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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뻬드로 Sep 29. 2019

가진 거라곤 시간이 전부

시간과 돈의 무한루프 속으로 로그인 하셨습니다

어제 차량점검과 배터리 교체를 위해 공식정비소를 토요일 아침부터 방문해서 1시간째 기다리는 중이었다. 무척 큰 정비공장이므로 정비사들이 아주 많다. 이제나 저제나 어느 잘 생긴 정비사님이 내 이름 석자를 불러주나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어느 분이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벌어졌다.


고객: “아니. 그때도 부품이 없다고 해서 미리 얘기해뒀던 것인데, 1주일이 넘었는데 아직 부품이 준비가 안되면 어떻게 해?”


정비사: “오늘 12시 전에 온답니다. 확인했습니다. 도착하면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땀 삐질)


고객: “이후에 일정 다 맞춰놨는데, 이거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어떻게 해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문제잖아.”


정비사: “......”

정비사가 불쌍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젊고 잘 생긴 정비사다. ‘아 왜 정말 그 부품이 준비가 안됐나요? 공식 서비스센터이니 자재구매 탁송이 전산으로 다 될텐데 말이죠. 아 속상하다!’ 나도 속으로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순삭되고 주황색 티셔츠 아저씨가(나보다 확실히 나이가 더 있어보임!) 더 공감되기 시작했다. ‘어, 이건 뭐지?’ 그 이유는 내 속에서 금방 찾아냈다. ‘맞아! 돈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문제야.’


그 고객입장을 유추해보건대, 계획대로 오전에 정비를 마치고 점심약속이나 오후 일정이 있는 것 같았다. 계획대로 정비를 마칠 수 없음을 알게 된 고객은 타의로 계획이 틀어지게 되어 화가 난 것이다. 대기실에서 계속 토요일 오전 재미없는 시시덕한 TV프로그램을 하염없이 보고 있을걸 생각하니 더 짜증이 났을 것이다. 어쩌면 차가 고장나서 이미 속이 불편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지출에 발이 묶이는 것은 두 배의 고통이니. 어른들이 얘기하던 얘기로 나도 가끔 아이들에게 꼰대질 한다. “10대니까 시간이 10km/h로 가지? 아빠는 40대가 되니 40km/h로 가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간의 소중함은 정비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여기는 공식 서비스센터다보니 정비내역서를 받아보면 작업양과 시간이 드러난다. 나는 배터리를 교환하러 온 것이었고, 그 내역서에는 탈거, 장착이 두 줄에 걸쳐 기재되었고 공임비용까지 계산되어있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뭐 그런것까지도 자세히 다 받아가냐고 하겠지만, 좀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에서는 멋지다. 회사입장에서도 그 정비사가 하루에 어느 정도 강도의 일을 얼마만큼 처리해내는 작업자인지 레벨을 측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따지면, 고객에게 불평을 듣고 있는 그 시간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감정노동도 업무시간에 포함되는구나. 시간을 떼워도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에 투입되어도 어렵구나.


모든 인간은 시간 앞에서 평등하다. 물론 직장인은 자신의 시간을 들여 돈으로 바꿔 온다는 말도 있다. 시간문제다. 돈이야 쓰게 되면 지금 아끼고 나중에 더 벌면 된다.(사실 더 벌기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시간은 24시간 똑같은 양만큼 모든 사람이 균일하게 갖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우선순위대로 방식대로 시간을 쓴다. 아! 어쩌면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시간과 돈의 뫼비우스 무한루프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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