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의 온도>
“얼어붙은 일상을 깨우는 이덕무의 매혹적인 일침”
강 일 송
오늘은 18세기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시인인 이덕무의 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이덕무(1741-1794)는 북학파 실학자로 영,정조 시대에 활약한 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며, 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스스로의
힘으로 학문을 갈고 닦았다고 합니다.
당대 최고 지성인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과 교류를 하면서 18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했습니다.
엮은이 한정주(1966~)는 역사평론가, 고전연구가, 고전,역사연구회 뇌룡재 대표라고
합니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나왔으며 베네데토 크로체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라는 말과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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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의 시학
이덕무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시(詩)’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이덕무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 모든 존재와 대화하는 방법이자, 세상 모든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통로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각자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입니다.
그의 시에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존재, 자연 사물과 사람에 대한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이덕무의 사우(師友)인 연암 박지원은 이덕무의 시를 가리켜 ‘조선의 국풍(國風)’이라고
극찬했고, 정조대왕은 “이덕무의 시는 우아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선말기 최고의 비평가라고 할 수 있는 김택영은 ‘기궤첨신(奇詭尖新)’의 네 글자로
요약해 비평했는데, 이 말은 이덕무가 ‘기이하고 괴이하고 날카롭고 새로운 경지’의
시 세계를 개척했다는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운 모든 것이 시다
벼룩을 시제 삼아 장난삼아 짓다
작은 벼룩, 떼를 지어 달려드니
괴로운 밤 어이 날까, 한 해보다 길구나
너의 몸 날쌔다고 자랑 마라
나의 손톱 강하단 걸 알아야지
사람을 쏠 때는 모래 뿜는 물여우처럼
사람과 견줄 때는 수레바퀴 막는 사마귀처럼
파리 떼에 못지 않네, 진실로 밉구나
벼룩 미워하는 마음 구양수에 배우네
하찮고 보잘것없는 미물인 벼룩조차 시가 되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 시가 되지 못하겠는가? 이덕무는 말한다.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고요히 생각을
모으면 반드시 지혜의 구멍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 순간 한 번 눈을 굴리면 세상 모든
사물이 나의 글이 된다.”
우주 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시적 대상’이자 ‘시적 존재’로 보는 미학이야말로
시를 바라보는 이덕무의 철학이다.
★ 좋은 시는 울림을 준다
11월 14일 술에 취해
깨끗한 매미와 향기로운 귤 마음에 간직하니
세상사 시끄러운 일 내 이미 잊었노라
불을 공중에 살라본들 저절로 꺼질 것이고
칼로 물을 벤다 한들 다시 무슨 흔적이 있겠는가!
‘어리석다’는 한 글자를 어찌 모면하겠냐마는
온갖 서적 널리 읽어 입에 담을 뿐이네
넓고 넓은 천지간 초가집에 살며
맑은 소리 연주하며 밤낮을 즐기네
재물, 권력, 명예, 출세, 이익 따위는 이덕무에게 세상사 시끄러운 일일 뿐이다.
그것을 얻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짓은 불로 허공을 사르거나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허망하고 망령된 일이다.
매미에 담은 맑은 기운과 귤에 담은 향기로운 마음이 내 영혼에 깊게 스며든다.
좋은 시는 울림을 준다. 시에 담긴 메시지 혹은 시가 던지는 시그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작자와 독자는 교감한다.
오래도록 살아남는 시는 ‘공감’, ‘교감’, ‘울림’을 주는 시다.
★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네 모습 파리하니
마땅히 네 마음 깨끗하리
옛사람 많고 많건만
어찌하여 구양수와 굴원을 취했나
사물의 종류 많고 많건만
어찌하여 매미와 귤을 취했는가
이미 너를 좋아하는 마음 이와 같으니
더러운 먼지 속에 내버려둔다고 해도
또한 어찌 근심하랴
맑고 깨끗하여 편안하고 즐거우니
그 누가 너의 성품과 자질 알겠는가
이덕무는 옛 시인 중 특별히 송나라의 구양수와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을 좋아했다.
구양수로 말미암아 매미의 깨끗함을 알고, 굴원으로 말미암아 귤의 향기로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취해 자신의 마음과 삶을 드러내는 미학이야말로, 옛사람
의 글에서 엿볼 수 있는 멋스러움 중에서도 가장 멋스러운 일이다.
이덕무는 매미를 취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귤을 취해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어떻게? ‘매미처럼 깨끗하게 귤처럼 향기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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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 이덕무의 시에 관한 이야기를 쓴 책을 함께 보았습
니다. 이전에 나온 책으로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바보가 아니라 뛰어난 시인이자 작가이자 학자였습니다.
오늘 저자인 한정주 작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덕무 매니아, 전문가가 되겠습니
다. 이덕무의 여러 시들을 소개하면서 시에 대한 철학, 시의 경향, 다른 평론가
들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덕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시의 주제가 되고 시 자체가 된다고
여겼고, 아주 작은 일상의 사건이나 물건이라도 훌륭한 시제가 된다고 합니다.
첫 번째 시도 아주 하찮고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여겼던 벼룩을 주제로 멋진
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또한 마음을 가지런하게 하고 고요히 생각을 모으면 지혜의 창이 열린다고 하는
뛰어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적 감수성, 시적 예리함, 표현력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시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따스한 위로와 배려가 담겨져 있다고 하지요.
뒤에 연달아 나오는 두 시를 보면 그가 매미와 귤을 사랑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매미에게서는 깨끗함을 귤에서는 향기로움을 얻게 되는데, 그 두 가지를 매우
사랑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세상의 재물, 명예, 관직 등에는 관심이 도통 없습
니다.
더 이전의 학자인 퇴계 이황은 매화를 그렇게 사랑했다고 하지요.
책읽기를 좋아하고 초가집에서 마음 편히 악기를 연주하며 시를 짓고 읊고,
매미와 귤의 향기를 사랑하는 선비. 이덕무도 참 행복한 학자이자 시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미처럼 깨끗하게, 귤처럼 향기로운"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