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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May 15. 2020

<집단 무의식의 반란>

“역사의 역습”中

<집단 무의식의 반란>
“역사의 역습”中

                                      해 헌 (海 軒)

오늘은 한국의 버트런트 러셀이라고 불리는 저자가 자신만의 역사 철학을
가지고 인류의 문명사를 분석한 책을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김용운(1927~) 교수는 도쿄에서 출생하였고 와세다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으로 가서 어번대에서 석사, 캐나다 앨버타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1969년 귀국하여 한양대학교 수학과
교수로서 동 대학 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저서로는 <풍수화>,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 <수학서설>, <한국 수학사>, <일본의
몰락> 등 백여 권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늘은 지난번 “카오스”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집단 무의식”에 관한 저자의
통찰력 있는 주장을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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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이 지배하는 사회

유능한 무당은 고객의 무의식 세계를 넘나들기 위해 맨 먼저 그 마음에 새겨진
상처(trauma)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점을 시작한다.
그들이 신탁(神託)을 받는 곳은 무의식 속의 성당이다.
프로이트(1856-1939)는 심리학에서 출발해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학자이자,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의 꿈속 무의식을 현실로 끌어올린 무당이기도 했다.
그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 모신 성당을 성(性)으로 대체시켜, 인간의 모든 행동을
분석했다.
칼 융(1875-1961)은 스승 프로이트의 주장을 한걸음 더 발전시켜, 집단화된 민족
무의식 속에 모셔진 신화를 들여다보았다. 신화의 내용이 민족마다 다르듯이
집단 무의식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집단 무의식에 내재한 인간의 진,선,미에 관한 희구를 처음 이론화한 것은 그리스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진’과 ‘미’를 ‘선’보다 강하게 의식해 철학과 예술을 꽃피
웠으나 종교적인 영향력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인류를 지적 인간(Homo Sapiens)이라 부르지만, 문명 수준이 낮던 고대에는
이성보다 무의식에 더 깊이 의존했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지성 집단은
무의식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대지성이라 불리던 학자들은 무의식을 얕보고
이성을 중시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지성을 중시했던 소크라테스(BC 470-399)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다이모니온,(daimonion,신령한 소리)’의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몰라도 항상 옳은 길을 제시해준다고 그는
믿었다. 소크라테스가 들은 소리를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에 대입시키면,
다이모니온은 아테네의 신이 아니라 그의 무의식에 도사린 ‘지성의 신’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BC 427-347)은 존경하는 스승을 잃은 충격으로
다수결 원칙의 민주주의를 신뢰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하학과 철학으로 지성을
닦은 이상적인 왕(哲人王)이 나와 통치해 줄 것을 소망했다. 그에게는 소크라테스가
믿은 초월적인 다이모니온의 소리 같은 것은 없었다.
해석(이성)적 사고만 중요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인간이란 폴리스를 갖는 동물이다.”
는 그의 말처럼, 제도와 관습은 중시했으나 그 이면에 도사린 집단화된 무의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종교는 사회 질서유지에 유용한 가치로만 인식했을 뿐, 그 그림자
속 무의식은 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리스 지성주의 철학에서의 무의식은 이성에 가려 등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행동은 무의식에서 나온다. ‘나(주체)’의 뿌리인 무의식의
존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 민족 집단 무의식

민족 고유의 집단 무의식은 이성과는 다른 차원이다. 예를 들어 국경문제는 어느
민족에게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때문에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세계 카오스의 중심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항상 ‘무의식의 이성에 대한 반란’과
‘역사의 반란’이 얽혀 있다.
그런데 주시해야 할 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합리주의를 국시로 삼아온 대국들이
이젠 앞장서서 집단 무의식에 매달리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앞으로 인류에게 닥칠 카오스에 무서운 전율을 느끼게 된다.
특히, 미국, 러시아, 영국은 현재 진행 중인 소수민족의 원한의 원인을 제공한
선 긋기의 대상들이다.

★ 미국의 집단 무의식의 반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외친 구호 ‘다시 한 번 위대한
미국(make America great again)’은 몰락한 백인 중산층에게 잘 살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집단 무의식)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과거 화려한 시절의 미국이 그립다. 몰락한 백인 중산층의 무의식은
보기 좋게 표면의 의식을 뒤엎는 데 성공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화난 백인(angry white men)’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불안한 백인의 집단 무의식과 감춰져 있던 패배감이 드러난 것이었다.
미국은 그동안 상위 5%의 엘리트계층이 정보와 가치를 점유하고 움직여온
것으로 믿어왔으나, 이제 카오스적 집단 무의식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민족주의는 중류계층인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외교정책은 고립주의에서 세계의 경찰국가를 지향해 왔으나, 그 기저에는 이성
존중과 계몽주의 철학이 깔려 있다. 인권과 평등을 중시하고 기회균등의 가치를
이상으로 저개발 국가를 원조하고 대량 이민도 적극 수용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건국과 번영을 이끌어온 백인이 더 이상 긍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자신들만이 미국의 주인이라는 의식으로 회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이끌어온 미국이 자국중심주의로 급선회한 것은
영국이 브렉시트로 선회한 것과도 다름없는 역사 흐름의 역행이다.

