라 적고 마치려는데,
다시 주차공간미확보 과태료 날아오고
치과 다녀온 딸아이가 이를 세 개나 빼야 한다며 울상이다
철렁하여 또 얼마냐 물으니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 성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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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가시나요? 각자의 형편보다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느낌인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나쁜 일은 깡패처럼 늘 몰려다니기도 하거니와, 실은 세상과의
포커게임은 늘 불리한 법이랍니다. 내가 아무리 이 카드 저 카드 돌려막아도 세상은
나를 괴롭힐 카드가 언제나 더 많습니다. 중과부적인 것이죠. 이기려야 이길 수 없습니다.
사오십 대들의 삶이 대체로 이렇습니다. 스트라이커 같은 인생은커녕 평생 골키퍼
처럼 막기만 하는데 적들의 파상공세는 잦아드는 법이 없고 수비수들은 온데 간데
보이질 않습니다. 고된 일이야 참을 수 있지만, 그 고된 일이나마 언제까지 주어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 나도 살고 당신도 살리는 업 – 이마를 덮어줄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우리는 일에서 보람을 찾고 보람이 있는 일을 찾습니다. 아무리 밥벌이라 하더라도
그냥 밥만 벌어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서 가치를 느끼게 되면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길일수록 힘이 듭니다. 위험합니다. 더럽습니다.
이른바 흙길입니다. 하지만 모든 꽃길은 그 밑에 흙을 깔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흙길이 아니면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흙길이 곧 꽃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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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
허 은 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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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혼자 앓다가 잠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세밑, 설 전날 말입니다.
너무 아파서 한밤중 홀로 깨어납니다. 서러웠을 겁니다.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니, 혼자 너무 서러워서 소리도 못 내고 울었던 모양입니다. 뭐가 그렇게 또
서러웠을까요. 자기 자세 때문입니다. 아픈 것도 해도 힘든데 그 고통을 나누거나
간호해줄 이도 없는 고독이 그를 더 서럽게 만들었을 테지요.
열이 나면 가족들이 이마에 손을 얹거나 물수건을 얹어주지 않습니까. 그 서늘함이야
말로 내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온기 아닙니까. 이마는 내 열의 통로입니다.
이마를 통해 우리는 사람과 긍휼을 나눕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래서 이마는 참
요만했던 것 같습니다. 딱 손바닥만 한 크기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독하고 혼자 삽니다. 그래서 실은 직업이라는 형태로 나의 부족한
점들을 서로 메워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결핍된 그 무엇이
있을 거에요.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누구는 재화를, 누구는 용역을 제공하고 교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직업의 본질이란 이처럼 사람들이 모두 같이 살려고, 나도 살고,
너도 살리려는 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덧 그런 본질들은 다 사라지고 당장에 먹고살아야 하는 지겨운 밥벌이가
되어버린 것, 그렇게 살다 보니까 모두가 힘들어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내가 하는 어떤 일로 누군가의 이마를 덮어줄 수 있다면, 그 일이 그 순간 지긋지긋
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서로의 이마에 손을 내밀고 그 손에 이마를
맡길 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우리 모든 업의 본질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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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정재찬 교수의 새로운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역시나 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상과 감수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글이었네요.
처음 글은 유명한 김훈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책의 한 부분을 먼저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전에 이 책은 저도 소개를 한 적이 있었지요.
밥 먹는 일은 정말 쉴 수도 없고 죽기 전까지는 계속 이어져야만 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지겨워도 지겨울 수 없고 피할 수가 없다고 하지요.
하지만 또한 이런 밥벌이는 누구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취업을
못한 청년세대, 직장을 잃은 중년세대, 퇴직을 한 노년세대 모두 직장이 없으면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중과부적"이란 시는 현대인 삶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40-50대 가장들의 어려운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시란 어떤 통계나
수치, 도표보다 더 강하게 가슴을 적셔옵니다.
들어오는 수입은 뻔한데, 나가는 구멍은 여러 군데서 뻥뻥 터집니다. 부모님이
입원을 하시고, 고모님은 돌아가시고 처남은 부도를 내고....
제목 그대로 '중과부적'이네요.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흙수저, 금수저
나누듯이, 인생길은 흙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꽃길은 반드시 흙길위에서 생기
고 절대 아스팔트 위에 꽃밭이 생기지 않습니다.
두 번째 시인 "이마"를 보면 주위에 간호하거나 보살펴 줄 이 아무도 없는 외로움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마를 만져줄 사람이 되자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 업에 충실하다는 것은 지겨운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족함을 대신
채워주는 것이고, 나의 부족함은 다른 이가 채워줄 것입니다. 서로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이 사회는 비로소 건강한 것이지요.
시에서 손바닥의 크기와 이마의 크기가 비슷한 이유를 알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시인은 생각의 비틀기, 다르게 생각하기의 명수입니다. 너무나 적절한
비유이지요.
우리 모두 밥벌이의 고단함에 머무르지 말고, 나와 우리 가족, 우리 사회를 위해
서로에게 이마를 덮어주고 만져줄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고, 그 길은 바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