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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Nov 16. 2020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 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빈부 격차, 부동산 폭등, 출산 저하로 인한 산업 동력 악화…’


수년 전부터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단어들이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고, 보기만 해도 암울해지는 현실은 삶의 생기마저 잠식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수년 뒤 한국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이 있다. 가깝고도 먼 이웃, 바로 일본이다.


한국의 미래는 일본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을 답습할 것이라는 것에 높은 불만을 나타낸다. 이미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은 계속 발전 중이고 일본은 오래된 경제 침체와 정치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국방비 순위 변동에서도 두드러진다.


미국 군사력 평가 전문기관인 ‘글로벌 파이어파워(GFP)가 2020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많은 국방비 규모를 자랑한다. 눈여겨볼 포인트가 세 개 있는데, 북한은 한국보다 한참 뒤진 74위라는 점, 1위인 미국의 국방비는 2위에서 10위까지의 국방비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점이다.


남은 하나가 흥미롭다. 일본의 국방비는 49억 달러로, 한국보다 두 계단 높은 7위에 랭크된 점이다. 일본 자위대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44억 달러와 크지 않고 이마저도 곧 따라잡을 거라는 예측이다. 이처럼 한국은 여러 부분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일본을 라이벌로 설정하는 것은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 지향할 만 하지만, 이미 일본을 앞지르거나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GDP다.


우리는 일본에 얼마나 뒤져있나


2019년 세계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GDP 순위는 세계 205개국 중 12위에 위치했다. 영토도 자원도 충분하지 않은 작은 나라에서 이룩한 쾌거임에는 분명하지만, 사실 일본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먼발치 앞서 있다. 그들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에 랭크되어 있다. 1조 6천억 달러인 한국의 GDP 대비 4조 9천억 달러에 달하는 일본은, 표면적으로 한국보다 3배나 큰 경제 대국인 셈이다.


GDP만으로 한국이 일본과 같은 길을 따를 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아시아 국가인 점등을 감안했을 때, 일본이 거쳐온 과정을 한국이 답습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때문에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 90년대 초반에 발생하여 현재 일본 젊은이들 취업형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프리터족을 보면, 앞으로 한국사회에 도래할 미래가 얼마나 암울할지 엿볼 수 있다.


프리터는 Free(프리)와 Arbeit(아르바이트)의 합성어로, 오랜 경제 침체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를 주업으로 삼는 일본 젊은이들을 칭하는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프리터족이 부정적인 단어는 아니었다. 프리터는 떠밀리듯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삶과 꿈을 위해 정진해가는 멋진 단어였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만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일본의 다양한 직업군과 높은 최저임금은 한국 청년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불황이 계속되면서 자발적 구직 거부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 갔다. 이미 프리터족은 청년뿐 아니라 장년층까지 확대되었으며, 이러한 고용불안은 실업자를 양산하고 기간제 및 파견의 형태로 변한 지 오래다.


일부는 일본 경제가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현재 일본은 100%에 가까운 고용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현상에는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저출산의 여파다. 일본 정부는 긴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났다며 여론을 호도했지만, 오래된 출산율 저하로 인력이 부족하여 고용이 쉬워진 이유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일본에 남은 것은 지독한 빈부의 악취다.


한국의 포기 문화


한국도 다르지 않다. 3포를 넘어 5포 그리고 n포 세대가 그렇다. ‘포’는 포기의 준말이며, 숫자 3은 포기의 가지 수, 연애-결혼-출산을 뜻한다. 5포는 3포에 더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다. 이제 5포도 부족해 얼마일지 모르는 미지의 수인 ‘n’만큼 포기해야 한다며 한숨짓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시대 흐름은 명확하다. 가령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꿈을 좇으라’고 했지만, 이제 ‘꿈’이라는 단어를 말했다가는 자칫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 취업이 불확실한 사회, 어렵게 취업해도 박봉과 야근에 ‘삶’이 사라진 직장,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어 결혼을 미뤄야 하는 마당에, 꿈은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꿈을 찾는 사람은 ‘현실 파악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이 되었고, 현대인이 말하는 꿈은 ‘부자’가 된 지 오래다.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꿈의 부재는 청년층의 좌절을 넘어 중장년층에게 번지고 있다. ‘부자’가 꿈인 중장년층은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부동산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대한 결과는 부동산으로의 자산 집중이다. 이들의 투자는 청년층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현상)과 낮은 금리 그리고 경제 위기를 우려한 은행들의 유동성 확대와 맞물려 부동산 폭등의 원인이 되었다. 너무 높게 날아 날개가 녹은 이카루스처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부동산이란 범의 등에 그들이 올라탄 이유는, 단 하나의 열망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연합뉴스가 2040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대체로 자산 보유액이 46억 5000만 원은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남성 52.3억 원, 여성 42.6억 원).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부자가 되기 위해 보유해야 할 금액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8년도에 발표된 부자의 기준금액은 40.9억이었다. 1년마다 부자의 기준이 3억씩 늘어가는 셈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시점이 왔다.


과연, 나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2018년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직장인 평균 연봉은 3634만 원이다(중소기업 3771만 원, 대기업 6487만 원). 2020년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25평의 평균 가격이 약 12억 인 것을 감안했을 때, 한 푼도 쓰지 않고 33년을 모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수치를 감안할 때, 부동산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별이라면, 부자의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다른 행성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부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


그럼에도 주변에는 다양한 부자들이 존재한다. 사업체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부동산 임대업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월급만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유명 대기업에 입사한다면 생활은 보다 윤택해지겠지만, 부자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앨론 머스크처럼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거나, 자영업자들처럼 투자와 같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경우다. 최근에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오프라인 사업자들을 모아 플랫폼(장터)을 제공하거나 기존에 불편했던 과정들을 제거하고 온라인화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둔 기업들이 존재한다.