★ 영국의 향수와 집단 무의식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제도와 전통을 자랑해온 나라
이다. 이런 영국이 EU에서 탈퇴한다고 했을 때 전 세계가 놀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합중국 결성을 주장했던 사람이 바로 영국 수상 처칠
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련의 철의 장막을 바라보며 유럽의 힘을 기르기로
결정했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대륙으로부터 여러 차례 침략을 받았다. 로마의 식민지를
겪었고, 바이킹의 침공, 근대에는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침략을 받았다.
EU 가입도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로 인해 그의 사후에는 간신히 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르는 동안 영국은 사실 유럽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특히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은 독일이 지배하는 유럽을 싫어한다.
‘오대양에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을 휘날리던 자존심 강한 민족의 집단 무의식이
아직도 가슴에 펄떡이며 살아 있는데 어찌 이를 경제적 이익과 바꾸겠냐는
항변인 것이다.

앵글로색슨계인 영국과 미국은 국제화 물결에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나라
들이다. 그런데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집단 무의식의 반응은 이와는
다르다.
자기들보다 못난 나라와 동등하게 되는 것에 국민들의 자존심이 상한다.
특히 난민들이 대량으로 들어와 자신의 문화와 전통에 영향을 주는 것도 싫다.
또 중산층 이하 계층은 직접적으로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인류가 동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에 민감한 무의식은
손해 보는 일을 견디지 못한다.

★ 카오스의 세계

민족(ethos)에 관한 일반적 해석은 ‘공통된 신화와 역사, 문화를 갖고 특정
지역과 결합하여 연대감을 느끼는 인간이 이룬 공동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는 여기에 ‘집단 무의식을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새로운 개념을 추가하고자 한다.
민족의 집단 무의식은 그동안 전혀 의식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제 인류 문명을
좌우하는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작은 나라들은 그동안 억압당했던 한(恨)과 정체성을 자각해 역습하기 시작했고,
대국들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체면도 위신도 집어던지고 실속 챙기기에
급급하다. 이들이 곳곳에서 충돌하며 카오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 카오스는 어떤 속성을 나타내며 움직여갈 것인지, 또 어떤 궤도와 행적을
그리며 미래를 열어갈 것인지, 우리는 어떤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인지, 수많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복잡계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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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역사의 역습>을 두 번째로 살펴보았고, 김용운 교수님이 왜 한국의
버트런트 러셀이라고 불리는 지 제대로 보여주는 글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역사를 이성과 무의식의 흐름으로 살펴보았는데, 소크라테스는 다이모니온
이라는 신탁의 소리를 중시하여 어느 정도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였지만 이후
제자인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성의 세계만 중시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용한 무당은 개인의 무의식, 상처(트라우마)를 먼저 찾아서 이를
통해 그 사람을 지배하는데, 프로이트는 의사이자 심리학자였지만 과학의 이름
으로 무의식을 끌어낸 무당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제자 융은 민족의 신화를 통해 집단 무의식을 들여다 보았지요.

오늘 저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함께 떠오른, 몰락한 백인 중산층의
향수(집단 무의식)와 영국의 브렉시트 사건으로 등장한 세계를 지배하던 유니언
잭에 대한 향수(집단 무의식)를 이야기하고 있고, 이는 지금 당장의 세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 읽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자유와 평등, 인권, 기회균등, 인종차별금지 등을 주장했던 미국과
영국이 이성적인 의식 표면 아래에 잠재되어 있던, 뿌리 깊은 백인 우월주의,
앵글로색슨 우선주의 등이 자신들의 자존심, 긍지가 흔들리자 집단 무의식으로
표출이 되기 시작함을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집단 무의식으로 인한 갈등, 코로나19와 같은 전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인해 현재 세계는 혼란, 카오스의 시대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현자도 지금 상황에서 뚜렷한 해결책, 답안을 제시해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입장에서 무엇이 우리를 이러한 혼란을 줄여주고 잘 헤쳐나갈 것
인지에 대해서 오로지 자신만이 답을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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