배달 음식을 한데 모은 배달의 민족, 중고제품 플랫폼 당근마켓, 책 읽는 번거로움을 없앤 오디오북 윌라 등이 있다. 송금 절차를 획기적으로 줄인 카카오 뱅크와 토스,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펀딩의 장벽을 낮춘 와디즈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는 사실상 개인이 고안할 수는 있어도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


부자가 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리스크를 ‘대출’의 영역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리스크는 금전뿐 아니라 시간과 노력의 상실까지 포함한다. 실패 시 위험으로 빠트릴 수 있는 대출이나 퇴사뿐만 아니라, 그동안 투입한 시간들 모두가 리스크에 해당한다.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잘 안될 거 같아”
“그거 한다고 돈 얼마나 벌겠어?”
“그건 그 사람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야”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시도에 인색하다. 여러 이유를 끌어모아 ‘해야 할 이유’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부터 찾는다. 무의미한 시도일 것 같아서, 너무 힘든 길이라서, 하찮은 성공일 것 같아서, 또는 아무 이유 없이. 부자가 되고 싶지만, 부자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핑계로 대신한다.


때문에 우리가 부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부모가 물려준 자산이 없어서도 있겠지만, 어떠한 가능성도 차단해버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음’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부자가 되고 싶지만 현재의 상황을 인질 삼아 자칫 위험해질 수 있는 어떠한 시도를 하지 않음에서 부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와 마주한다.


결국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액의 대출이나 사업을 위한 퇴사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지금 하는 시도가 쌀 한 톨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할 것 같더라도 리스크를 기꺼이 안아야 한다. 너무 미숙하여 때론 누군가의 조롱을 받을 지라도, 수익은 커녕 손해를 볼지라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리스크를 선택해야 한다.


리스크(도전) 없이 부자도 행복도 없다.


직장생활은 순조로웠지만 나라는 개인으로써는 행복하지 않았다. 새로움과 주체적인 삶 그리고 더 나은 경제적 상황을 갈망했다. 하지만 나 또한 ‘퇴사’라는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자신 스스로가 그 갈망을 얼마나 원하는지 증명해야만 했다. 중국어,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매년 150권의 책, 글쓰기 연습이 4년 반 동안의 시도였고 결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크를 떠안았다고 해서 삶의 풍족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제적 풍족은 더욱더 멀어져 갔다. 6천만 원에 달하는 돈과 경력단절을 감안하고 떠난 세계여행도 그러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2년의 세계여행은 꽃길처럼 보였겠지만, 정작 여행도 그 여행을 마음먹기까지도 험난 그 자체였다. 대부분 30대가 그렇듯 커리어를 쌓고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과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마음이 매 순간 충돌했다. 이는 귀국 후에도 이어졌다. 적당히 스페인어와 세계여행 강연을 할 수 있었지만, 더 나은 콘텐츠를 위해 수업을 줄이고 책을 쓰고, 영상으로 만들던 결정과 기회비용나에게도 큰 리스크였다.


이제 영상들은 큰 수고로움 없이 퍼널 마케팅이 구축되어 홍보도 결재도 자동 수익화가 되고 있다. 다만 코로나 19로 인해 여행수요가 급감하여 그나마 있던 수익이 매우 귀여워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내가 했던 ‘리스크 떠안기’는 실패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영상은 앞으로도 나의 경력의 가장 강력한 한 줄이 될 것이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스스로를 홍보할 것이고, 밭에 나가 땅을 일구는 동안 수익원이 되어 준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영상을 본 교육담당자가 강연도 제안한다. 무엇보다 ‘그때 해볼걸’하는 과거의 후회에서 자유롭다.


적어도 내가 감수했던 리스크들은 경제적 풍요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결과들이 쌓여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할지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 준다.


퇴사할 수 있었던 이유


자신은 퇴사 외에는 감당할 리스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하지만 리스크란 무리를 해서라도 가용할 수 있는 비용이나 시간을, 어떤 보상도 없을지라도 과감히 투입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때문에 퇴사만이 리스크를 안는 행위가 아니다.


퇴근 후 무언가를 배우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판매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행위, 촬영이나 영상편집과 같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몸을 던지고, 호응을 받지 못할지라도 용기 있게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행위가 직장인으로서 감안할 수 있는 리스크가 되겠다.


돌아보면 퇴사는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직장 속에서 시들어가는 자신을 보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면 잠자는 시간마저 아끼며 공부했던 스페인어와 인도네시아어가 빛도 보지 못하고 잊힐 것이라는 미래가 고통스러웠다. 나에게 퇴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알량한 퇴직금도, ‘다시 취직하면 되지’라는 플랜 B도 아닌, ‘쓸데없는 도전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뒤로하고 평일 4시간, 주말 10시간씩 공부했던 시간의 퇴적이었다.


만약 퇴사라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프리랜서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집필, 강연, 수업, 블로그 마케팅, 홈페이지 제작, 영상 편집 등의 기술을 습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시도들과 농축된 시간들이 회사와 병행되었다면 수 십배의 시간이 들었을 것이고, 그나마도 타이밍을 놓쳐 써먹지 못했을 수 있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원했던 만큼의 삶의 풍요에 가깝지 않다. 하지만 온전히 원하는 것을 삶 속에 채워나가는 것을 볼 때면, 리스크라는 이름의 도전을 선택한 결정이 옳았다.


리스크를 끌어안지 않고 경제적 윤택함이나 삶의 풍요 근처에 갈 방법은, 단연코 없다. 하물며 복권도 ‘구매’라는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삶은 참가비를 내지 않는 사람에게 무임승차를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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